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란?

성자와 죄인의 죽음

황령산산지기 2021. 12. 4. 15:35



점심 무렵 친구가 하는 컨설팅 사무실을 들렸다. 퇴직을 한 몇 명이 모여 자문에 응하는 법인이었다.

그 구석의 칸막이 책상 앞에 음울하게 앉아있던 고교후배가 있었다.

그는 늦은 밤에 혼자 사무실에 남아 컴퓨터바둑을 두면서 음울하게 지냈다.

“그 친구 죽었어. 사무실에서 전혀 몰랐어. 가족이 장례를 다 치르고 나서야 통보를 한 거야.

문상도 가지 못했어. 왜 그런지 몰라.”

물거품이 스러지듯 가뭇없이 주위에서 사람들이 사라진다.변호사를 하면서 서초동 부근에서 삼십년을 보냈다.

웃고 떠들며 법원 앞길을 다니던 선배 변호사들이 어느 날 갑자기 연기같이 사라져 버리곤 했다.

죽음이 낯설지 않게 주변에 다가와 있다. 여러 사람의 죽는 모습을 눈여겨 보았다.

 

성자로 알려진 한 노인을 찾아가 인사를 한 적이 있었다.

작은 아파트의 구석방에 누워있던 그는 힘이 빠진 다리를 떨면서 거실로 나와 간신히 나를 맞았다.

인간의 육체는 성자든 보통사람이든 용량이 떨어진 밧데리처럼 세월이 지나면 그 에너지가 소멸하는 것 같다.

그 노인이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내 나이가 아흔여섯이오. 수도원을 만들고 그 안에서 묵상을 하고 살았소.

그런데 돌이켜 보면 평생 선한 일을 하나도 하지 못했소.

남들이 겉으로 보고 선하다고 한 것도 사실은 모두가 위선이었소.

잘나 보이고 싶었던 허영이었지. 나는 그런 사람이었소.”

그는 무서울 정도로 자기의 내면을 폭로하고 있었다. 그가 덧붙였다.

“사람들이 하나님 하나님 하는데 그 존재는 영(靈)이오. 그 영이 지금 우리 옆에 있소.”

몸은 노쇠해도 그의 영은 전원에 연결 되어 에너지를 받는 기계같이

옆에 있는 그분의 영에 의해 강하게 작동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의 입에서 폭포같이 성경 귀절들이 흘러나왔다.

그 성자가 얼마 후에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는 그분의 오라는 분부를 감사하며 받아들였을까.

 

그에게 죽음은 자기를 정화하는 기회 세상의 죄를 씻는 의식이었을까?

죽은 후에 그가 어떻게 됐을까 궁금했다. 죽음의 강 한줄기를 건너 저편 강변에 갔을까?

어머니의 임종을 옆에서 지켰다. 어머니는 죽음 직전까지 정신이 맑은 샘물 같았다.

의식이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어머니는 옆에 있는 미련한 아들이 그래도 걱정인 것 같았다.

어머니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아들, 살아 보니까 고독이라는 게 참 힘이 들더구나. 그렇지만 어떻게 하겠니?

인생이 누구나 다 고독인데 말이야. 그러니 고독을 잘 참고 견디다가 오너라.”

어머니는 마지막으로 젖먹던 힘까지 내서 팔을 들어올렸다.

그리고는 침대 모서리를 잡고 있던 내 팔을 한번 쓸어보고는 잠자듯 눈을 감았다.

죽은 어머니가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부활의 아침까지 잠자고 계실까 아니면 내가 상상할 수 없는 어떤 상태로 바뀌어 다른 나라나 미래의 나라로 갔을까?

오라고 했는데 어디로 오라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변호사를 하면서 우연히 내가 알게 된 남자가 있다. 그는 평생 죄에 젖어 있었다.

 

그에게 불법은 일상이었다. 그는 항상 가난했다. 가족도 없었다. 그가 내 집에 와서 잔 적이 있었다.

그는 영혼을 교류하려고 하지 않고 눈치만 보는 느낌이었다.

그가 내가 관여하던 노숙자합숙소를 찾아와 거기서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옆에서 그의 죽음을 지켜본 합숙소 직원이 그의 마지막 모습을 전했다.

 

죽어가면서 그렇게 펑펑 울더라는 것이다. 그의 회한이 가슴속에 생생하게 전해지는 것 같았다. 

아침에 해가 뜨고 저녁에 해가 진다. 사람이 태어나면 죽는다. 당연한 자연법칙이다.

그런데도 누가 죽으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다. 죽음은 있을 수 없는 일이고 형벌 같기도 하다.

공자나 석가는 그 시절 칠십의 장수를 누리며 그 사업을 이루었다. 

 

예수는 삼십의 나이에 스스로 생명을 버리면서 알려주었다.

육체가 아니라 영이 되어 세상에 임하겠다고.

죽음은 고통의 극치인 동시에 참된 자유로 들어가는 문이라고.

그는 영이 되어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나타난다.

 

그를 따라 많은 의인들이 죽음을 통해 그가 추구하던 것을 이루었다.

그들에게 죽음이란 무엇이었을까?

자신을 정화하는 기회, 세상의 죄를 씻는 능력, 영생으로 들어가는 준비라고 한다면 너무 거창한 관념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