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라다이스
전처(前妻)들과 내 자식들을 포함하여 예전에 나를 알았던 사람들은 누구라도 앞장서서 이 글들을 부정할 충분한 권리가 있다. 남편과 아버지라는 그 간단한 기본 역할들에서조차 내가 얼마나 미숙하고 불성실한 인간이었는지를 생각한다면 말이다. 나는 이 측면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자상함과 진솔함, 근면, 책임감 따위와 관련된 삶의 다른 측면들에서도 비참할 정도로 실패했다. 간단히 말해 나는 자신을 신의 사람, 혹은 진리의 전달자로 내세울 수 없다는 것, 내게는 그런 자격이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사실 나는 절대 그런 역할을 맡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아니, 그런 역할을 맡는다고 가정할 수조차 없는 사람이다. 내 삶 전체가 내 나약함을 증거하는 마당에, 감히 진리를 말한다고 가정함으로써 나는 진리를 손상시키고 있다. 그러니 제발, 신이시여, 청컨대 당신 필경사로서의 의무에서 저를 벗어나게 해주십시오. 그리고 제발 그런 영예를 받을 만한 방식으로 살아가는 다른 사람을 찾아내십시오.
나는 우리가 여기서 시작한 일을 마쳤으면 싶다. 물론 네가 꼭 그래야 한다고 강제하지는 않겠지만, 네가 나한테나 다른 사람한테 져야 하는 “의무” 따위는 없다. 그런 네 사고 방식이 네게 많은 죄의식을 불러왔다는 건 이해가 가지만 말이다.
저는 제 자식들까지 포함해서 사람들을 저버렸습니다.
네 삶에서 일어난 일들 모두가, 너나 너와 관련된 영혼들이 성장하기 위해서 필요로 했고 원했던 바로 그 방식으로, 너희가 성장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일어났던 완벽한 사건들이다.
뉴에이지 사람들이 자기 행동에 대한 책임을 면하고, 불쾌한 결과들을 회피하려 할 때, 완벽한 “출현”이라고 내세우는 게 그런 거죠. 저는 거의 항상 이기적으로 살았던 것 같습니다. 믿기 힘들 정도로 이기적이었죠. 다른 사람들에게 미칠 영향 같은 건 생각하지도 않고 나를 기쁘게 하는 일들만 하면서요.
자신을 기쁘게 하는 일을 하는 데 잘못된 것은 없다.......
하지만 무척 많은 사람들이 상처 입고 버림받았습니다.
무엇이 너를 기쁘게 하는가라는 물음만 있을 뿐이다. 내 보기에 너는, 지금 너를 가장 기쁘게 하는 건 남에게 거의 혹은 전혀 상처 입히지 않는 처신이라고 말하는 것 같은데.
그건 부드럽게 표현한 거구요.
부드럽게가 아니라 일부러 그렇게 표현했다. 너는 자신에게 관대해지는 법을 배워야 한다. 자신을 심판하는 짓도 그만두고.
그게 힘듭니다. 특히나 다른 사람들이 나를 심판할 만반의 준비를 다 갖춘 상황에서는요. 저는 진리인 당신에게 무척 곤혹스런 요소가 되리라는 예감이 듭니다. 이 삼부작을 완결하고 출판하는 일을 제가 계속하다가는 당신의 메시지와 전혀 어울리지 않은 대리인인 나 때문에 메시지 자체를 불신하게 만들고 말리라는 예감 말입니다.
네가 진리를 불신하게 만들 순 없다. 진리는 그냥 진리일 뿐이니, 그것은 증명될 수도 논박될 수도 없다. 그것은 그냥 있는 것이다. 내 메시지의 경이로움과 아름다움은 사람들이 너를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영향 받지 않을 것이고, 영향 받을 수도 없다. 사실 너는 가장 좋은 대리인 중 한 사람이다. 네가 이른바 불완전한 방식으로 삶을 살아왔다는 점에서. 사람들은 네게 자신을 빗대볼 수 있다. 그들이 너를 심판할 때조차도. 그리고 그런 사람들일수록 네가 참으로 진지하다는 걸 알고 나면, 네 “지저분한 과거”까지도 용서해줄 수 있다. 하지만 네게 말하노니, 여전히 남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지 염려하는 한, 너는 그 사람들의 것이다. 자기 외부에서 어떤 인정도 구하지 않을 때, 그때서야 비로소 너는 너 자신의 주인일 수 있다.
제가 염려하는 건 나 자신이 아니라 메시지입니다. 당신의 메시지가 손상될까 봐 염려스러운 거죠.
만일 메시지가 걱정된다면, 그것을 밖으로 몰아내라. 그것이 손상될까 봐 걱정하지 마라. 메시지 스스로가 이야기할 테니. 내가 가르쳐준 것을 기억하라. 메시지를 얼마나 잘 받아들이는가는 그것을 얼마나 잘 보내는가 만큼 중요하지 않다. 그리고 잊지 마라, 너희는 자신이 배워야 할 것을 남에게 가르치는 법이다. 완벽을 이야기하자고 굳이 완벽해져야 하는 건 아니고, 깨달음을 이야기하자고 굳이 깨달아야 하는 건 아니며, 가장 높은 진화를 이야기하자고 굳이 가장 높이 진화해야 하는 건 아니다. 다만 진심이길 구하고, 진지하길 힘써라. 자신에게서 비롯되었다고 여기는 모든 “상처”를 되물리고 싶다면, 그렇다는 걸 네 행동으로 보여줘라. 네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그런 다음 그것이 알아서 하도록 놔둬라.
말하긴 쉬워도 행하기는 어려운 게 그런 겁니다. 이따금 전 심한 죄의식을 느낍니다.
죄의식과 두려움이야말로 인간의 유일한 적이다.
죄의식은 중요합니다. 우리가 잘못했던 때가 언젠지 말해주니까요.
네게 도움되지 않는 것, ‘자신이 누구고 누가 되고자 선택하는지’ Who You Are and Who You Choose to Be에 관해 진실을 말하지 않는 게 있을 뿐이지, “잘못했던” 것 같은 건 없다. 죄의식은 너희를 자기 아닌 것에 묶어두는 느낌이다.
하지만 죄의식은 적어도 우리가 길을 잃었다는 걸 알아채게 해주는 느낌이잖습니까?
네가 이야기하는 건 죄의식이 아니라 자각awareness이다. 너희에게 말하노니, 죄의식은 땅을 자욱하게 뒤덮은 안개고, 식물을 죽이는 독극물이다. 너희는, 죄의식으로는 시들고 죽어갈 뿐 자랄 수 없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두려움과 죄의식이야말로 너희의 유일한 적이다. 너희의 참된 친구는 사랑과 자각이다. 전자를 후자와 혼동하지 않도록 하라. 전자는 너희를 죽이고 말겠지만, 후자는 너희에게 생명을 준다.
그렇다면 제가 무엇에도 “죄의식”을 느껴선 안 된다는 겁니까?
절대로, 어떤 경우에도. 그렇게 해서 뭐 좋은 게 있는가? 죄의식은 너희가 자신을 사랑할 수 없게 만들고, 다른 사람을 사랑할 기회를 빼앗을 뿐이다.
그리고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고요?
두려움과 조심은 다르다. 조심하라, 다시 말해 의식하라, 하지만 두려워하지는 마라. 의식은 움직이게 하지만, 두려움은 마비시킬 뿐이니. 마비되지 말고 움직여라.
저는 항상 신을 두려워하라고 배웠는데요.
알고 있다. 그리고 그때 이후로 너는 나와의 관계에서 줄곧 마비되어왔다. 네가 나를 두려워하길 그만뒀을 때, 그때서야 비로소 너는 나와 뭔가 의미 있는 관계를 창조할 수 있었다. 나를 찾아내게 해주는 어떤 선물, 어떤 특별한 은총을 내가 너희에게 줄 수 있다면, 겁 없음이 그것이었을 것이다. 겁 없는 자들에게 축복 있기를, 그들은 신을 알게 되리니. 이것은 자신이 신에 관해 알고 있다고 여기는 것을 내려놓을 만큼 충분히 겁이 없어야 한다는 뜻이다. 너희는 남들이 신에 관해 너희에게 말해준 것에서 비켜설 만큼 충분히 겁이 없어야 한다. 충분히 겁이 없을 때, 그때서야 비로소 너희는 감히 자기 나름의 신 체험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 그리고 그때 너희는 그걸 놓고 죄의식을 느끼지 말아야 한다. 자기 나름의 체험이 자신이 알고 있다고 여긴 신이나 다른 모든 사람들이 자신에게 말해준 신과 어긋나더라도, 너희는 죄의식을 느끼지 말아야 한다. 두려움과 죄의식이야말로 인간의 유일한 적이다. - 신과 나눈 이야기 3권 中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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