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라만상

여여함

황령산산지기 2021. 10. 24. 06:18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고 느껴보라.

세상의 이치가 여여함을 느껴보라.

이런 식 밖에 없다.

다른 길이 없는데 왜 그렇게 저항하는 것인가? 여여함이란 저항하지 않음을 뜻한다.

 

어떤 것에 대한 기대가 전혀 없다.

풀은 초록으로 빛나고 하늘은 끝없이 푸르고 대양의 파도는 잔잔하게 밀려오고 새들은 흥겹게 노래 부른다.

삶은 원래 그런 것이기 때문에 그대는 저항할 필요가 전혀 없다.

 

그러면 돌연 변형이 일어난다. 불편하게 느껴졌던 것이 이제는 모두 편안하게 느껴진다.

그대는 그 어떤 것에도 반대하지 않는다.

그대는 세상 만물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행복해한다.

 

따라서 그대가 가장 먼저 했어야 할 일은 존재계의 바다에서 억지로 헤엄치기보다는 그저 유유히 떠다니는 것이었다.

강물은 자연스럽게 떠내려갈 준비가 된 사람만 바다로 데려가기 때문이다.

우리가 저항하지 않으면 삶은 초월의 세계로 우리를 데려간다.

 

두 번째, 그대는 죽음으로부터 자신을 구하기보다 죽음으로 자신을 해체해야 한다.

우리가 피하고자 하는 것은 죽는 일이며 일어날 일은 우리의 노력이 없이도 일어날 것이다.

죽을 준비가 된 사람은 자신의 문을 열고 신성을 맞이할 수 있다.

그러나 죽음이 두려워서 문을 닫게 되면 초월에 도달할 수 없을 것이다.

명상이란 바로 ‘죽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대가 체험했어야 할 마지막 세 번째는 바로 ‘여여함’이다.

꽃과 가시를 모두 받아들여야만 그대는 평화를 얻게 된다.

평화는 ‘완전한 수용’에서 얻어지는 열매이다.

평화는 평화의 부재마저 받아들일 준비가 된 사람에게만 주어진다.

 

눈을 감고 몸을 느슨하게 이완하라. 그리고 육체에 생명이 전혀 없는 것처럼 느껴보라.

육체가 편안하게 이완하는 것을 느껴보라.

계속 이렇게 느껴보면 그대는 자신이 육체의 주인이 아님을 알게 될 것이다.

 

육체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모든 세포와 신경이 편하게 이완할 것이다.

강물에 떠내려가는 것처럼 육체를 그저 내버려두어라.

마치 마른 낙엽처럼 삶의 강물이 바라는 대로 떠내려가게 자신을 맡겨보라.

 

이제 점차 호흡이 잦아드는 것을 느끼게 된다.

호흡이 잦아들면서 그대는 자신이 해체되는 것을 느낀다.

자신이 장작더미 위에서 불타오르는 것을 느낀다.

이제 그대는 완전히 소각되었다. 재마저도 남지 않았다.

 

이제 주시자가 되어 새들의 노랫소리, 따스한 햇살, 시원한 바다의 파도를 느껴보라.

그저 수용하고 자각하고 관찰하라.

육체는 편안하게 이완되고 호흡은 낮게 잦아들고 그대는 여여함에 녹아든다.

그대는 이 모든 것을 주시할 뿐이다.

 

그대는 점차 내면의 변형을 느낀다.

그리고 돌연 내면의 무언가가 고요해짐을 느낀다.

마음이 고요해지고 텅 비게 된다. 그것을 주시하고 체험하라.

 

그대의 떠다니는 육체를 강물이 데려갔다.

장작더미가 그 육체를 태워버렸다. 그대는 그 모든 과정을 주시했다.

이런 무아지경에서 우리가 신성이라고 부르는 지복이 피어난다.

 

이제 두세 번 천천히 호흡하라.

숨을 쉴 때마다 신선함과 고요함이 느껴지고 지복의 즐거움이 밀려올 것이다.

이제 천천히 눈을 뜨고 명상에서 빠져나와라.

 

오쇼의 <초월의 명상> 중에서

 

 

 

출처: 어둠 속에 갇힌 불꽃 원문보기 글쓴이: 델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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