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8월 야생에서 채취한 송이버섯을 샹그릴라 시장에 가져와 내다파는 티베트 여인들. 샹그릴라는 중국 최대의 송이버섯 산지로 유명하다. | |
ⓒ 모종혁 |
아름다운 곳이 있다네. 사람들은 그 곳을 찾아가려 하네. 그 곳은 사계절 항상 푸르고 새들 지저귀고 꽃들 향기로운 곳이라네. 그 곳은 고통, 근심, 걱정이 없는 곳이라네. 그 곳의 이름은 샴발라, 신선들의 낙원이라네. 아, 샴발라는 그리 멀지 않다네. 그 곳은 바로 우리들의 고향이라네. - 티베트의 한 유행가 중에서 1997년 9월 중국 윈난(雲南)성 정부는 국내외 기자를 불러 모아 대규모 회견을 열었다. 윈난성은 "티베트 전설로 내려져 온 샹그릴라의 실체가 확인됐다"면서 디칭(迪慶)티베트족자치주 중뎬(中甸)현이 전설 속의 샹그릴라와 똑같다고 발표했다. 윈난성은 "지난 1년여 동안 역사·지리·민속·언어·종교 등 각 분야 50여명 전문가들이 현지 탐험과 다양한 연구를 벌였다"면서 "중뎬은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Lost Horizon)>에 나오는 샹그릴라의 모든 자연·문화적 조건이 일치한다"고 주장했다. 샹그릴라(Shangri-La)는 1933년 영국 소설가 제임스 힐튼이 쓴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에 소개된 티베트 전설 속의 이상향이다. 세계 대공황의 황폐한 생활 속에 찌든 서구인들에게 소설 속에 묘사된 샹그릴라는 꿈에 그리던 지상낙원이었다. 히말라야산맥 중 평생 늙지 않고 영원한 젊음을 누릴 수 있는 작은 마을, 샹그릴라. 넉넉한 먹거리에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근심걱정 없이 가족 및 이웃과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이 사는 곳, 샹그릴라. <잃어버린 지평선>은 금세 베스트셀러가 되어 엄청난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다. 자본주의의 틀에 박히고 물질문명에 중독된 삶을 벗어나 정신세계에 몰입하는 젊은이들이 생겨났다. 중장년층은 단조롭고 무색무취한 생활에게 벗어나 젊고 활력 있게 살려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이른바 '샹그릴라 신드롬'이 일어난 것이다. 1937년 소설은 컬럼비아영화사에 의해 영화로까지 제작됐다. 소설과 영화로 샹그릴라를 접한 서구인들은 한 줄기 구원의 빛을 찾아 티베트로 떠났다. 샹그릴라를 찾아나선 이 중에는 독일의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도 있었다. 히틀러는 샹그릴라를 '순수 아리안 혈통의 진원지'로 규정하고 자신의 친위부대 탐험대를 7차례나 파견했다. 탐험대의 일원이었던 하인리히 하러와 페터 아우프슈나이터는 네팔 주둔 영국군에게 포로로 잡혔다가 티베트로 탈출했다. 두 사람이 티베트에서의 생활과 체험을 쓴 논픽션은 훗날 영화 <티벳에서의 7년>로 만들어졌다. <티벳에서의 7년>은 중국이 티베트를 어떻게 강압적으로 점령했는지 잘 묘사하여, 중국정부로부터 반중 영화 1호로 낙인 찍혔다.
재빠른 샹그릴라공정으로 샴발라 전설을 선점한 중국 중국이 샹그릴라 탐험에 나선 데에는 서구인의 오랜 샹그릴라에 대한 동경에서 유래됐다. 본래 샹그릴라는 티베트어 '샴발라'(Shambala)에서 비롯된 이상향이다. 샴발라는 시간이 정지된 지상낙원에서 생로병사의 고통 없이 살고자 하는 티베트인의 염원에 깃든 극락정토이다. 티베트인에게 샴발라는 단순히 전설로만 그치지 않았다. 적지 않은 티베트인은 샴발라가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 대상지는 티베트인에게 세계의 중심축으로 여겨지는 성산 카일라스 부근인 다와쫑. 다와쫑은 달빛이 비치는 밤이면 셀 수 없는 바위들이 모두 부처님 형상이 되어버리는 신비의 계곡이다. 샴발라의 전설과 유사한 대상지는 티베트 본토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인도, 네팔, 부탄, 중국 쓰촨(四川)성 등 히말라야산맥의 여러 마을에는 샴발라와 유사한 설화가 내려져 왔다. 이를 바탕으로 한동안 히말라야 연변의 각국은 전설 속의 샹그릴라가 자국에 있다면서 경쟁했다. 여기에 중국이 선수를 쳤다. 중국은 '샹그릴라공정'이라 불릴 만큼 저돌적이고 치밀한 준비와 작업을 통해 윈난성 중뎬을 샹그릴라로 만들어버렸다. 중국이 중뎬을 샹그릴라로 지정한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중뎬은 소설에 묘사한 조건을 모두 갖추었다. 찾는 이를 매혹시키는 아름다운 자연, 설산을 배경으로 한 드넓은 초원, 불심이 깊은 라마승이 사는 라마사원 등이 그것이다. 둘째, 디칭 토속어로 샹그릴라는 '내 마음 속의 해와 달'이라는 뜻이다. 이는 샴발라의 방언 격인 샹그릴라의 어원과 정확히 일치한 것. 셋째, 중뎬 티베트인은 다른 동부 티베트 캄(Kham) 사람들과 달리 이민족에게 우호적이고 손님을 극진히 모셨다. 중뎬 티베트인은 경작할 땅이 넉넉하고 물품이 풍부하여 먼 길을 온 타인을 포용하고 베풀었다. 2001년 12월 윈난성은 중뎬을 샹그릴라로 만들기 위해 이름마저 '샹거리라'(香格里拉)로 고쳤다. 2003년에는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록시켰다. 샹그릴라로 개명한 위력은 컸다. 작년 한 해 중뎬을 찾은 관광객 수는 250만 명을 넘어섰다. 관광객이 뿌린 돈도 10억 위안(한화 약 1950억원)에 달한다. 1995년 한해 찾는 이가 7만 명에 불과했던 해발 3280m의 작은 티베트인 마을이 세계가 주목하는 관광지로 탈바꿈한 것이다.
한족도 티베트 농민도 해외 유학생도... 관광개발 전선에 나서
과거 샹그릴라 티베트인이 살던 고성(古城)은 식당, 술집, 카페, 상점, 여관 등 관광업소들로 가득 찼다. 고성에 살던 티베트인은 신도시로 이주했다. 지금 고성에 사는 주민 대다수는 한족이거나 외지에서 온 티베트인이다. 2004년 윈난성 수도 쿤밍(昆明)에서 샹그릴라로 온 장몐청(34)은 고성에서 식당을 운영한다. 장은 "2003년 친구와 여행 왔다가 샹그릴라 발전 잠재력을 발견했다"면서 "지방정부에서 영업세 감면 등 각종 지원을 해주고 관광객도 늘어나 쉽게 정착에 성공했다"고 말했다. 작년부터 관광객에 들어닥치기 시작한 다바오스(大寶寺)마을도 상업화의 바람은 거세다. 2년 전 기자와 만났던 농민 라종피주(28)는 이제 렌터카 기사로 변모했다. 커가는 샹그릴라의 빈부격차가 불만이었던 그는 마을을 찾는 관광객을 상대로 장사에 몰두해 있다. 라종피주는 대출을 받아 산 자동차를 몰아 관광객을 다바오스에 실어 나르고 전시장처럼 개방한 자신의 집을 견학시켜 돈을 번다. 그는 "농사지을 때보다 수입은 3~4배 더 늘었다"면서 "관광객이 샹그릴라 부의 원천"이라고 말했다. 샹그릴라 지역의 관광 개발은 외국으로 나간 티베트인마저 불러들이고 있다. 2003년 인도 유학 후 귀국한 롱부치린(36)은 제법 큰 카페와 게스트하우스를 운영 중이다. 한때 티베트 망명정부가 있는 다람살라에서 거주하기도 했던 그는 고향으로 되돌아 온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롱부치린은 "예전에는 티베트가 독립하기 전 절대 귀국하지 않겠노라 맹세했었다"면서 "고향 개발에 인도에서 배운 지식을 펼쳐보고 싶어 귀국했다"고 밝혔다. 지방정부도 관광객을 맞이하기 위해 대대적인 라마사원 복원사업을 벌이고 있다. 반세기 전 샹그릴라 일대에는 라마불교 최대 종파인 겔룩파(Gelukpa) 6대 사원 중 하나인 간덴 쑴첼링사(Ganden Sumtseling Gompa, 松贊林寺)을 비롯, 수십 개의 사찰이 있었다. 한때 티베트 캄 지역에서 가장 흥성했던 라마사원은 문화대혁명의 재앙을 피하지 못했다. 홍위병에 의해 샹그릴라의 모든 라마사원이 잿더미로 변한 것. 중국에 의해 파괴되었던 라마사원이 관광객 유치를 위해 다시 문을 열고 있다. 한 라마사원 복원 현장에서 만난 석공은 "지방정부에 고용되어 일하고 있다"면서 "여기저기서 벌어지는 사원 공사 덕에 일년 내내 바쁘다"고 말했다.
오지까지 불어닥친 개발 부작용... 고유의 인정도 몰아내 해발 6740m의 메이리(梅里)설산 속 위벙(雨崩)마을의 변화는 더욱 극적이다. 위벙은 샹그릴라에서 240㎞ 떨어져 자동차로 8시간, 다시 말로 4시간 타야 들어갈 수 있는 오지 중 오지다. 한 번도 인간의 발길을 허락하지 않은 메이리설산 깊숙이 위치한 위벙은 20세기 말에야 외부세계에 알려졌다. 위벙은 크지 않지만 마을 주민 모두가 농사지을 수 있는 경작지, 두 명의 라마승이 지키고 있는 라마사원, 티베트인이 신령시하는 폭포, 빙설에 둘러싸인 고산 호수 등을 간직하여 여행 마니아로부터 샹그릴라보다 더 샹그릴라다운 마을로 손꼽혔다. 10년 전만 해도 찾는 외지인이 거의 없던 위벙마을은 지금 몸살을 앓고 있다. 고산계곡에 은밀히 감춰져 왔던 위벙의 아름다운 자연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관광객이 몰려들었다. 밀려드는 관광객을 상대하고자 위벙 티베트인은 집을 개조해 게스트하우스로 만들고, 자신은 관광객을 실어 나르는 마부로 변했다. 자족자급하며 이웃끼리 오붓하게 살던 위벙 티베트인에게 이제 관심사는 관광객을 최대한 등쳐먹는 것이다. 위벙의 게스트 하우스는 열악한 환경이지만 방값은 여느 도시 여관만큼 높다. 관광객이 타는 위벙의 말 값은 중국에서 가장 비싸다. 손수 나서서 기자에게 마을 곳곳을 안내했던 한 주민은 뒤늦게 일당을 요구해 뜯어가기까지 했다. 급속한 관광 개발로 순박했던 현지 티베트인의 심성까지 변하고 있지만, 개발의 부작용은 더욱 심각해질 전망이다. 작년 11월 29일 미국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는 "샹그릴라로 묘사된 중뎬이 넘치는 외지인과 관광버스로 실락원(失樂園)이 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는 "10여 년 전만 해도 진흙길을 따라 목재로 지어진 집들이 늘어서 있던 샹그릴라가 지금은 호텔 100여 채를 자랑하는 31㎢ 규모의 관광타운으로 변질됐다"며 "지방정부는 베이징과 상하이발 항공노선 운항계획까지 잡아 5년 내에 연간 500만 명의 관광객을 유치하려고 한다"고 보도했다. 커지는 빈부격차와 한족의 상권 장악도 문젯거리다. 샹그릴라 시내와 일부 관광지는 몰리는 관광객으로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지만, 여타 농촌 마을은 여전히 가난하다. 농촌의 티베트 젊은이들은 돈을 벌기 위해 샹그릴라 시내에 오지만, 이 지역 상권은 대부분 한족이 차지하고 있다. 관광객을 위한 식당과 카페에서 티베트인이 티베트 음식을 팔지만, 결국 돈을 버는 것은 자본을 댄 한족 주인이다. 티베트 고유의 아름다움과 인정을 잃어버린 샹그릴라. 샹그릴라에는 더 이상 티베트의 이상향이 없다. 오직 외지 관광객을 노린 상술만 난무하고 있다.
|
출처 :여행, 바람처럼 흐르다 원문보기▶ 글쓴이 : 무심재
'알송 달송'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젊으니까 좁은 데 살아도 괜찮다고? (0) | 2019.09.21 |
---|---|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UFO설은 무엇인가 (0) | 2019.09.14 |
우주로부터 오는 사랑의 메시지 (0) | 2019.08.25 |
영혼은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다. 영혼은 모든 걸 다 갖고 있다. (0) | 2019.08.25 |
천사보다 더 높은-형상이 없는 빛이었던 당신이 (0) | 2019.08.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