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처럼 '13척 VS 수백척' 을 이긴 이순신 장군의 해전이라는 걸 떠나, 이 명량해전은
한편으로 보자면 외교적-전략적 의미도 결정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왜 그렇냐면...
직산전투 이후 임시로 남하했던 일본군들은 명량해전의 여부에 따라 * 다시 북상할 예정이었고
그들의 보급은 다시 한번 황해안 일대를 휘젓는 일본의 수군으로부터 충당하겠다는 계획이 있었던 것
조선의 조운 체제를 생각해보았을 때 황해안이 일본의 수중에 넘어갔다는 게 어떤 의미이냐면...
사실상 모든 물류의 유통권을 일본에 넘겨주게 된다는 소리다.
뿐만 아니다. 황해안 인근의 기항지가 있는 거점들을 점령당한다면 명나라의 해안과도 가까워지는데...
다르게 말하자면 명나라도 해안가에서 일본 정규군의 직접 타격을 받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참고로, 명의 수도 북경(北京, 베이징)도 황해안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어쨌든 이렇게 황해안이 넘어갔다는 가정하, 조선 조정에서는 또다시 몽진을 한다 하더라도
'더더욱 떡락한 민심 + 더더욱 불리해진 전황' 을 껴안고 끝까지 전쟁을 수행할 수 있었을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임진년의 임해군, 순화군 시즌 2다. 물론 사직의 단절과 함께...
즉, 명량해전은
침략국으로부터 '바람 앞의 등불같은 자국을 회생' 시키는 것은 물론,
'친조 연합국의 직격 가능성을 방지' 한 외교적 성과도 낸 해전이라는 것
* 일본의 종군승려 케이넨(慶念)의 『일일기(日日記)』 에서
"한양을 치기 위한 회의를 했다." , "한양으로 가는 길이 즐겁다."
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무슨 말이 필요할까요? 당신은 그저...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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