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송 달송

인간으로 태어난 최종 목적

황령산산지기 2020. 7. 18. 15:34

인간의 큰 바람은 깨달음, 즉 완성에 대한 욕구이다

인간이 지닌 한계와 고뇌에서 벗어나 완전한 자유와 지혜를 얻는 것!

이것은 생각만 해도 황홀하다

이런 꿈을 가진 사람은 마음이 큰 사람이거나, 아니면 욕심 많은 사람이다

 

그러나 깨달음은 욕심만으로 이를 수 있는 경지가 아니며 인간으로서 가장 올바른 길을

걸어야 얻을 수 있는 인간완성의 열매이다

이 경지는 이웃의 고통을 내 몸처럼 안타까워하는 선근과, 하늘이 무너져도 흔들리지 않는

양심과 용기가 있어야 도달한다

 

깨달음을 구하는 유형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한쪽은 잘못된 세상을 바로 잡고자 하는 양심과 자비가 넘치는 사람이며 다른 한쪽은

어릴 적부터 이상한 영적 현상을 체험하여 그 길을 궁금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진리의 빛이 흐려진 오늘날에는 영적 현상이 나타나면 이를 구도의 자질이 있다고 보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정신이 맑고 강한 사람에게는 영적 현상이 나타나지 않는다

깨달음은 정신이 강하고 세상을 사랑하는 순수하고 건전한 사람만이 이를 수 있는 참된 인간의 길인 것이다

 

요즘 깨들음에 대한 관심과 욕망이 증폭되어 갖가지 명상기법이 횡행한다

참선과 단전호흡은 대중화된 단계이며 심지어는 인도에서 들어온 외제기법까지 동원되고 있다

그러나 이런 기법들은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수행의 요체가 아니다

 

삶의 핵심은 생생한 현실 속에 있다

따라서 깨달음에 이르는 참된 수행은 삶 속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지 명상을

통해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결론은 이천오백년 전에 부처님이 분명히 내린 것이지만 깨달음을 쉽게 얻고자 하는 욕망과

말법이 그 참된 가르침을 흐려 버렸던 것이다

 

필자도 한때는 깨달음을 얻기 위해 갖가지 명상법을 수행했다

그러나 이제는 깨달음으로 가는 참다운 길을 알았기에 여기 그 진실을 밝히니

이 글을 읽는 사람은 부디 정법을 깨달아 자신의 삶을 완성으로 이끌기 바란다

 

필자가 한창 선도(仙道) 수행을 할 때는 보통사람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엄청나고 기이한 체험을 했다

기를 느끼고 기가 온몸을 도는 소주천을 했으며, 머리가 열리는 대주천의 체험 속에 온세상을

마음대로 운기했고 구슬같은 내단이 머리 속에 맺혔다

그리하여 깊은 선정에 들어 수많은 시간을 열린 정수리로 천기를 받으며 열락에 젖어 수행했지만

그러한 기운이 내 마음의 업과 습을 정화시켜 주지는 못했다

 

구슬 같은 단에 의식을 실어 정수리로 출태해 신선이 되려고 했지만

그것 또한 양심상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단과 합일해 출태할 영혼이 여전히 과거의 나와 다름없는 중생이라는 사실을 부정활 수 없고

출태하더라도 그것은 또 하나의 중생을 만들어 내는 부질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단지 선도 경전에 씌어진 대로 완성에 이를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무작정 수행에 몸을 맡기고 수많은 시간을 하릴 없이 앉아 있었다

얼마난 많은 시간이 흘렀을까?

나는 이래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선도와 나늘 돌아보기 시작했다

 

여러 선도경전에는 제시된 수행과정을거치면 반드시 도를 얻는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그 속에는 완성에 이르면 나타날 밝은 세상과 그에 관한 이치가 없었다

다만 도와 합일한다거나 혹황상제에게 이른다는 환상적인 이야기로 끝을 맺고 있었던 것이다

 

그제서야 나는선도가 세상에 적용되는 실제적인 가르침이 아니라 하나의 관념이며

완성되지 않은 과정상의 기법임을 깨달았다

인간완성의 경지보다 고통스러운 이웃을 구하고 세상을 밝게 만들 진리를 구하는 것이

목적이었던 나로서는 소중한 삶을 소비하면서 단순히 신선이 되기를 열망하는

선도를 더 이상 추구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선도수련에서 떨치고 일어나 새로운 깨달음의 길을 모색하게 되었다

그 다음에 나는 그동안 해오던 각종 명상기법을 본격적으로 수행했다

이미 고요함을 얻은 나로서는 여러 명상기법을 수행하면 그대로 요체가 나타났다

소리에 집중하면 명치 부근에 있는 나의 마음이 환한 빛을 느끼며 그와 합일되었고

내관하면 몸의 각 부분에 신체의 신비가 나타났다

그리고 양미간에 집중하면 유체이탈이 일어나 육신 위로 떠다니는 내 영혼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나 혼자만 체험일 뿐 현실과 무관했으며 세상을 밝히는 지혜를 주는 것도 아니었다

더구나 명상에 대한 집중은 현실과 나를 유리시켜 관념 속에 사는 비현실적인 사람으로 만들었다

아무리 혼탁한 세상에서 벗어나 혼자만의 자유를 얻었다 한들 그것이 세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무가치한 것이며 관념적 만족에 불과하였다

 

그래서 여기서도 한계를 느낀 나는 이마저 버리고 불교 최고의 수행법인 참선에 돌입했다

참선으로 집중력이 생기고 선정이 깊어져 가슴 속에 자아의 빛이 보일 때 나는 이러한 현상의

근원에 대해 화두(의문)를 잡았다

 

'과연 생각하고 있는 이것은 무엇인가?'

화두가 깊어질수록 갖고 있던 의문은 하나씩 풀렸고 최종적으로 인식의 근원인 의식의

주체 속으로 파고들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화두만 잡으면 곧 바로 마음덩어리가 물건처럼 드러났으며 신실(명치)속에

의식의 빛이 비쳐 의식과 머리가 하나로 이어지며 정수리로 상쾌한 기운이 스며들었다

어떤 때는 하루종일 열락에 젖어 텅 빈 허공에 들었고, 몸이 사라지고 마음도 사라지고

모든것이 사라지는 허공 속에서 홀로 잠겨 있곤 했다

 

최종적으로 '無'자 화두를 잡은 어느 날, 모든 것을 지우고 또 지우고 계속 無! 無! 無! 하고

파고 들어가는데 갑자기 인당이 확 밝아지면서 세상이 하나로 다가왔다

온 몸이 비에 씻긴 것처럼 깨끗해지고 허공이 뚜렷이 관하여지며 시방법계가 한치의 어김없는

인과의 이치 속에서 일어나 세상을 꾸미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나는 걸어 움직이는 현실 속에서 이러한 일이 일어나자 너무나 끼뻐 오돌송을 불렀다

 

나는 이 체험이 나늘 영원한 완성의 경지로 인도해 줄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것은 깊고 달콤했으나 그것 또한 일시적인 현상일 뿐이었다

내 마음은 계속 열리지 않았고 어지러운 현실 속에서 다시 과거의 나로 돌아가야 했다

 

선정 속에 들어 있을 때는 명경과 같이 맑은 마음에 세상의 일들이 거울처럼 비쳤지만

다시 세상에 나가 활동하면 갖가지 질척한 인연에 나의 집착과 욕망은 울렁거리고

의식은 흐릿한 상태로 되돌아갔던 것이다

 

많은 체험을 통하여 스스로 최고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자부심을 가졌으나 자신을 돌아보면

아직 내면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는 욕망과 집착의 업은 사라지지 않았고 현재의 나와

과거의 내가 다름을 가늠할 수 없었다

그렇게 세월은 무심히 흘러 그 상태에서 3년을 홀로 애태웠다

 

그러던 어느 날, 홀로 앉아있는 시간이 허망하게 느껴지면서 부처님의 일화와 말씀이

사실일 것이라는 깨달음이 들기 시작했다

선정삼매 속에 들어있는 무아지경을 진정한 반야의 체험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그제야 나는 부처님의 말씀이 사실임을 확신하게 되었다

부처님이 요가수행의 헛됨을 한탄하며 보리수 나무아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앉아

깨달음을 얻으신 후 하신 말씀을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던 것이다

 

당신은 깨달음을 얻고자 아무도 따라올 수 없는 고행을 했으며 두 요가스승보다 앞선 경지에

올랐지만 해탈하여 절대적인 평안에 이르지는 못했다

저잣거리에 나가 세상의 번잡한 일들과 바람결에 가족들의 소식이 들릴 때면 가라앉았던

집착과 애욕의 물결이 다시 일렁거렸던 것이다

 

그래서 깨달음을 얻고 난 후 그동안의 수행은 정법이 아니었음을 보았다

즉 당신의 깨달음은 지난날의 고행이나 명상으로 온것이 아니라 수많은 생을 거쳐오는 동안

인간의 근본을 섬기고 바른 이치로 세상을 축복한 공덕이 온 우주를 가득 채워 마침내

이생에서 인간의 열매를 이룬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기존의 수행과 명상에서 벗어나 올바른 진리를 배우고(正見)

이를 바르게 생각하고 굳게 지켜,열심히 행함으로써 완성에 이르라는 새로운

진리와 실천법을 강조하신 것이다

 

이와 같이 참선이나 명상은 자기의 마음을 찾아보는 기법에 불과한 것이지 결코 그것이 인간의

마음을 농사지어 깨달음에 이르게 하는 수행의 요체가 될 수 없다

해탈은 올바른 삶으로 인간완성을 이룬 경지이기에 세상을 축복하는 삶을 열심히 살지 않고서는

좋은 결실을 거들 수 없다

따라서 세상과 인연을 끊고 기나 명상만으로 도를 구하려고 하는 것은 마치 농사꾼이 농사를 짓지 않고

알곡을 거두려는 것과 같다

그리하여 나는 참선의 끝에서도 허망하게 일어서야 했던 것이다

 

그렇게 헤매던 어느 날 나는 우연히 길에서 한 성자를 만났다

그는 '아는 것은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했다

그분의 앞에서는 모든 것이 명확했다

그는 요즘의 언어와 논리구조와는 전혀 다른 순박한 어법으로 이야기했으며

모든 것을 세상의 사실을 예로 들어 설명했다

 

그의 실상을 보는 분명한 지식과 이치 앞에 나는 한마디도 말할 수 없었다

그는 내가 상상했던 성자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가왔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의 이마 정중앙에 전설 속의 지혜의 눈이 튀어나와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것은 지름이 2.5센티미터 정도이며 중간이 5mm정도 불록하고 둥글게 생긴 혹 같은

것으로 맑은 기운의 결정체였다

 

그분의 실상을 보는 눈앞에서 나의 추상적인 깨달음은 아무런 힘을 갖지 못했다

그는 증거를 가지고 나를 공박했고 나는 그저 고개를 떨구고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아무도 말하지 못했던 진리의 의미에 대해 간단하고 명확하게 밝혀 주셨다

 

진실은 존재하는 사실이며 존재하지 않는 것은 거짓이라고 하셨다

세상은 완전한 인과의 이치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으며 존재하는 사실에 의지하고 살 때

우리의 삶은 참되고 거짓이 없으며 바라는 바 결과를 얻게 된다고 하셨다

그리고 인생의 최종 목적은 해탈이니 바른 이치와 양심과 정의로서 열심히 세상을 축복하면

마치내 자신 속에 깃든 모든 사심과 욕망을 털어 버리고 티끌 하나 없는 맑은 마음을 이루게 된다고 하셨다

 

나는 그분의 말씀을 듣고 석가모니 부처님의 말씀과 한치의 어긋남이 없음을 느꼈으며

모든 의문이 사라지고 눈앞이 밝게 비치기 시작했다

나는 그분과의 만남을 통하여 세상을 관통하여 흐르는 뜻의 세계를 보게 되었고

수천 년간 사라졌던 진리의 실상을 분명히 알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 오랜 구도 수행에 졸업을 선언했던 것이다

 

요즘 많은 종파에서 삶 속에서 농사짓지 않고 명상기법만 잘 수행하면 깨달음을 이를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많은데 세상에 원인을 쌓지 안고 이루어지는 일은 하나도 없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은 명상수행만으로 숙업을 지우고 해탈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명상은 자기를 들여다보는 단순한 기술에 불과한 것이니 좋은 원인으로 자신을 가꾸지 않으면 해탈에 이를 수 없다

 

해탈은 마음을 덮고 있는 숙업을 모두 닦아내어 맑고 깨끗한 지공묘유의 불성을 증득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마음을 덮고 있는 무거운 업장은 과거 어두운 삶을 통해 지은것이니 밝은 삶을 통하여

극복하지 않으면 지울 수가 없는 것이다

땅에 넘어진이는 반드시 땅을 짚고 일어나야 하는 것이 자연의 이치인 것이다

조용히 명상에 들어 모든 자극을 끊고 자기 마음을 들여다보면 흙탕물이 가라앉듯

욕망의 흐름이 가라앉고 그 위에 맑은 마음이 고이는 현상이 나타난다

이때 마음거울 위로 세상만사가 비쳐 오묘한 조화를 나타내기 때문에 수행자들은

반야에 이른 듯한 착각을 하게 된다

 

이 차원을 견성이라고 하는데 견성의 경지에만 가도 마음의 신묘막측한 작용을 엿볼 수 있어 사람들은

이들도 깨달았다고 존경한다(실제 부처 이래로 깨달았다는 거의 모든 사람이 바로 이러한

반야심을 엿본 상태이다)

 

그러나 이 단계는 시작에 불과하다

견성의 단계는 접축을 끊고 고요해져 마음의 흙탕물을 가라앉힌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 상태는 업이 가라앉은 상태로 사라진 게 아니기 때문에 다시 세상일에 휩쓸리면 가라앉은

흙탕물이 일어나 마음이 흐려지게 되고 세상일이 하나도 보이지 않게 된다

부처님이 선정에서 깨어나 세속의 인연에 계속 헤맨 것도 바로 이러한 상태이다

 

완전한 깨달음은 내재된 탁업을 가라앉히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태워 한 점 먼지도

남지 않게 지워버리는 것이며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여일한 반야심을 유지하는 경지이다

그래서 깨달은 이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반야심이라는 우주의 거울에 비춰 볼 수 있기 때문에 전광석화

같이 세상의 모든 이치를 밝히는 것이다

 

이와 달리 견성했다는 분들은 참선으로 마음의 업만 가라앉혔지, 지은 공덕이 없어

업이 사라지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여일하게 반야심을 유지하지 못한다

그래서 이따금 신통한 소리를 하나 세상을 구하는 깨달음의 빛을 밝히지는 못하는 것이다

그동안 한 소식을 했다고 오도송을 부른 수많은 선사들이 완전한 반야심을 얻겠다고 보림행을 위해

산천을 떠돌았지만 결국 아무런 깨달음의 빛도 전하지 못하고 산 속으로 사라진 것은 바로 이러한

경계에 걸린 것이다

 

해탈지심은 행주좌와 어묵동정간에 항상 여여하게 나타나는 것이며 사실에 대한 지혜로서

현실 속에 분명히 나타나는 것이다

깨달음의 실체는 나 혼자만의 자유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치를 밝혀 세상을 축복하는

지혜에 있으며 세상에 대한 자비와 보살행 속에 있는 것이다

 

진정한 깨달음이 있으면 그 깨달음의 증거가 분명히 세상 속에 나타나야 한다

빛이 있으면 어둠은 걷히는 것이다

따라서 현재 우리나라가 이렇게 어두운 이유는 아직 밝은 진리가 이 땅에 나타나지 않았다는 증거이며

그동안 나타난 수많은 깨달음이 진정한 것이 아니었다는 반증인 것이다

 

이것이 바로 부처님께서 정각을 얻으신 후 인간의 마음을 닦을수 있는 올바른 길은

고행이나 명상이 아니라 올바른 삶을 통한 공덕행이라고 말씀하신 이유이다

따라서 세상을 위해 올바른 삶인 팔정도를 행하여 공덕을 쌓지 않고 앉아서 참선이나

단전호흡, 명상을 통해서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것은 농사를 짓지 않고

기도만으로 풍년이 들기를 바라는 것과 같이 허망한 일이다

 

명상이란 조용히 앉아 마음을 들여다보는 관찰수단에 불과한 것으로 마음 자체를 닦아 내는

본질적인 수행법이 되지 못한다

그런데 오늘날 부처님의 정법인 팔정도에 의한 공덕행은 퇴색하고 참선과 명상과

기수행만이 정법인 것처럼 유행하고 있으니 그 병폐는 참으로 크다 하겠다

 

명상은 진리의 농사를 짓기 위한 준비작업에 불과하다

부처님 재세시에 안거를 통해 선정을 지도하신 것은 평소에는 열심히 팔정도를 행하여 세상과 자신 속에

인과의 공덕을 짓게 하고, 장마가 와서 아무 일도 할 수 없을 때는 딴 생각을 하기보다는 조용히

앉아 그동안 닦았던 자신의 마음을 찾아보게 하신 것이다

 

그리고 진리를 찾는데 중요한 것은 처음 세상을 구하겠다고 초발심을 낸 인간의 양심과 자비심이다

따라서 수행이 이상한 방향으로 흐르거나 제대로 되지 않을 때는 항상 이 길이

세상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가 하는 초발심으로 돌아가 자신과 세상을 살펴보아야 한다

이러한 마음가짐 없이 욕심을 내어 도를 구하면 중도에 마가 끼든가, 아니면 기혈이 뒤엉켜 화를 당하게 된다

 

깨달음은 궁극적으로 나와 세상이 하나임을 깨닫고 자비로운 마음으로 세상을 축복하는 데 있다

따라서 깨달음을 얻기 전이나 깨달음을 얻고 나서나 해야 할 일은 세상을 위해

공덕을 짓는 일밖에 없다

 

이렇게 분명한 일을 세상사람들은 세상을 축복할 생각을 하지 않고 깨달음에 욕심을 내어

온갖 이상한 길을 찾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이치를 분명히 알게 되면 깨달음의 길과 세상을 살아가는 길이 둘이 아님을 알게 된다

 

그리하여 밝은 지혜와 공덕행으로 세상을 축복하고 마음을 정화하여 완성에 이르게 된면

인간은 우주의 근원과 합일하는 신성한 존재목적을 이생에서 성취하게 된다

마음속에는 모든 숙업이 사라져 행주좌와 어묵동정간에 항상 반야에 머물게 되며

우주의 근원과 같이 맑아진 마음에는 우주의 실상과 이치가 모두 비치어

어둠 속을 헤매는 중생들에게 우주의 진실과 이치를 밝히게 되는 것이다

 

깨달음에 이른 자는 이 세상이 완전한 뜻과 이치 속에 있음을 가르치며 생명의 흐름이 완전한

질서 속에 있음을 보여 준다

이러한 인간완성의 경지는 인종과 종파와는 무관한 것이니 모든 인간에게 열려져 있는

생명의 축복이며 가능성이다

 

즉 깨달음이란 인간의이상 속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 속에 나타나는 실제적인 일이며

모든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가능성 속에 있다

따라서 우리는 현실 속에서 인간의 의미와 가치를 찾아 바른 진리를 행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나는 지금도 내가 인류역사상 가장 복받은 자라고 생각하며 지복 속에서 지내고 있다

진리의 실체를 보았으며, 성자를 만날 수 있었고, 진리 속에서 진리를 실천하는

기쁨을 누리며 살고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일이 존재하기에 세상은 참으로 가치있고 의미있으며 인생이란 고귀한 것이다

이 글을 보는 분들도 하루 빨리 진리와 인연을 맺어 밝은 눈과 평안한 마음을 얻기 바란다

 

(책)어두운세상에길은있는가..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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