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신령한 한 물건

황령산산지기 2019. 11. 17. 06:58

유당(幽堂)

    



 


< 질문 >

 

‘모든 게 비었다’는 말만 공허하게 맴돌 뿐,


여전히 보고 듣는 바에 휘둘립니다.

 

 

 

< 답변 >

 

보고 듣고 하는 모든 일은 오직 제가 제 마음을 보는 거요.


제가 제 마음을 보고 듣고 하는 건데 그것을 어떻게 본다,


듣는다고 말할 수 있겠소?  꿈꾸고 있는 거요, 지금. · · · · · · 


눈은 나면서부터 빛깔만 봤고, 귀는 나면서부터 소리만 들었고,

그러니 멀쩡히 눈을 뜨고 있으면서도 보지 못하는

청맹과니 소리를 면치 못하는 거요.


 지금 이 순간 보고 있는 게 바로 보지 않는 거요.

 여러분이 만약 이 마당에 와서도 아직도 ‘내’가 보고, 듣고

하는 것으로 여기고 있다면 그 사람은 가망 없소.

무안이비설신의(無眼耳鼻舌身意)를 거들지 않더라도,

이 육신은 지각이 없는 거요.

안으로 ‘나’가 없고 마음 밖으로 한 법도 없으니,

누가 있어서 무엇을 보겠냐는 말이오?

 

보는 자도 없고 볼 것도 없는 게 분명한데도,

단풍은 온통 아름답게 울긋불긋하고 은은한 차향기가 코를 찌르니

이 얼마나 묘법(妙法)인가 이 말이오.  

분명히 이 육신은 지각이 없는데

지금 면전에 펼쳐지고 있는 것은 무엇이냔 말이오? · · · · · ·


신령한 한 물건이 있어서, 스스로는 성품도 작용도 없으면서

온갖 것을 응현(應現), 화현(化現)하고 있는 거요.

성품도 작용도 없이 나투니 그건 마치 꿈처럼 환처럼 나툰 것이라

실제로는 아무것도 나툰 일이 없는 거요.

 

안으로 아무것도 없고 밖으로도 아무것도 없는데,

육근(六根)으로부터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 육진(六塵)이

계속 흘러 새고 있는 거요.
여러분의 생각이 경계를 대할 때 마다 육근에서

계속 허물을 말아내고 있는 거요.


이쁘다 밉다, 좋다 나쁘다, 힘들다 편안하다 등등, 모든 느낌이 그것이오.

아무 것도 없는 데에서 느낌을 좇으면서 허물을 말아내고 있다 이 말이오. · · · · · ·


만법이 성품 없는 도리를 바닥까지 깊게 사무치게 되면,

만법이 있되 있음이 아님으로 있음에도 머무는 일이 없고,

없되 없음이 아님으로 없음에도 머물지 않게 되니,

그렇게 조촐히 공부를 지어가는 거요.

 

- 대우거사님



선의 세계 / 본래의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