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송 달송

생의 한가운데를 건너다

황령산산지기 2019. 6. 9. 15:22

다잉 

    



저녁에 일찍 잠자리에 들면 인경의 시각 밤 3-4시면 잠에서 깨어난다.

옆에서 자고 있는 평생친구에게 미안해서 응접실 컴 앞에 앉는다.

지난주 강호를 유랑하던 친구 일행과 남도 땅에서 저녁 식사하고, 

마라난타사에 가이드 역할을 하고 영광의 호텔로 도중 지독한 안개를 만났을 때 

떠올랏던 법현의 인도여행기- 度沙河(사하를 건너다)를 생각하다.

안개가 자욱하여 지척을 분간할 수 없을 때 

귀기서린 공포를 느끼며 전율하며 불현듯 법현의 인도여행기가 떠올랏다.

 

度沙河. 沙河中多有惡鬼熱風. 遇則皆死, 無一全者. 上無飛鳥, 

下無走獸. 徧望極目, 欲求度處, 則莫知所擬. 唯以死人枯骨爲標幟耳.

 (도사하, 사하중다유악귀열풍, 우즉개사, 무일전자. 상무비조, 하무주수.

 편망극목, 욕구도처, 즉막지소의. 유이사인고골위표치이)

 

번역하면 .

"沙河(사하)를 건너갔다. 사하 가운데는 惡鬼(악귀)와 熱風(열풍)이 많다.

 만나게 되면 죽게 되고 온전할 수가 없다. 

위로는 나는 새가 없고(上無飛鳥), 밑으로는 다니는 짐승이 없다(下無走獸). 

눈에 힘을 주고( 極目)멀리 둘러보면서(徧望) 길을 찾고자 하나 도무지 짐작할 수가 없다. 

오르지 죽은 사람의 해묵은 뼈만이 標幟(길안내)가 될 뿐이다."

 

 

唯以死人枯骨爲標幟耳.

앞서 죽어간 자들이 나의 표지가 될 뿐이다. 얼마나 치열한 문장인가 ?

법을 구하기 위해 갔던 스님들의 백골이 표지가 된 것이다.

나도 법현처럼 죽음의 공포보다도 더 생의 법을 구하기 위해 열망한 적이 있었나 !.

사춘기 이후 자의식이 오면서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는 누구이며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청년기 도서관을 집으로 삼아 끊없는 지식의 갈증을 달래기 시작했을 때. 

1개월를 보내며 새로운 사상과 만나지 않는 나를 생각할 수가 없었다,

이 전과 동일한 상념을 반복할 때면 나는 내가 살아있는 것보다는 죽어간다는 공포를 느끼기 까지 했다. 

지식은 지식의 호기심에 대한 갈증만 더할 뿐 어던 사상도 생의 진면목을 보여주지 못했다.

 

 

沙河中多有惡鬼熱風

사하 가운데는 惡鬼(악귀)와 熱風(열풍)이 많다. 

만나게 되면 죽게 되고 온전할 수가 없다

나도 인생의 한가운데서 열풍을 만나야 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강호에 발을 들어놓아 인생의 장도에 오르게 되는 바

대기업을 들어가서 휴일을 반납하고 주야를 뛰게 되자 

열풍과도 같은 병마가 찿아온 것이다, 

 

대학병원에서 5개월에 걸처 입원치료를 했지만 현대의학으로는 해결책이 없다는 말을 듣게 된다.

인턴의사가 “성경이나 읽으라”는 말을 하게되는데 

나중에 곰곰이 생각하니 “죽음을 준비하라”는 말인 것이다.

 

그 때는 5월 !

장미꽃은 만발하여 “살고 싶다”는 강열한 욕구가 쳐올라, 하늘을 쳐다보니 

하늘은 에메랄드 빛이었다.! 

그 절망의 나락의 순간 법현의 여행기를 떠올렷다.

법현이 사막을 건너다 죽은 무명의 스님처럼 생의 한가운데 쓰러질 것인가 ?

아니다 건너야한다.

 

아래는 반야심경의 마지막 귀절 

건너세 건너세 어서건너세  

揭諦揭諦波羅揭諦 波羅僧揭諦 菩提 娑婆訶 

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건너야 한다 생의 한가운데 주저 앉아서는 안된다.

사춘기이후 나의 화두 

왜 사는지 ?

우리는 누구이며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

아직도 알지도 못한데 지금 죽는다는 것은 넘 억울했다.

아 ! 나는 생의 비밀을 알지도 못하고 생의 사막 한가운데서 

무명의 스님처럼 죽어야 한다는 말인가 ?

 

  

이제 어디로 가야하는가 ?

則莫知所擬

어디가 길인가 ? 

알고 싶어 눈을 들어 사막을 보아도 둘러봐도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사람들은 위험한 법을 구하는 여행 따위는 하려하지 않는다.

 법을 구하지도 않고 그 냥 산다, 

존재의 이유를 묻지 않는다. 

남들이 사니 나도 그렇게 한세상 살아 간다 

 

오늘밤은 잠들기 힘들지 모른다

안개 자욱한 길을 주행하며 떠오르는 

求法(구법)과 求道(구도)의 험난한 길을 택한 법현을 다시생각하다.

법현은 무사히 인도에 갔다 와서 이 글을 남겼다.

필자 역시 30대 초반의 부터 열사의 사막을 무사히 건넜다. 

30대 초반에 진리를 발견하고

죽음 공포도 누구러지고

지금은 지식에 목말라 하는 갈증 따위는 없다.

다만 나이 탓으로 불면의 밤은 온다.

이제는 주어진 길을 가고자 한다.

인생의 장도에 가끔은 모래바람과 열풍이 불지만 

생의 소중함을 생각하며 일각일각을 열심히 살고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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