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자가 아니어도 반기시며 맑은 차를 손수 대접해 주시는 주지 스님의 “편히 쉬었다 가시라.”는 한 말씀에 그믐밤의 무수한 별들이 가까이 내려옵니다. 모든 것에서 놓여나 자연의 품에 안기어 그저 편안한 마음으로 잠시 머물다 가는 것, 바람도 자고 풍경도 한가롭습니다.
‘미처 다하지 못한 이야기는 새로 돋아나는 꽃과 잎들이 전하는 거룩한 침묵을 통해서 들으시기 바랍니다.’ 남겨주신 법정 스님의 말씀이 범종 소리와 더불어 마음에 공명이 되어 울립니다. 텅 빈 마음에 괴로움을 여의고 행복을 얻으라 하십니다. 문득 산 이와 죽은 이 모두 생명이 살아서 움직이는 자연의 품에 안기는 순간이 평안임을 깨닫습니다. 돌아가신 영혼을 위해 영가등을 올려드리고, 전쟁의 위험에서 벗어나 온누리에 평화를 주시길 합장합니다.
다람쥐와 생쥐가 공존하고 매실과 앵두가 익어가는 도량의 후원을 지나 종각의 처마 끝에는 풍경이 그네를 타고 있었지요. 멀리 퍼져 가던 범종 소리 그치고 하얀 나비 한 마리 앉아있습니다.
나비 한 마리
절의 종에 내려앉아
졸고 있네
- 부손*
시절 인연이 닿은 봄날, 여여스님의 다연(茶宴)인 <꽃차 여행>에 동행하게 되었습니다. 고향 땅의 청정한 산야에 핀 백화,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꽃차를 음미하며 ‘고향의 봄’ 노래를 불렀습니다. 선물로 주고 가신 꽃차 몇 송이 유리다관에 띄웁니다. 잔 꽃송이들이 피어오르고 은은한 다향이 그리움을 불러옵니다.
아카시아 한 그루도 보이지 않는 아카시아 골목에 사는 나는 봄 편지를 부치러 집을 나섭니다. 팔랑이며 작은 단풍잎이 자꾸만 떨어졌습니다.
꽃잎 하나가 떨어지네
어, 다시 올라가네
나비였네!
-모리다케(守武)*
지난겨울 풍족하게 내린 비로 야생화가 만발한 ‘슈퍼 블룸(Super Bloom)’ 꽃 잔치가 한창이더니 단풍잎이 날아다니듯 모나크나비가 쉴 새 없이 날아옵니다. 막 부화한 아기 나비들이 끝없이 동에서 서편으로 날아갑니다. 어디에 이 많은 나비가 숨어 있었는지 온 골목에 나비 떼가 춤을 춥니다. 영상으로 담아보려던 헛수고를 그만두고 길섶에 앉은 나비 한 마리 들여다봅니다.
나비 한 마리 돌 위에 앉아 졸고 있다
어쩌면 나의 슬픈 인생을
꿈꾸고 있는 건지도 몰라
-시키*
가던 길을 멈추고 나비 떼에 갇혔습니다. 이보다 더 어여쁜 감옥이 있을까요 절로 행복한 수인이 된 봄날입니다. 내가 나비이고 나비가 나인지 호접몽(胡蝶夢)을 꾸는 나의 넋도 자유롭게 창공을 날아다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