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노동의 시대는 끝났다

황령산산지기 2021. 9. 26. 08:01

류재훈(충북 청주)

 

노동의 시대는 끝났다-1

 

저자 대니얼 서스킨스 Daniel Susskind는 옥스퍼드 대학교 베일리얼 칼리지 경제학과 선임 연구원으로

뉴욕타임스는 ‘대선 후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한다’라고 평가를 받은 책이다.

 

1890년대의 말똥 대위기는 뉴욕의 말 트랩이 8마리의 말이 교대로 트랩을 끌며 전용궤도를 달리고,

영국은 이층 버스 규모의 버스가 12마리의 말이 교대로 끌었다.

 

이 말들이 한 해에 싸는 똥들이 엄청났을 것이다.

1912년이 되자 뉴욕은 말보다 내연기관의 차가 많아졌다.

5년 후 말 트랩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똥 대위기는 막을 내린다.

기술 진보가 말에게 일을 없앤 것처럼 인간에게 일어난다는 주장이 있다.

 

‘레온티예프’에 따르면 인간은 말처럼 컴퓨터와 로봇에 밀려난다.

일은 한꺼번에 사라지지 않는다,

조금씩 줄어들 뿐이다 컴퓨터 과학자들은 45년 안에 모든 ‘업무에서’ 기계가 인간을 앞설 확률이 50%로 봤다.

사라지지 않는 일자리는 성능이 뛰어난 기계도 못 하는 업무를 포함할 것이란다.

 

기계가 미치는 악영향을 걱정하는 불안은 20세기 내내 이어졌다.

자동화의 위협을 떠드는 책과 논문 보고서는 여럿이다.

멍청한 사람들은 자동화가 일자리를 모조리 없애리라 생각했지만,

똑똑한 사람들은 생산성이 올라가면 소득이 늘고 노동 수요가 늘 것으로 이해했다.

 

사람은 부유해질수록 더 많이 소비하고 일자리 수요도 창출한다.

실제로 경제는 노동자에게 돌아갈 일자리를 마련한다.

500년 전에 농장이 경제를 구성했지만, 300년 전에는 공장이 중심이었고,

오늘날은 사무실이 중심을 차지한다.

 

1900년 농업이 노동자 100명 중 41명을 고용했으나 오늘날은 2명이다. 39명은 제조업으로 갔다.

제조업도 줄어들어 9명만 고용한다. 나머지는 서비스업으로 갔다.

산업혁명부터 오늘까지 기계 때문에 자신이 실직하리라 염려했던 노동자는 틀렸다.

인간은 대체하는 새로운 힘과 보완하는 유익한 힘의 싸움에서 후자가 이겼다.

 

전체 고용률에서, 많은 나라가 저임금을 받는 간병인과 청소부,

보조 교사와 간호조무사, 관리인과 정원사, 웨이터와 미용사가 늘어났다.

 

중간 임금을 받는 비서와 행정 사무원, 생산직 노동자와 판매원은 줄었다.

노동시장은 갈수록 두 층으로 나뉘고 있다. 기술 진보는 숙련에 편향하지도 비숙련에 편향하지도 않는다.

기술 진보는 업무에 편향했다. 기계가 처리 못 하는 업무를 수행하는 노동자만 기술 변화에서 이익을 얻었다.

 

어느 일자리도 미래에 자동화될 수 있는 업무로 구성되지 않는다.

모든 일자리는 여러 업무로 구성되고 이 중 어떤 업무가 다른 업무보다 자동화되기가 쉬울 뿐이다.

시간이 흐르면 특정 악업의 구성 업무가 으레 바뀐다는 사실도 중요하다.

 

1980년대 인공지능의 침체기를 거쳐 1997년에 IBM이 개발한 딥블루 시스템이 실용주의 혁명을 부른다.

이후 실용주의 정신에 따라 여러 기계가 발명되어 영상을 분류하는 기계를

인간 시각 방식이 아닌 수백만 장의 사진으로 유사성을 찾는 방식으로 학습한

이미지넷 프로젝트가 구축되어 2016년에는 인간을 앞질렀다.

 

9세기 수학자 ‘무함마드 이븐 무사 알콰리즈미’의 이름에서 따온 ‘알고리즘’은 여러 명령어 집합을 뜻할 뿐이다.

현재 인공지능은 150년 전의 지적 혁명을 닮았다.

이 혁명은 우리가 또 다른 기계의 지적 능력을 어떻게 생각할지를 결정한다. 그 기계가 인간이다.

 

신앙심 깊은 학자와 AI 순수주의 자는 비슷하다.

종교인은 신이 만든 인간이라는 기계에, AI 연구자는 인간이 만든 기계에 흥미를 느낀다.

다윈은 가장 “복잡한 장기와 본능이 완벽해진 까닭은 인간의 이성과 비슷하면서도 뛰어난 어떤 수단 때문이 아니라,

당사자에게 유리한 조그마한 변이들이 수없이 싸였기 때문이다.” 말했다.

 

범용 인공지능에 사로잡혀 우리가 놓쳐 버린 것들은 ‘아르킬로코스’가 말한

“여우는 많은 것을 알지만, 고슴도치는 중요한 것 한 가지를 안다.”

 

인간을 이 두 부류로 분류를 한다.

여우처럼 얕게 많이 아는 사람과 고슴도치처럼 몇 가지를 깊이 아는 사람이다.

인간은 여우같이 우쭐대는 일에서 기계에 무릎 꿇지만, 다른 여러 일에는 기계를 앞선다.

 

협소 인공지능이 아닌 다양한 ’범용 인공지능’을 만들고 싫어한다.

인간을 닮은 기계로 노동자를 밀어내지 않더라도 우리는 기계에 위협받을 수 있다.

기계가 인간의 일을 야금야금 차지하기에 충분하다.

일의 미래를 생각하여 경계해야 할 대상은 여우가 아니라 고슴도치이다.

 

2014년 ’퓨 리서치 센터‘의 설문조사 결과 많은 전문가가 실용주의 혁명이 일으킨

모든 발전에 아랑곳없이 “공감, 창조성, 판단, 비판적 사고와 같이 오로지 인간만 지니는 특성들”이 있고

이런 특성이 있는 일자리는 절대 자동화되지 않으리라고 믿었다.

 

육체노동을 하거나 주위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을 보자.

무인 트랙터와 무인 착유기, 소몰이 드론, 가축에 부착하는 건강 추적 장치,

병충해 감지 카메라, 비료 농약 자동살포기 등이 90% 정도 사용되고 있다.

 

가장 흥분되는 것은, 무인 자동차와 무인 트럭이다.

무인 자동차는 인간의 정한 규칙을 따르지 않아도 된다.

수많은 시뮬레이션의 모든 센서 데이터를 이용 스스로 주행 방법을 익힐 줄 안다.

이 중 화물 운송은 중요하다. 군집 주행을 하면서 무사히 유럽을 가로질렀단다.

 

로봇 배달은 14킬로 높이로 날아 ’공중 물류 창고’을 특허 신청을 했단다.

자동차 제조 산업은 업무 잠식의 예다. 수제 부품을 표준 부품으로 교체하고 조립라인을 도입했다.

건설 산업도 기계가 잠식한다. 사람이 300~600장 쌓는 벽돌을 기계는 3,000장을 쌓는다.

영국 건설사 ’벨푸어 비티‘는 2050년까지 건설 현장의 무인화를 목표로 한단다.

 

이제 인간이 신중히 판단하지 않아도 알아서 목표를 골라 적을 말살하는 무기가 있다.

’킬러 로봇‘이다. 합성 미디어로 포토샵을 써서 새로운 수준으로 수정하는 개념이다.

노골적인 포르노나 유명 인사가 하지도 않은 선동적인 연설이나 영상을 만든다.

 

정치권은 가짜 뉴스로 오염되는 마당이니 이런 소프트웨어를 악용할 것이라는 전망이 골칫거리다.

중국 보험사는 대출 신청자가 정직한지를 영상으로 판단한다.

소독과 상환 계획을 답할 때 찍은 영상을 평가해 진실을 말하는지 판단한다.

 

기계가 장소와 속도로 받아지는 이유는 비용이 두 번째다.

고로 어떤 이는 청소. 미용, 서빙 같은 일의 자동화 위험을 낮게 본다.

영국의 싱크탱크인 ’조세 재정 연구원‘이 최저 임금 인상이

자동화 위험을 높일지 모른다고 걱정을 하는 까닭도 이 때문이다.

 

왜 우리는 노동력의 새로운 쓰임새를 찾아내지 못할까?

일의 미래는 두 힘, 대체하는 해로운 힘과 보완하는 유익한 힘에 달렸다.

많은 이야기가 영웅과 악당이 주도권을 놓고 싸운다.

 

하지만 우리는 기술 영웅과 악당의 역을 동시에 맡아,

한편으로 노동자를 밀어내면서도 한편으로 다른 경제 분야에서 노동자의 수요를 높인다.

 

지난날 자동화를 걱정했던 불안이 예상을 벗어난 이유도 이 상호작용 때문이다.

우리 선조들은 보완하는 힘이 얼마나 강한지를 과소평가하거나 이 힘을 완전히 무시한 바람에,

이 싸움의 승자를 엉뚱하게 예측했다. 일거리는 있다,

 

다만 손에 닿지 않을 뿐이다. 고임금 고숙련 일자리를 손에 넣을 수 없는 사람들에게

저임금 일자리나 저숙련 일자리로 물러서는 길밖에 없다.

 

미국의 저학력 노동자들은 확실히 이런 운명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데이비드 오더’의 말을 빌리면 이들은 노동시장의 “꼭대기와 점점 더 멀어지는 쪽으로” 이동했다.

꼭대기를 노리던 많은 고학력자도 일자리를 놓치고 자질보다 낮은 곳으로 이동한다.

 

과학, 기술, 공학, 수학 학위가 있는 미국인 1/3이 그런 자격이 없는 직종에서 일한다.

대졸자들이 갈수록 인지 능력과 숙련 기술이 덜 필요한 직무를 맡고 있다.

저임금이나 저 숙련 일자리로 가느니 차라리 실업자를 선택하는 이유가 많다.

 

이것이 마찰적 실업이 일어날 이유다. 한국은 청년층의 70%가 대졸자다.

그러나 실업자의 절반이 대졸이다.

기술이 진보하면 성에 차지 않는 지루하고 따분한 일은 기계가 맡고

사람은 의미 있는 일을 맡아 더 흥미로워지라 하지만 이 생각은 착각이다.

 

로봇의 어원은 체코어 ‘robota’으로 힘들고 고된 일이란 뜻이다.

 

이 생각은 우리가 자동화를 말할 때의 생각에 남아있다.

 

노동의 시대는 저물고 있다-2

 

우리는 노동의 시대가 어떻게 막을 내릴지 알 수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기계의 능력이 향상해 한때 인간의 몫이던 업무를 차지한다.

대체하는 해로운 힘이 익숙한 방식으로 노동자를 밀어낸다.

 

한동안은 보완하는 유익한 힘이 그렇게 자리를 읽은 노동자를 찾는 수요를 다른 경제 영역에서 계속 늘린다.

하지만 업무 잠식이 이어질수록 더 많은 업무가 기계의 몫이 되고 인간을 보완하는 힘은 약해진다.

인간은 갈수록 수가 줄어드는 특정 업무에서만 기계의 보완을 받는다.

게다가 특정 업무의 수요가 모든 사람을 계속 고용할 만큼 크리라고 생각할 근거는 없다.

 

미래는 궁핍한 프롤레타리아트, 집사, 하인, 식모 등 부유층에 빌붙어 사는 사람들로 구성된다고 봤다.

우리 경제생활은 부유층과 나머지로 갈린다.

소매 판매원부터 식당 서빙까지 성장하는 일자리 대다수는 부유층에 저임금 서비스를 제공하는 직종이다.

 

런던과 뉴욕은 부유한 어느 도시의 구석에 기대어 두둑한 임금을 받는 낯선 직종이 가득하다.

예는 수제 수저 조각가, 놀이 지도사, 상류층만 위한 개인 트레이너와

스타 요가 강사, 초콜릿 공예가 와 치즈 장인이다.

 

현재 생겨나는 것은 많이 버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나뉘는 경제적 분리만이 아니라,

부유층과 부유층에게 봉사하려는 사람으로 나뉘는 지위의 분리이다.

 

보완하는 힘이 작동한 방식은 생산성 효과다.

자동화되지 않는 업무에서는 기계가 노동자의 생산성을 더 높이기도 했다.

앞으로 신기술이 계속 노동자의 생산성을 높일 것이다.

업무의 잠식이 이뤄지면 인간이 업무에서 부적합해진다.

 

지금은 기계가 인간을 보완한다. 택시 운전에서 인간이 기계보다 운전을 잘할 때까지만 유효하다.

앞으로 몇 년 안에 상황이 바뀔 것이다. 생산성 효과의 사라짐의 다른 예는 체스와 바둑이다.

알파고의 승리에서 보듯이 인간과 기계의 결합은 기계가

인간 동업자가 이바지하는 몫을 수행할 수 없을 때만 힘을 얻는다.

 

기계의 능력이 향상하므로 인간이 이바지할 몫은 줄어들다가 마침내 동업자 관계가 끝난다.

즉 인간과 기계의 관계에서 인간이 쓸모가 없어진다.

 

보완하는 힘이 인간을 도운 두 번째 방식은 파이 확대 효과이다.

기술 진보는 세계 모든 지역에서 파이를 훨씬 더 크게 만들었다.

현 경제 영역에서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가 다른 영역에서 일자리를 구한 후 있었다.

 

필요한 업무 수행에 인간이 기계보다 유리할 때만 도움이 된다.

우리는 노동의 시대에 살고 있으므로, 새로운 업무가 생기면

그 업무를 수행하기에 인간이 기계보다 더 유리할 확률이 더 높아진다.

 

그런 일이 일어나면 늘어나는 상품 수요가 인간의 노동이 아닌 기계의 수요만을 늘리게 된다.

 

경제적 불평등은 문명만큼이나 오래된 현상이다.

사회는 언제나 고르지 않게 분배되고 인간은 이 문제를 어떻게 대할지 의견을 모으고 있다.

오늘날 경제체제에 좌절한 사람들은 말한다. 자본주의 문제는 누구나 자본이 없다는 것이다.

자본은 전통 자본과 인적 자본으로 구획한다고 ‘토마 피케티’가 말했다.

 

전통 자본은 유형 자본, 무형 자본, 금융 자본과 비금융 자본을 아우른다.

이를테면 땅, 건물, 기계, 제품, 지적 재산권, 은행 계좌, 주식과 채권, 소프트웨어와 데이터 모두 전통 자본이다.

전통 자본이, 없다고 해서 아무런 자본도 소유하지 않는다고 결론지은 것은 틀린 것이다.

누구나가 다른 형태의 자본을 소유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자신이다. 경제학자들은 이런 자본을 인적 자본이라 부른다.

 

인적 자본이 노동시장에서 아무런 가치가 없을 때, 숙련 기술과 재능을 활용하는 데

아무런 대가를 치르려 하지 않을 때 일어나는 것이 기술적 실업이다.

 

사람들은 인적 자본으로 돈을 벌고, 전통 자본으로 돈을 번다.

일이 쪼그라들면 전통 자본은 노동자를 밀어내고 최신 시스템과 기계로 전통 자본에서 소득을 높일 것이다.

영국 귀족들이 지난 300~400년 경험했다.

‘조지 오웰’은 귀족들을 “도무지 하는 역할이라고 없는 계층으로,

어디에 투자했는지도 제대로 모르는 돈으로 먹고산다.

이들은 정말이지 개에게 달라붙어 사는 벼룩만큼도 사회에 쓸모가 없는 기생충일 뿐이다.” 말했다.

 

앞으로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귀족들의 사례를 따를 수는 없다.

일이 줄어든 세상은 극과 극으로 나뉠 것이다.

전통 자본으로 부자도 있지만 다른 사람들은 전통 자본도, 인적 자본도 거의 없는 신세가 될 것이다.

 

그런데 소득 불평등은 왜 커질까? 가치 있는 자본이 갈수록 공평하지 않게 분배되기 때문이다.

그 결과 가치 있는 자본을 보유한 사람들에게 흘러가는 소득도 갈수록 불공평해진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소득 불평등이 커지는 까닭은

인적 자본과 전통 자본 수익이 갈수록 불공평하게 분배되기 때문이다.

 

소득 불평등을 살펴보는 방법은 소득 분위를 비교하는 것이다.

소득 상위 10%의 임금과 하위 10%의 임금을 견줘 거의 모든 나라에서 많이 올랐다.

영어권 국가의 소득 상위층 급여가 폭발하듯 늘었다.

2017년 구호 단체 ‘옥스팜’은 세계 최대 부자 8명이 전 세계 인구의 절반인

재산 하위 50%에 해당하는 부를 소유한다고 주장했다.

 

케네디 대통령은 “밀물은 모든 배를 밀어 올린다.”라는 유명한 말로,

경제 성장이 모든 사회구성원에게 이롭다는 뜻을 재치 있게 전달했다. 그러나 놓친 부분이 있다.

 

물살이 거세면 배가 없는 사람들은 즉 시장에서

높은 가치를 인정받는 자본이 없는 사람들은 그저 물에 빠져 죽고 만다.

소득 불평등은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다.

세상에 나올 때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는 남다른 재능과 능력을 타고날 복이 있느냐 없느냐? 뿐이다.

 

그 뒤로 나타나는 모든 불균형은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다.

좋은 운을 타고난 사람만이 가치 있는 자본을 쌓을 까닭이 없다.

따라서 자본을 보유하는 사람들에서 나타나는 불균형이

끝내는 엄청난 소득 불평등으로 옮겨가야 할 까닭이 없다.

 

기술적 실업의 위협에 미래를 생각하는 사람들 즉 평론가, 경제학자, 정치인,

정책 입안자들이 흔하게 보이는 반응은 많은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기계의 능력이 향상되면 교육의 도움이 해결할 수 있다는 발상이

머릿속 스며든 탓에 이 통념을 의심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커다란 실수다. 기술적 대응이 옳은 방법은 더 많은 교육이라 하지만

나날이 향상하는 기계 앞에서 이제 더 많음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답은 현재의 방식에서 세 가지 변화를 꾀하는 것이다.

변화의 대상은 무엇을 가르칠지, 어떻게 가르칠지, 언제 가르칠지다.

 

예로 수학을 가르치고 시험을 치르는 방식을 보자.

중 고등학교에서 내는 문제는 대다수 포토매쓰 애플리케이션으로 풀 수 있다.

인쇄된 것이든 손으로 쓴 것이든 문제를 스마트폰으로 찍어 보라. 앱이 즉시 답을 알려준다.

 

이처럼 무료 시스템이 나왔는데도 같은 틀에서 수학을 가르치고 시험을 치르는 것은 좋은 예가 아니다.

이런 난관은 계산기가 처음 등장하자 계산을 무지막지하게 많이 강요하던 수학 교육이

수학적 추론과 문제 해결을 강조하는 쪽으로 바뀌었다.

 

이제 신기술에도 이와 비슷한 변화가 필요하다.

그리고 똑같은 원칙이 모든 과목에 적용된다.

무엇을 가르치든, 기계가 미치지 못하는 능력을 이용하는 방식으로 교육을 검토해야 한다.

 

 

노동의 시대는 끝났다-2

 

대니얼 서스킨드 지음

김정아 옮김

와이즈 베리 간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