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잘 먹은 점심 한끼는
오늘 잘 먹은 점심 한끼는 피가 되고 살이 된다. 또 뼈가 되고 골수가 된다. 흡수된 영양소는 물질을 만들어 낸다.
그 물질이 또 다른 물질을 만들어 낸다. 아비담마 논장에 따르면 열 차례 진행된다.
그 결과 머리카락, 몸털, 손톱 등 서른 두가지 신체적 양상이 유지된다.
오늘 잘 먹은 점심 한끼는 신체를 지탱하게 해준다. 매일 영양 공급을 하는 것은 자동차에 기름을 넣는 것과 같다.
기름이 빵빵하게 찼을 때 쌩쌩 달리는 것 같다. 배가 부를 때 포만감과 함께 삶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누구나 하루 세 끼 먹는다. 또는 두 끼 먹는다. 수행자들은 한끼 먹는다.
먹는 것이 하루 일과 중에 가장 큰 행사가 되어서는 안된다.
자애의 마음 없이, 알아차림 없이, 계율 없이 먹는다면 배부른 돼지가 될 것이다.
“목숨은 짧아져 가는데,
몸이 뚱뚱해지고 무거워져서
육신의 안락만을 탐착한다면,
어찌 수행자의 훌륭함이 있겠는가?”(Thag.114)
지혜가 없는 자는 몸을 자아와 동일시 한다.
몸을 가꾸는데 열중하고 몸을 보신하는데 열중하다 보면 몸집이 커지고 무게가 나가게 된다.
오로지 먹는 것이 낙이라면 배부른 돼지나 다름 없을 것이다.
“생명은 음식 아닌 것으로 살 수 없지만,
음식이 마음에 평온을 주는 것도 아니다.
음식으로 이 집적의 몸이 유지되니,
이와 같은 것을 보고 탁발하는 것이다.”(Thag.123)
수행자가 탁발하는 것은 잘 먹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도와 과를 이루기 위해서는 육체가 있어야 하는데, 육체를 지탱하기 위해 먹어야 한다.
음식은 도와 과를 이루기 위한 수단에 불과한 것이다. 수행자는 도와 과의 지혜에서 평온을 찾는다.
맛에 대한 갈애는 마음의 평온을 방해한다.
“사지는 깔라 나무의 결절 같고
수척하여 혈관이 보이고
먹고 마시는 것에 분량을 아는 자가 있으니,
비천하지 않은 정신을 지닌 자이다.”(Thag.243)
수행자의 모습은 어떠할까? 뚱뚱한 모습을 상상하기 어렵다. 하루 한끼 먹는 수행자는 비쩍 말라 보일 것이다.
그래서 ‘사지는 깔라 나무의 결절 같다’라고 했다. 살의 더미가 사라져서 마르고 거친 몸을 말한다.
더구나 '수척하여 혈관이 보인다’라고 했다.
부처님도 이런 모습이었을 것이다. 부처님의 제자들도 이런 모습이었을 것이다.
먹고 마시는 것에 있어서 분량을 알라고 했다. 음식에 있어서 적당량을 알라는 것이다. 이는 다름 아닌 ‘음식절제’를 말한다. 이렇게 음식절제를 하는 자가 비천하지 않은 정신을 지닌 자라고 한다. 나태 등에 정복당하지 않고 태만하지 않은 마음, 게으르지 않은 마음을 지닌 자이기 때문이다.
오늘 점심 한끼는 사마타로 먹어야 한다.
여기 밥이 오기까지, 여기 국과 반찬이 있기까지 이름 모를 사람들의 노고가 실려 있는 것이다.
그들의 노고를 생각하면서 자애의 마음으로 먹어야 한다.
오늘 점심 한끼는 위빠사나로 먹어야 한다. 먹는 것도 수행이다.
밥을 뜰 때 알아차리고, 입에 넣을 때 알아차리고, 씹을 때 알아차리고, 넘길 때 알아차려야 한다.
밥 먹는 전과정을 알아차림 하며 먹어야 한다.
오늘 점심 한끼는 계율로 먹어야 한다. 맛을 즐기기 위해 먹는 것이 아니다. 미용으로 먹는 것이 아니다.
상처 난 부위에 연고를 바르듯이 약으로 알고 먹어야 한다.
몸을 지탱하기 위해 먹어야 한다. 이렇게 먹어야 잘 먹는 것이다.
오늘 잘 먹은 점심 한끼로 오후일과를 시작해야 한다. 다음 식사 시간까지는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어영부영 시간만 보내다가 저녁먹을 시간을 맞이한다면 삶이 허무한 것이다.
먹는 것을 낙으로 살고, 먹는 것이 하루일과 중에 가장 큰 일이라면 그는 이미 죽은 목숨이다.
2020-10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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