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애

집착

황령산산지기 2021. 10. 17. 06:34

사랑이 집착으로 변질되는 것은 사랑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사랑을 집착이라 하는 것은 자신을 속이는 계략에 불과하다.

집착하기 위해서 먼저 사랑하는 척하는 것이다.

 

그런 사랑에 빠지면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이 도구로 전락한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모든 불행이 시작된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심리적 기제는 무엇인가?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며칠 전에 한 남자가 나를 찾아왔다. 그는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가 ‘저는 한 여자를 사랑했습니다. 정말로 사랑했습니다.

그 여자가 죽던 날, 저는 너무 슬퍼서 목 놓아 울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마음속 깊은 곳에서 이제는 제가 자유로워졌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커다란 짐을 내려놓은 것 같았습니다.

전 자유를 느끼며 비로소 깊게 심호흡을 할 수 있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때야 그는 자기 마음속에 있는 두 번째 층을 의식하게 된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슬픔에 빠져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나는 그녀 없이는 살 수 없어. 그것은 불가능해. 나는 이제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야.’

 

그러나 더 깊은 곳에서는, ‘이제야 나는 자유로워졌어. 마음이 한결 편안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보다 더 아래 있는 세 번째 층은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 의식의 층은 그에게 이렇게 말한다.

 

‘도대체 무슨 짓을 하는 거야? 죽은 이의 몸이 네 앞에 누워 있는데 너는 지금 죄책감을 느낀다고 말하고 있구나.

도와 달라고. 너의 마음속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거냐고. 그녀를 이렇게 빨리 배신해도 되는 걸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도 배신한 사람은 없다.

사랑이 집착으로 변하면, 사랑은 짐이며 구속이다. 그러나 사랑은 왜 집착으로 변하는 것일까?

 

우선 집착으로 변하는 사랑은 애초부터 사랑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그것은 사랑이라는 환상에 불과했다. 사랑이 아닌 것을 사랑이라고 속였다. 정말로 필요했던 것은 집착이었다.

자기 내면으로 깊이 들어가 보면 그 밑바닥에 노예가 되고자 하는 욕구가 있음을 깨닫게 된다.

 

사람들의 내면에는 자유에 대한 미묘한 두려움이 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은 노예가 되어 싶어 하는 욕구를 숨긴다.

물론, 모두 자유로워지고 싶다고 말한다.

그러나 아무도 진정으로 자유로울 수 있는 용기는 없다.

진정 자유롭다면 홀로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홀로 있을 용기가 있다면 그때야 비로소 자유로울 수 있다.

 

그러나 아무도 홀로 있을 용기가 없다. 누군가 필요하다. 왜 다른 사람이 필요한가?

자신의 외로움이 두렵기 때문이다. 홀로 있는 것이 지겹기 때문이다.

쓸쓸할 때는 모든 일이 무의미한 것처럼 느껴진다.

다른 사람과 함께 있을 때는 일부러 주위에 여러 가지 의미를 갖다 붙인다.

 

- 오쇼의 <사랑이란 무엇인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