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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작가 박완서의 귀향

황령산산지기 2005. 11. 8. 13:00




이문섭 논설주간




"……나는 나에게 맞는 귀향을 하고 싶다. 나는 완행열차를 타고 개성역에 내리고 싶다."

"고작 경기도 땅에 고향을 두고 반세기에 걸친 망향병씩이나 앓게 하는 이 이상한 나라에 태어난"소설가 박완서가 산문집 '두부'에 털어놓은 그의 '꿈★'이다. 실향민인 박완서의 고향은 북녘땅 개성이다. 개성 시내에서 남쪽으로 8㎞나 떨어진 한 작은 산간 벽지의,"볼 것 하나 없는 한촌"이 그의 고향 마을이다.

지난달 28일 개성공단 시범단지 내에서 남북경제협력협의사무소 개소식이 열렸다. 이날 개소식 행사에는 100명을 훨씬 넘는 남쪽 인사들이 참석했다. '개성 가는 길'에 함께 나선 일행은 완행열차가 아니라 관광버스 4대에 나눠 타고 경복궁 주차장을 떠나,남측 군사분계선을 넘어,비무장지대를 건너,북측 군사분계선을 넘어,개성공단에 닿았다.

자남산 여관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개성 시내의 선죽교랑,성균관(고려민속박물관)이랑,조선시대의 교육기관으로 정몽주의 옛 집터에 지은 숭양서원이랑,조선조 영조와 고종이 각각 세운 표충비 등도 둘러봤다. 멀리 송악산은 '아기를 밴 여인이 머리를 풀고 누워있는 형상'이었다. 우중충하고 허름한 건물들과 변변찮은 행색의 북쪽 주민들은 이미 TV 화면 등을 통해 눈에 익은 모습 그대로였다.

그러나 그것은 모두 단순히 눈에 비치는 풍경의 파편일 뿐. 그보다는 경제협력을 포함한 남과 북의 교류는 이미 발진(發進)한 항모(航母)처럼 천천히 기동(起動)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거대한 선체의 항모는 처음 발진할 때 무척 힘이 든다. 안전 운항을 위협하는 요인들도 많기 마련이다. 그러나 일단 움직이고 나면 쉽게 멈추기도 어렵다. 항모의 앞에 놓인 가장 현실적인 과제는 어떻게 목적지를 향해 순항하느냐이다. 이것은 남과 북이 모두 마찬가지다.

우리 사회는 남북관계 이야기만 나오면 두 쪽으로 갈린다. 아니 어느 한쪽 편으로 가른다.'친북'과 '반(反)통일 세력'으로 구획된 영토에서 이념의 낡은 깃발 아래,실용적이고 현실적인 접근보다는 소모적 논쟁만이 무성할 뿐이다. 분단의 상흔 위에서 엇물린 게 바로잡아지기까지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데,때로는 너무 성급하고 인색하고 고집스러운 게 우리들의 자화상인 것은 아닐까. 분명한 사실은 우리 모두 너무 닫혀 있다는 것이다. 진정 열린 마음의 공간이라면,좌와 우보다 인간이 먼저다. 보수와 진보에 앞서 인간의 고통이 우선되어야 한다.

지난해 연말 개성 공단 시범단지 입주 공장 준공식에 참석했던 박완서는 예정돼 있던 개성관광이 취소되는 바람에 개성 시내엔 발을 들여놓지 못했다. 올해 들어서 세 차례에 걸쳐 개성 시범관광이 실현돼 1천500명이나 되는 남쪽 사람들이 개성땅을 밟았다. 그러나 그는 그 대열에 끼이지 못했다. 그는 어느 글에서 "귀향과 관광은 다르다"고 말했다. 그런 까닭에서만일까.

"아무의 주목도 받지 않고 아무렇지도 않게 고향마을에 들어서 보고 싶은 건 (정주영 회장처럼) 천 마리 만 마리의 소떼를 몰고 가는 것보다 더 이룰 수 없는 꿈이다."

이미 74세 고령인 늙은 작가의 탄식이다. 노작가의 '아무의 주목도 받지 않는'귀향이 언제쯤 이루어질까. 우리 시대의 손꼽히는 작가로서가 아니라,한 평범한 실향민으로서의 소망이 어느 날 문뜩 꿈처럼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통일이라는 거대한 담론 앞에서도,그것만큼 절실하고 애절한 인간적인 소망이 어디 있겠는가. 남북문제를 둘러싼 이념 논쟁의 회오리 바람 앞에 노작가의 작은 꿈은 막막함과 불안감에 떨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의 꿈은 오늘도 여전히 외로운 것일까.

"만약 내가 고향을 방문할 수 있게 된다면 그날이 바로 마음 속에 있는 내 고향,이상화된 농경사회의 평화와 조화를 상실하는 날이 될 게 뻔하지 않은가. 어떻게 변했나 보고 싶지 않은 것이다. 보아버리면 다시는 안 보았을 때로 돌아올 수 없을 테니까."

비록 그러한 심정일지라도,그의 귀향은 실현되어야만 한다. '죽기 전에 고향땅을 한번 밟아보았으면' 하는 게 그의 진정한 속마음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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