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애

자기를 못 지키는 법관

황령산산지기 2022. 7. 3. 06:42

자기를 못 지키는 법관

 

국정원장이 예산의 일부를 청와대에 보냈다.
대통령은 그 돈으로 만나는 사람들에게 격려금으로 지급했다.
대통령은 움직일 때마다 돈이 필요했다.
군부대를 시찰 할 때도 장애인시설을 찾았을 때도 그냥 돌아올 수 없었다.
그게 대통령이었다. 명절 때가 되면 비서나 직원들에게도 조금씩 돈을 주어야 했다.
국정원은 비서실이나 경호실과 마찬가지로 대통령 직속이었다. 
대통령은 직속인 국정원의 예산을 일부 쓰는 것에 대해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보고를 받았었다.
정권이 바뀌자 박근혜와 측근인 국정원장에 대한 칼날이 겨누어졌다.
력의 칼 역할을 하는 검찰은 국정원장이 대통령에게 보낸 예산을 어떻게 법으로 엮을까 고심하다가
궁여지책으로 건 죄명이 뇌물과 회계직원의 횡령죄로 국정원장과 박근혜 대통령을 기소했다. 
 
변호사들이 법정에서 펄펄 뛰었다.
국정원장을 회계직원으로 본다면 장관들이나 대법원장 그 어떤 관료도 그렇게 볼 수 있는 게 아니냐고 따졌다.
변호사들은 또 굳이 흠을 잡자면 예산의 유용에 불과 한 걸 어떻게 형사범죄로 만들어 감옥에 넣을 수 있느냐고 했다.
변호사들은 박근혜 대통령이 공사를 분명히 하고 돈에 대해 깨끗하려고 한 점은 국민들 모두가 알고 있다고 했다.
한마디로 박근혜 대통령이나 예산 일부를 보낸 국정원장에게는 범죄의 고의자체가 없었다.
일심과 이심의 판사들은 그 돈은 뇌물이 아니라고 했다.
그리고 국정원장이 회계직원이 아니라고 했다. 당연한 논리였다. 
 
그러나 대법관은 달랐다.
일심과 이심의 판사들이 재판을 잘못했다면서 그 판결을 파기하고 다시 하라고 사건을 돌려보냈다.
담당 대법관은 국정원장은 회계직원으로 보인다고 했다.
보통사람들과 일반 판사의 눈과 대법관의 시각이 전혀 달랐다.
재판을 다시 하게 된 고등법원 법정에서였다. 담당 재판장이 입맛이 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나는 국정원장이 회계직원으로 보이지 않고 대통령이 받은 그 돈이 뇌물로 보이지 않았어요.
그래서 그렇게 재판을 했었는데 다시 하라니, 참”
 
고등법원 판사들은 희게 보이는 걸 검다고 판결해야 하는 입장이 됐다.
삼십년 넘게 변호사 생활을 하면서 더러 보는 장면이었다.
판사는 법과 양심에 따라 재판을 하도록 되어 있지만 대법관이 지시하면
양심에 거슬려도 정당한 법 해석이 아니어도 따라야 하는 것 같았다.
 
법이 정치에 오염되면 법치를 기본으로 하는 민주주의는 무너진다. 
박정희 대통령을 시해한 김재규 재판 때였다. 
정권을 잡은 신군부는 조속한 사형의 확정을 담당 대법관에게 요구했다.
신군부의 실세는 나중에 그 보답을 하겠다고 약속했다. 정권의 뜻대로 빠른 사형집행이 있었다.
담당 대법관은 대법원장이 됐다. 그리고 후에 마포대교에서 몸을 던져 생명을 끊었다.
유서도 발견이 안 되고 그의 자살배경은 영구히 밝혀지지 않았다. 
김대중내란음모사건의 재판에서 백일이 넘는 불법구속상태에서 조사가 있었다.
관여했던 판사는 그걸 알면서도 외면했다.
그리고 후일 권력을 찾아가 전국구 국회의원 자리를 청탁하기도 했었다.
자기를 다스리지 못하고 엉터리 법 기술에만 능란한 법관들도 종종 있었다.
어떤 경전에 있던 이런 말이 떠오른다.
 
‘활 만드는 사람이 화살을 다루고 배 타는 사람은 배를 끌고 목수는 나무를 다루고 지혜 있는 사람은 자기를 다룬다.
겸손하라, 깨달으라, 채찍질하라’
 
나와 같이 돈황과 우루무치를 여행했던 변호사가 있다.
그는 대법관을 지내기도 하고 헌법재판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총리의 물망에 오르기도 했었다. 그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대법원판례 그거 말이죠, 몇 달만 지나면 아무런 쓸모도 없는 게 되요.
그 때 그때 그 상황에서 필요에 의해 만들어 진 거니까.
그런데 로스쿨 아이들이 그걸 금과옥조처럼 달달 외운다니까.
그 속에 진리도 법리도 없을 수 있는데 말이야.”
 
그 말은 많은 걸 함축하고 있었다. 나와 군대장교 동기인 또 다른 대법관은 이런 말을 하기도 했다.
 
“대법관이라는 게 되어 보니까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국가의 흐름을 바꿀 수도 있는 자리더라고.” 
 
권력에 앞장선 검사나 국정원장을 회계직원으로 본 대법관이
평생 한 점의 부끄러움 없이 그 소신을 지켰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