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란?

정점

황령산산지기 2022. 6. 12. 12:15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늙는다는 것도 두려움을 낳는다.

늙는다는 것은 죽음을 향한 첫걸음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노년의 삶 역시 아름답다.

자신의 존재가 자연스럽게 무르익고 성장하고 성숙하는 기간이다.

 

순간에서 순간으로의 삶을 살고 삶이 안겨주는 모든 도전을 겪고 삶이 주는 모든 기회를 활용하고

삶이 초대하는 미지의 세계로 도전하는 삶을 살았다면 노년은 곧 성숙미를 얻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노년은 질병이 될 뿐이다.

불행하게도 많은 사람들이 그저 나이를 먹고 늙어가면서도 그에 상응하는 성숙을 이루지 못한다.

그런 노년은 짐이 된다. 육체는 나이를 먹었지만, 의식은 청소년기에 머물렀다.

 

육체는 늙었지만 내면의 삶은 성숙하지 못했다.

내면의 빛을 놓친 채로 죽음이 매일 다가오고 있다.

그러면 그대는 두려움에 떨게 되고, 자기 안에 엄청난 고뇌가 쌓여간다.

 

삶을 옳게 사는 사람은 노년의 자신을 깊게 환영하며 맞이한다.

노년은 이제 그들이 꽃으로 만개하고 결실을 맺어서 자신이 성취한 것을 나누는 시기라는 걸 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노년은 질병에 불과하기 때문에 그 모습이 너무나도 추하다.

 

오르가슴은 성숙하지 못했고 점점 더 나약하고 허약하고 무기력해지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노년은 삶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기이다.

 

유년시절의 어리석음은 모두 사라지고,

청소년기의 열병과 열정은 모두 잦아들고, 평온과 침묵, 명상과 사마디가 찾아온다.

 

노년은 매우 아름답다. 그리고 그래야만 한다. 삶 전체가 그 방향으로 나아가기 때문이다.

그 시기는 삶의 정점이 되어야 한다. 처음부터 어떻게 정점에 도달하겠는가?

중간에 어떻게 정상이 오르겠는가?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이, 자신의 유년시절이 정점이라고 여긴다면, 그대의 삶은 모두 고통의 연속이 될 것이다.

그대는 이미 자신의 정상에 도달했기에 그 이후로 모든 것은 하락하고 추락할 것이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듯이, 젊은 시절이 자신의 최고 정점이었다고 여긴다면,

서른다섯 살 이후로 그대는 슬프고 우울해질 것이다.

그대는 매일 얻을 게 없고 잃기만 할 것이기 때문이다.

 

에너지를 잃고 허약해질 것이고 질병에 잘 걸리게 될 것이고 죽음이 곧 문을 두드릴 것이다.

이제 집이 아니라 병원에서 살게 된다. 그러면 어떻게 행복할 수 있겠는가?

 

동양은 유년시절이나 젊은 시절을 삶의 정점이라고 여겨본 적이 없다.

그 최고 봉우리는 마지막을 기다리고 있다.

삶이 옳게 흘러간다면 그대는 더 높은 봉우리에 도달할 것이다.

죽음은 삶이 도달하는 최고의 정점이다.

 

오쇼의 <초월의 명상>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