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스크랩

영지 버섯

황령산산지기 2005. 7. 10. 21:13
천의 얼굴 가진 물의 노래
미공개 동굴의 신비 빚어낸 물의 능력에 감탄해...
미디어다음 / 글, 사진 = 최병성 목사
때가 장마철인지라 자주 비가 내립니다. 하늘이 구멍난 듯 쏟아져 내리는 비를 만날 때에는 도대체 저 많은 물을 하늘 어디에 감춰 뒀었는지 그저 신기하기만 합니다. 많은 비로 인해 여기저기서 안타까운 비 피해 소식도 들려옵니다. 제가 사는 집도 바로 강가인지라 비가 올적마다 성난 울음을 토해내며 모든 것을 휩쓸어 갈 듯 거칠게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보며 혹시나 하는 염려를 할 때도 자주 있지요.

포토에세이                                                   슬라이드 보기 정지 빠르게 보통 느리게
  커튼? 영지버섯?
마치 쏟아져 내릴 듯한 모양의 종유석. 거대한 영지버섯 또는 커튼 같기도 하다.

커튼? 영지버섯?
형형색색 고드름
물이 그린 조각
천지창조
세월의 흔적


몇 해 전 폭우로 큰 피해를 입은 강원도 삼척의 미로면의 수해 현장을 다녀온 적이 있었습니다. 집들이 온데간데 없어지고 구들장만 남아있는 모습에서 그 날의 처참했던 상황과 아픔을 느낄 수 있었지요. 때때로 비는 우리의 삶을 앗아가기도 하지만, 반대로 비가 오지 않으면 이 또한 고통스런 상황이 되기도 합니다. 지난주 전국이 비 피해를 겪었는데, 제주도는 가뭄으로 농경지가 타들어 가고 감귤이 낙과하고 있다는 소식을 텔레비전에서 전해주더군요. 참으로 많아도 문제요, 적어도 문제인 것이 바로 물인 것 같습니다..

물은 손오공처럼 변신에 능한 재주꾼입니다. 요즘처럼 세상을 다 쓸어갈 듯 거칠게 쏟아지는 폭우가 되기도 하지만, 이른 새벽 풀잎 끝에 매달려 아침 햇살에 반짝이는 영롱한 이슬이 되기도 하고, 겨울 하늘 나폴 나폴 휘날리는 은빛 찬란한 눈이 되기도 합니다. 저 푸른 하늘에 둥실둥실 흘러가는 뭉게구름이 되기도 하고, 빨간 장미 나무 꽃잎에 흐르는 수액이 되기도 합니다. 뿐만 아니지요. 드넓은 바다의 넘실대는 파도가 되기도 하고, 먹음직스런 한 송이 딸기가 되기도 합니다. 물은 수천 수만 가지의 얼굴을 지닌 변신술사입니다.

물이 지닌 신비가 가장 잘 나타나는 곳 중에 하나가 동굴일 것입니다. 제가 살고 있는 영월 서강 가는 석회암 지형이라 여기저기에 크고 작은 동굴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 동굴들을 누가 만들었을까요? 모두가 잘 알 듯이 바로 물입니다. 오랜 세월 물이 땅 밑으로 흐르면서 석회바위를 녹여 동굴을 만들고, 그 안에 종유석과 석순과 석주 등 기막힌 예술품들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물은 엄청난 동굴을 만드는 뛰어난 건축가요, 기막히게 아름다운 조각품들을 창조하는 멋을 아는 예술가입니다.

한 방울 한 방울 떨어지는 그 작은 물방울들이 수천 수 만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묵묵히 빚어온 동굴 속의 세상은 놀라움과 신비 그 자체입니다. 오랜 세월 어둠 속에서 아무도 몰래 아름다움을 창조해낸 물의 예술성 앞에 감탄과 탄성만이 흘러나올 뿐입니다. 기기묘묘한 모습의 조각들 앞에서 사람이 빚은 예술품들이 너무 작게만 느껴지는 것은 저만의 생각이 아니겠지요. 지금도 우리 발 밑에 놀라운 신비를 감춘 어떤 동굴들이 자리하고 있을 지 모릅니다. 우리가 그것을 발견하기까지 알 수 없는 것일 뿐일지도요.

물은 한가지 고정된 틀과 모양과 이름을 지니지 않습니다. 언제나 다양한 모습과 이름을 지니고 있습니다. 무더운 여름 우리의 목마름을 해갈해주는 수박을 비롯해 우리가 좋아하는 모든 과일들이 물로 이루어져 있지만, 우리는 그 생명을 이루며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물이라 하지 않고 수박, 참외, 토마토, 사과라고 부릅니다.

세상 만물은 물을 통해 형성되고, 물을 통해 그 생명이 유지됩니다. 그러나 물은 자신의 어떤 형태도 요구하지 않습니다. 늘 상대방에게 주고 그의 모습을 취하고, 상대의 이름으로 불리는 것으로 만족해합니다. 상대방의 생명을 이뤄주는 것으로 더 이상의 요구가 없습니다. 참 사랑의 모습을 물에서 보게 됩니다. 사람들은 나를 인정해달라고 자신의 능력과 이름을 증명하기 위해 애를 씁니다. 그러나 물은 다른 것, ‘너’의 생명이 되어 주면서도 자신을 요구하거나 주장하지 않습니다. 그저 아름다운 너의 모습으로 피어남을 기뻐할 뿐입니다.

맑고 깨끗한 물은 상대의 더러움을 자신의 것으로 하며 상대를 깨끗이 씻어줍니다. 요즘 우리 사회는 친구의 아픔을 함께 하거나 상대의 잘못을 함께 나누기는 고사하고, 내가 져야할 책임마저 남에게 떠넘기는 세상입니다. 그러나 물은 나의 책임뿐 아니라 너의 아픔과 고통을, 너의 더러움과 모든 허물까지 기꺼이 나의 것으로 담당하는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밥을 굶고는 몇 일 살 수 있어도 물 없이는 살 수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만큼 물은 우리 삶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겠지요. 오늘도 물로 씻고 몇 잔의 물을 마셨습니다. 우리는 매일 물을 대하면서도 물의 노래를 잊고 삽니다. 요즘 1년 중 가장 많이 비가 오는 때입니다. 물이 부르는 사랑의 노래가 우리 모두의 마음에 들려지기를 소망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