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화문(蓮花紋)
연화무늬의 기원
연화(蓮花)는 부용(芙蓉), 부거(芙蕖), 하화(荷花)라고도 하며,
태양 숭배 사상에서 기인한 이집트의 로터스(lotus) 장식에서 유래하여 장식문양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이집트에서는 매년 나일강이 범람할 때마다 연꽃이 피었기 때문에 일찍부터 신앙의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연꽃은 이처럼 물과 관계가 깊으므로, 문명의 발생 지역에서 중요한 하나의 상징물로서 자리잡게 되었다.
인도에서는 불교 성립 이전부터 연화를 신성한 식물로 여겼다.
연화에 대해 기록한 가장 오래된 문헌인『베다(Veda)』에서는 우주 만물의 창조를 설명하면서
태초의 물위에 떠 있는 연화를 조물주와 연관되는 상징이라고 하였고,
인간의 심장을 8엽 연화에 비유하고 있다.
중국 사료(史料)에 남아있는 연화 관련 기록으로는『시경(詩經)』의「정풍(鄭風)」,「이아(爾雅)」에
부거(芙蕖)라는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는 것이 처음으로,
이 책이 한대(漢代)에 쓰여진 것으로 미루어 보아 중국에서 역시 일찍부터 연화에 대한 인식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연화무늬의 상징
1. 태양
연꽃과 태양신을 동일시하는 것은 태양이 뜨면 동시에 연꽃잎도 피고, 지면 연꽃잎도 오므라지는 특성에서 비롯된 것으로, 태양이 다시 떠오르는 것과 같이 연꽃이 재생(再生)하는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태양과 연화와의 관련성은 고대 중국에서도 나타난다. 한대(漢代) 화상석(畵象石)에 나타나는 일·월상도(日月象圖)에는 해와 달을 표현한 삼족오와 두꺼비가 각각 들어 있는 원각의 둘레에 8엽 연화가 표현되어 있다.
2. 불교·부처
불교 성립 이후 연꽃은 불교를 설명하기 위한 교리의 일부이자 불타의 상징으로 자리잡았다.
4월 초파일에 다는 연등 또한 이러한 의미로, 연꽃모양의 등은 불타의 진리를 밝히고
그 진리가 퍼져나가며, 그것을 따른다는 구도(求道)의 뜻을 내포하고 있다.
또, 연꽃은 깨달음에 이른 수행자의 모습에 비유되기도 하고, 석가모니의 눈에 인간들이
호수의 연꽃으로 보였다고 하여 고해를 헤매고 있는 중생의 모습에 비유되기도 한다.
『무량수경(無量壽經)』에서는 연화가 정토에 생명을 탄생시키는 화생(化生)의 근원으로 나타난다.
즉, 극락에 태어난다는 것은 연꽃 속에 화생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아미타경(阿彌陀經)』에 표현된 아미타여래의 세계는 연꽃으로 장엄된 극락정토이며,
『화엄경(華嚴經)』에서의 연화장(蓮花藏)도 부처의 세계이자 정토를 의미한다.
예배의 대상인 불상에 연화가 장식되는 것은 교리와 연관이 된다.
불상의 광배(光背)에 연화를 장식하는 것은 연화가 광명의 상징이기 때문이고, 대좌에 연화를 장식하는 것은
천상의 보연화(寶蓮花) 위에 결과부좌(結跏趺坐)하는 것을 의미한다.
관음보살이 왼손에 든 연꽃은 중생의 불성(佛性) 자체를 상징하고,
연꽃의 생김새가 축을 중심으로 방사되는 바퀴살에 비유되어 윤회(輪廻)의 가르침을 암시하기도 하며,
불교의 교리를 상징하는 만다라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처럼 불교 전래 후 연꽃은 부처와 불교의 교리 그리고 생명의 근원으로서 인식되었다.
3. 신선·선비
도교에서 연꽃은 팔선(八仙)중 하나인 하선고(何仙姑)의 상징물이다.
또, 유교에서는 연화를 군자 또는 고고한 선비로 나타낸다.
유학자 주돈이(周敦頤)는『애련설(愛蓮說)』에서 내가 오직 연꽃을 사랑함은 진흙 속에서 났지만 물들지 않고,
맑은 물결에 씻어도 요염하지 않으며, 속이 소통하고 밖이 곧으며, 덩굴지지 않고 가지가 없기 때문이다.
향기가 멀수록 더욱 맑으며, 깨끗이 우뚝 서있는 품은 멀리서 볼 것이요,
다붓하여 구경하지 않을 것이니, 그러므로 연은 꽃 중에서 군자라 하겠다.‘라고 표현하였다.
이처럼 연화는 군자화로 칭해지며 선비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은 꽃이었다.
4. 청정무구·생명
진흙 속이나 더러운 곳에 있어도 항상 맑은 모습으로 피어나는 연꽃은 청정함과 순수함, 완전 무결함을 나타낸다.
이러한 속성은 초기의 불교에서 중생의 마음속에 있는 세속에 물들지 않은 수행의 이상을 나타내는 것이다.
또, 연꽃 씨앗은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싹을 틔우는 강인한 생명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연꽃은 예전부터 생명의 창조, 번영의 상징으로 애호되었다.
『본초강목(本草綱目)』에서는 ‘연꽃은 생명력이 강하여 가히 영구적이다’라고 전한다.
5. 기타
연화무늬는 점차 종교적인 상징성이 약화되면서 만사가 자신에게 이롭게 되기를 원하는
세속적인 관념과 결합하여 길상의 의미를 지닌 생활문양으로 자리잡았다.
꽃과 열매가 동시에 맺히는 연꽃의 특성은 연이어 자손을 얻는다는 뜻인 연생귀자(連生貴子)의 의미를 갖게 되었고,
연밭에서 동자들이 놀고 있거나 동자가 연꽃을 들고 있는 것 역시 연생귀자(連生貴子)를 의미한다.
뿌리가 사방으로 퍼지고 같은 뿌리의 마디마다 잎과 꽃이 자라는 생태적 특징은
사람은 근본을 같이 한다는 의미가 되었다.
그리고 연꽃의 씨주머니 속에는 많은 씨앗이 들어 있으므로 풍요와 다산을 상징하여,
그림이나 자수, 부인의 의복 등에 자주 사용되었다.
연(蓮)은 하(荷)로도 쓴다.
하(荷)는 중국음으로 화(和), 합(合)과 동음이기 때문에 연꽃을 그린 그림은 화목과 사랑을 뜻한다.
물고기와 함께 연화가 그려지는 경우는 평생토록 여유롭게 살기를 기원하는 연년유어(延年有餘)를,
연밥의 씨앗을 쪼는 새를 표현한 것은 생명의 근원인 씨앗을 획득한다는 의미에서 득남을 기원하는 의미를 갖는다.
특별히 까치가 연밥을 쪼는 경우에는 과거에 연이어 급제함을 뜻하는 희득연과(喜得連科)의 의미이다.
연꽃이 연당 주변의 풍경과 함께 그려진 것은
인간사의 즐거움과 부부의 금슬이 좋기를 기원하는 마음을 담은 것이다.
연화무늬의 조형적 특징
연화무늬의 형태는 정면형과 측면형, 연봉우리형, 연잎[荷葉]형 등으로 나눌 수 있다.
4엽, 6엽, 8엽의 화판이 모여 하나의 만개한 모양을 이룬 정면형은
화판 중앙에 자방이 있는 연화를 위에서 본 형태를 말한다.
이러한 형태는 화문형식의 가장 일반적인 도형으로 시대적·지역적 특징을 잘 반영한다.
활짝 핀 연꽃을 옆에서 본 측면형 연화무늬는 주로 부채꼴형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넝쿨과 결합하여 장식문양으로 사용되는 연화당초무늬[蓮花唐草文],
연꽃잎 하나하나를 가로로 길게 펼친 형태의 연판무늬[蓮瓣文]도 연화의 형태를 응용한 예이다.
연화무늬의 활용
연화장식이 불교유적에 처음 나타난 예로는 기원전 3세기경
인도의 아쇼카왕 석주(石柱)의 수하연판주두(垂下蓮瓣柱頭)를 들 수 있다.
중국의 경우에는 북위(北魏)의 운강(雲岡)·돈황(敦煌) 석굴과 북제(北齊) 말엽의 불상 광배의 연화무늬 장식을 통해 연화무늬의 초기 형식이 확인되고 있다.
이는 한반도의 삼국시대 미술 전반에 걸쳐 많은 영향을 주어, 삼국시대나 통일신라시대에는 주로 고분벽화나 불교미술품의 장식무늬로 사용되었으며 고려시대로 접어들면서 청자나 동경 같은 생활용품으로 사용범위가 확대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연화무늬의 근본적인 상징이나 의미에 비중을 두기보다는 장식적인 용도로 사용되어, 분청사기나 청화백자와 같은 도자기를 비롯하여 나전칠기, 수예품(繡藝品), 건물의 단청 등 다양한 대상에 장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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