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는 황금의 나라였다.
1154년 이슬람의 지리학자인 알 이드리쉬가 그린 세계지도에는 신라로 가는 항해로가 그려져 있다. 그는 신라의 특징을 이렇게 묘사했다. “중국의 동쪽 신라에는 황금이 많이 산출되고 있어 심지어 개도 금목걸이를 하고 다닌다.” 이보다 앞선 846년 이븐 그루다시아가 저술한 ‘제 도로 및 제국지’란 책에는 “이슬람에서는 신라로부터 비단, 도포, 도기, 인삼 등 11종의 무역품을 수입하고 있다. 황금이 많이 산출되고 있어 살기에 좋은 나라이다”라고 적혀 있다. 금이 귀한 대접을 받는 이유 중의 하나는 희소성이다. 인류가 지금까지 파낸 금의 총량은 15만t 정도이다. 부피로 보면 63빌등 1층 면적밖에 안 된다. 앞으로 채굴할 수 있는 지하 매장량도 7만t에 불과하다. 금광석 1t을 채취할 경우 생산되는 금의 양은 기껏 5g쯤이라고 한다.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곡 ‘플루토스’에서 두 행인은 “플루토스 때문에 세상에 더러운 놈들이 점점 늘어난다”고 원망한다. 플루토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부의 신’이다. 제우스의 벌을 받아 장님이 된 부의 신은 앞을 보지 못해 아무렇게나 돈을 뿌리고 다닌다. 두 행인은 정직한 사람이 보상받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플루토스의 눈을 뜨게 하고 싶었다. 이들은 플루토스의 눈을 고칠 비약을 구하러 명의를 찾아다녔다. 마침내 플루토스는 비약을 먹고 시력을 되찾았다. 그 소식을 듣고 가난뱅이들이 몰려와 부의 신에게 경배를 올리자 최고의 신 제우스가 뒷방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성서에도 이와 유사한 금송아지 이야기가 있다.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이 담긴 율법의 판을 받기 위해 40일간 백성을 떠나 시나이 산에 올라간다. 의심에 사로잡힌 백성들은 모세의 형 아론에게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어 달라”라고 소리친다. 이들은 여자와 이이들의 금귀고리를 모아 녹여서 송아지 모양의 우상을 만든다. 백성들이 금송아지 앞에 엎드려 절을 하고 춤을 추자 산에서 내려온 모세가 격분해 십계명이 새겨진 율법의 판을 부숴버린다. 성서의 금송아지는 돈과 황금을 상징한다. 인간들이 자기가 창조한 돈을 창조주의 자리에 올려놓고 추앙하는 꼴이다. 물질을 숭배하면 신은 뒤쪽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 성서 마태복음은 돈의 위험성을 이렇게 경고한다.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전국책’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중국 제나라의 어떤 사람이 금을 무척 좋아했다. 그는 의관을 단정히 차려입고 선비인 것처럼 꾸민 후 시장의 금 가게로 들어갔다. 가게에선 사람들이 북적거리며 흥정을 하고 있었다. 그는 금덩어리 하나를 훔쳐 달아나려다 붙잡히고 말았다. 관청의 관리가 호통을 치며 물었다. “어찌하여 사람들이 다 지켜보고 있는데 금을 훔쳤느냐?” “금을 훔칠 생각을 하니 사람들은 보이지 않고 금만 보였습니다.” 제나라 사람을 비웃을 자격이 우리에게 없다. 돈에 빠져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사람이 주위에 즐비하지 않는가. 돈에 집착하면 돈 외에는 그 무엇도 보이지 않는다. 사람도, 신도 보이지 않는다. 금은 이집트 신화에서 태양을 상징하는 '신의 색'이었다. 이집트인들은 태양신의 피부가 순금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믿었다. 옛사람들은 신을 찬미하기 위해 금을 사용했다. 그러나 오늘의 사람들은 돈과 황금을 신으로 받든다. 돈이 인간의 영혼을 지배하고 있다. 글: 배연국(세계일보 논설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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