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라만상

앎의 첫 번째 단계

황령산산지기 2020. 8. 16. 05:12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고, 자신이 진리를 무시해 왔음을 겸손하게 깨닫는 것, 이것이 앎의 첫 번째 단계이다.

 

강가에 떠 있는 통나무에 개구리 네 마리가 앉아 있었다.

갑자기 통나무가 물결에 휩쓸려 서서히 떠내려가기 시작했다. 개구리들은 신이 나고 몹시 흥분했다.

그런 항해는 난생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얼마쯤 가다가 첫 번째 개구리가 말했다.

 

이 통나무는 정말 신기하군.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이잖아! 이런 통나무가 있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어.

 

두 번째 개구리가 말했다.

 

여보게, 그게 무슨 터무니없는 소린가? 이 나무는 다른 나무와 다를 게 없네. 나무는 움직이지 못해.

움직이는 것은 강물이야. 강물이 바다로 흐르면서 우리와 통나무를 떠내려가게 하는 거란 말일세.

 

세 번째 개구리가 말했다.

 

천만에! 나무도 강물도 움직이지 않네. 움직이는 것은 우리의 마음이지. 마음이 없으면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지.

 

세 마리의 개구리가 서로 옳다고 다투기 시작했다.

말싸움이 격렬해지고 목청이 높아졌지만 그들은 의견의 일치를 볼 수 없었다.

그때, 문득 나머지 한 마리의 개구리에게로 시선을 돌리게 되었다.

 

그 네 번째 개구리는 그들의 언쟁에 귀를 기울이면서도 아무 말도 않고 평화롭게 앉아 있었다.

네 번째 개구리에게 의견을 물었다.

네 번째 개구리가 말했다.

 

자네들 모두 옳네. 아무도 틀리지 않았어. 통나무도 강물도 우리의 마음도 모두 움직이네.

하지만 깊이 들여다보면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네.

움직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아무데로도 갈 곳이 없기 때문이지.

 

세 마리의 개구리는 몹시 화가 났다.

그들 중에서 어느 누구도 자신의 주장이 완전히 옳지 않으며,

다른 두 마리의 개구리가 완전히 틀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다.

 

그들은 자기가 모른다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이 멍청한 네 번째 개구리가 뭘 안다고! 그것은 그들의 에고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뜻밖의 일이 일어났다. 항상 이런 식이다.

그 세 마리의 개구리가 합심해서 네 번째 개구리를 강물로 떠밀어버린 것이다!

 

진리가 그대의 문을 두드릴 때, 문을 열고 손님을 환영하기란 매우 어렵다.

진리가 문을 두드리는 순간, 돌연 그대는 지금까지 거짓 속에 살아왔다는 것을 깨닫기 때문이다.

그대는 자신의 주장과 사상이 모두 거짓이었음을 깨닫는다.

진리와 마주칠 때, 돌연 갑자기 그대의 삶 전체가 무의미해진다.

 

그대의 과거는 다만 어둠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므로 에고가 진리를 받아들이기는 매우 힘들다.

차라리 진리를 부정하고 문을 걸어 잠그는 것이 더 마음 편하다.

붓다나 예수 같은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게 더 낫다.

 

그대가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란 매우 힘들다.

자신의 무지를 인정한다는 것은 매우 굴욕적인 일이다.

더욱이 황제라는 신분에서는 더욱 그렇다. 황제들은 자신이 모든 것을 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신의 대리인 행세를 한다. 그들은 지상에 재림한 신의 화신이다.

그들은 권력을 갖는다. 그리고 권력은 눈을 멀게 만든다.

 

그대에게 돈과 권력이 있고 사람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을 때, 자신이 무지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기란 매우 힘들다.

다른 사람들이 그대를 현자로 생각할 때, 그대 자신의 무지를 깨닫기란 정말 어려운 노릇이다.

 

오쇼의 <자비의 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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