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란?

죽은 후의 삶이 존재할까

황령산산지기 2021. 12. 25. 05:05

꿈을 꾸었다. 죽은 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왔다.

아기 때부터 이십대 중반까지 내가 살던 낙산 자락의 오래된 일본식 작은 목조건물이었다.

아버지가 돌아오니까 당장 집이 달라졌다.

낡고 더럽고 부서져 가던 재래식 화장실이 깨끗하게 닦여져 있었다.

 

아버지는 변기까지 새로 만들어 놓았다. 깔끔한 목공솜씨였다.

쓸쓸한 냉기가 돌던 집안이 훈훈해 진 느낌이었다. 잠을 깼다.

아버지가 저세상으로 간지 삼십년이 훨씬 넘었는데도 이따금씩 꿈속으로 찾아오신다.

육년 전 세상을 떠난 어머니도 생생하게 꿈에 나타나곤 한다.

할아버지의 묘를 이장하려고 했었다.

가난했던 시절 야산 위의 붉은 흙으로 만든 봉분은 떼가 자라지 않고 황량한 느낌이었다.

산 아래 흙이 좋은 곳 푸른 나무 아래로 할아버지를 옮기려고 하기 전날 밤이었다.

할아버지가 꿈에 생생하게 나타나서 명확하게 싫다고 의사를 표시했다.

 

너무 신기했다. 그래서 나는 이장을 하지 않았다.

지난밤 유튜브에서 죽음학학회 회장이라는 최준식 교수의 강의하는 장면을 우연히 보았다.

“잠수를 할 때 잠수복이 필요한 것처럼 지구에 오는 우리는

몸이라는 지구 옷을 입고 살다가 죽으면 그 옷을 벗고 영체가 나갑니다.”

성경속에서 예수는 우리의 영이 하늘나라에서 새로운 옷을 입는다고 하고 있다.

그때는 한 단계 진화한 옷이라고 했다. 죽음학 교수가 말을 계속했다.

“사후의 삶을 부정하는 종교는 없습니다. 의학적으로도 근사체험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의식은 뇌사상태와는 상관없어요. 뇌가 없어진다고 의식이 없어지는 게 아닙니다.

텔레비전 수상기가 없어져도 프로그램은 있어요. 수상기를 바꿔서 볼 수 있어요.

스웨덴 보리같이 사후세계를 명확히 보고 글을 남긴 사람도 있습니다.

그의 글을 읽고 괴테와 발자크, 에머슨 일본의 스즈키 다이세스가 감명을 받았지 않습니까?”

교수는 사후의 존재를 확신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가 계속했다.

“죽은 부모들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자식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그중 하나가 꿈이예요.

꿈은 보통 망각을 하는데 생생하게 나타나서 잊혀지지 않는 조상이 있죠?

그건 죽은 사람의 영이 자손에게 찾아와 메시지를 전하는 겁니다.”

그럴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성경을 보면 영적존재인 천사는 직접 인간에게 나타나기도 하고 꿈속에 등장하기도 했다.

마음대로인 것 같았다. 예수가 변화산으로 올라갔을 때 죽은 모세가 나타나 대화를 하기도 했다.

나는 경전이나 죽음학 교수와는 달리 임종 직전의 아버지로부터 귀중한 증언을 듣기도 했다.

삼십이년전 냉기 서린 바람이 불던 봄이었다.

평소에 일찍 일어나던 아버지가 점심무렵이 됐는데도 방의 침대에 그대로 누워있었다.

아버지 옆으로 갔다. 몸살 기운이 있어 보였다. 나를 보더니 아버지가 앞뒤 내용 없이 한마디 했다.

“나도 이렇게 되는구나”

아버지는 죽음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아버지를 병원으로 옮겼다.

아버지는 바로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의사는 아버지의 죽음을 예고했다.

병실 침대 위에 있는 아버지는 눈을 뜨고 조용히 천정을 바라보고 있었다.

죽음을 앞두고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이었다. 다음 날 아침이었다.

나는 다시 중환자실로 들어갔다.

아버지의 얼굴은 생명력이 거의 빠져 나가는 것 같았다. 아버지가 이런 말을 했다.

“내가 좋은 데로 가려고 하는데 간호사들이 주사바늘로 찌르고 의사가 전기충격을 해서 못갔어.

의사가 하는 전기충격은 두 번 죽는 셈이구나. 이왕 죽는 건데 더 이상 하지 못하게 해다오.”

좋은 데로 가려고 했다는 아버지의 한마디가 너무 신기했다.

아버지는 종교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오십대 후반 중풍이 걸리자 병상에서 신앙의 속성학교를 졸업한 셈이라고할까. 믿어지지가 않았다.

“아버지 정말 좋은 다른 세상이 있어?”

나는 마치 신대륙을 앞에 놓고 보는 경이로운 마음이 되어 물었다.

죽음을 앞에 둔 아버지가 아들에게 거짓말을 할 리가 없었다. 이론이나 추상적인 관념도 있을 수 없었다.

“응, 있어.”

아버지의 표정에는 어떤 확신이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의사에게 더 이상 전기충격을 하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다.

의사는 곧 죽음이 다가온다고 하며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볼멘소리를 했다.

아버지는 침착하게 유언을 다 마치고 “내가 졸리우니까 가라.”라고 말했다.

 

내가 돌아서는 순간 아버지는 큰 하품을 하더니 조용히 죽음의 문턱을 넘어갔다.

그리고 참 오랜 세월이 흘렀다. 나는 그때의 아버지보다 더 많은 나이가 됐다.

요즈음은 가끔씩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할아버지가 강 건너

저세상의 나루터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사후의 그런 세계와 사랑하는 사람의 재회가 있었으면 하는 심정이다.

그게 없다면 이 세상의 삶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갤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