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송 달송

홀로

황령산산지기 2021. 8. 29. 09:39

수도사에게 가서 그들이 무슨 꿈을 꾸는지 물어보라. 그들은 여자에 대한 꿈을 꾼다. 그들은 다른 꿈을 꿀 수가 없다.

그들은 자신의 짐을 덜어줄 대상을 꿈꾼다. 수녀에게 물어보라. 그들은 남자를 꿈꾼다.

 

그대는 기독교의 역사를 살려 볼 필요가 있다. 수녀와 수도사들은 심지어 눈을 뜬 채로 꿈을 꾸기도 한다.

그들의 꿈은 너무나 생생한 현실이 되어 밤을 기다릴 필요도 없다.

낮에도 수녀는 앉은 채로 악마가 다가오는 것을 본다. 악마는 그녀와 사랑을 나누려고 한다.

 

놀랄지도 모르지만, 중세에는 이런 일이 흔히 일어났다.

많은 수녀가 악마와 사랑을 나누었다는 이유로 화형에 처했다. 수녀들이 그런 일을 스스로 자백했다.

악마와 사랑을 나누었을 뿐 아니라, 악마의 아이를 배기도 했다. 상상임신이다.

뱃속에는 더운 공기만 가득했을 것이다. 그러나 점점 배가 불러왔다.

 

그녀들은 악마의 모습을 세밀하게 묘사했다. 악마는 수녀들 자신의 창조물이다.

악마가 밤낮으로 그녀들을 찾아왔다. 수도사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홀로있음을 선택하는 것은 병든 인간성을 만들어낸다. 세상 속에서 사는 사람도 행복하지 못하다.

승려도 행복하지 않다. 행복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온 세상이 고통으로 끝없이 괴로워한다.

그대는 이쪽의 고통에서 저쪽의 고통으로 바꿀 수 있을 뿐이다.

 

세속의 고통을 선택하든지 영성의 고통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고통스러운 것은 마찬가지이다. 행복은 어느 것이나 단 며칠밖에 느낄 수 없다.

 

절대로 선택하지 말라. 선택이 없는 상태에서 삶을 바라보라. 환경을 바꾸기보다는 우선 지혜로워져라.

심리상태를 바꾸어라. 지성을 지녀라. 지혜롭지 않으면 축복을 누릴 수 없다.

지혜로운 사람은 홀로 있으면서 동시에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을 수 있다.

 

상대방도 자기 리듬을 각성하도록 하라. 누구도 24시간 내내 사랑하며 지낼 수는 없다.

쉬는 시간이 필요하다. 누구도 규칙적으로 사랑할 수 없다. 사랑은 즉흥적으로 일어난다.

사랑이 일어나면 일어나는 것이지만, 사랑이 일어나지 않으면 누구도 어쩔 수 없다.

 

노력한다면 그 사랑은 이미 거짓이다. 연기에 불과하다.

진정한 연인은 서로 깨어 있다.

“제가 홀로 지내고 싶어 한다고 해서 당신을 거부하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홀로 있는 것을 가능하게 한 것은 그대의 사랑입니다.”

 

연인이 하룻밤이나 며칠 동안 홀로 지내고 싶어 한다고 해서 상처받을 필요는 없다.

사랑이 거절당했다고 느끼지도 말라. 홀로 있겠다는 연인의 결정을 존중하라.

그대의 사랑이 연인을 비워버렸다는 사실에 행복을 느껴야 한다.

이제 다시 채워질 휴식이 필요하다. 이것이 지혜이다.

 

보통은 자신이 거절당했다고 생각한다.

연인에게 다가갔는데 상대방이 함께 지내려 하지 않고, 그다지 그대를 사랑하지 않으면 거부당했다고 느낀다.

그대의 에고가 상처받는다. 에고라는 것은 그다지 현명한 존재가 아니다.

 

사실 모든 에고는 굉장히 어리석다. 지혜로운 에고는 없다. 지혜는 그저 일어나는 일을 바라본다.

왜 상대가 자기와 함께 지내려 하지 않는지 이해하려 한다.

상대가 그대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홀로 있고 싶어 한다는 것을 이해하려 한다.

 

상대방이 그대를 사랑한다는 것을 이해한다. 그리고 그대 역시 상대방을 사랑한다.

그래서 연인이 홀로 있도록 놓아둔다. 연인을 괴롭히거나 억지로 사랑을 나누려 하지 않는다.

남자가 홀로 있고 싶어 한다고 해서 자기에게 관심이 떠났고,

다른 여자에게 눈길을 보내는 것으로 추측하지도 않는다.

 

지혜로운 여인은 남자를 홀로 남겨둔다. 그래서 그가 다시 자신의 존재로 중심을 모으도록 놓아둔다.

나누어 가질 에너지를 지닐 시간을 준다.

이러한 리듬은 낮과 밤이 이어지고 여름과 겨울이 순환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끝없이 순환한다.

 

두 사람이 진정으로 서로를 존중하면 서서히 서로의 리듬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사랑과 존중의 마음으로 서로의 리듬에 일치하게 된다.

그대가 사랑을 느끼면 상대도 사랑을 느낀다. 이렇게 자리를 잡아간다.

억지로 되는 게 아니라 저절로 조화가 이루어진다.

 

진정으로 사랑하는 두 사람은 서로 많은 점에서 닮는다. 진정한 연인은 남매처럼 보인다.

진짜 남매도 그렇게 비슷해 보이지 않는다.

그들의 표현방식, 걸음걸이, 말투, 몸짓 등 모든 것이 비슷해진다.

이런 일은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그들은 서로에게 조율되기 때문이다.

 

진정한 연인은 서로에게 어떤 말도 할 필요가 없다. 직감으로 이해한다.

여인이 슬픔을 느끼면 그 슬픔을 이야기하지 않아도 남자는 그 슬픔을 이해하고 홀로 있게 해준다.

남자가 슬픔을 느낄 때는 여인이 남자를 홀로 있게 해준다. 홀로 있을 구실을 만든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반대로 한다. 그들은 결코 상대를 떠나지 않는다.

그들은 잠시도 상대를 혼자 내버려두지 않는다.

서로를 지루하게 만든다. 상대에게 공간을 주지 않는다.

 

사랑은 자유를 준다. 사랑은 연인이 자신의 모습으로 존재하도록 돕는다.

사랑은 매우 모순적인 상태이다. 한편에서 보면 사랑은 두 개의 육신에 존재하는 하나의 영혼이다.

또 다른 편에서 보면 사랑은 개체성과 독특함을 유지하도록 한다.

 

사랑은 작은 자아를 버리고 궁극의 자아를 얻게 한다.

그러면 어떤 문제도 일어나지 않는다. 사랑과 명상은 두 개의 날개가 되어 서로 조화를 이룬다.

그 가운데에서 그대는 성장한다. 그대는 전체가 된다.

 

- 오쇼의 <사랑이란 무엇인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