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일 유명인들의 성폭력 사건으로 시끄러운 가운데 한편에선 피해자를 비난하는 반응들을 역시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최근 '버닝썬 사건'만 해도 애초에 클럽에 간 게 잘못이라거나 저런 사람들을 좋아한 게 문제라는 비난의 화살을 오히려 피해자나 제3자인 여성에게 돌리는 반응들이 한 예다. 친밀한 관계에서의 나타난 폭력 사건들에서도 그러게 왜 저런 남자를 사귀었냐며 여성도 잘못이라는 듯 이야기하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멀쩡한 가해자를 놔두고 피해자를 향해 화살을 돌리는 데에는 어떤 동기가 숨어있는 것일까.
다양한 폭력사건에서 가해자가 그 원인을 피해자에게 돌리고 자신이 오히려 피해자에 가깝다고 변명하는 것은 흔한 반응이다. 예컨데 많은 가정폭력범들이 여성 파트너에게 네가 나를 화나게 했으니까 때리는 거라고, 네가 잘 행동했으면 내가 이러지 않았을 거라고 주장하는 경향을 보인다. 하지만 실상은 피해자가 어떤 행동을 하든 하지 않든 가해자는 꼬투리를 잡아 폭력을 행사한다. 이런 상황에서 피해자 비난하기는 폭력을 ‘정당화’함으로써 가해자가 지속적으로 폭력을 행사하게끔 돕는 발판이 된다. 또한 피해자로 하여금 폭력이 자신의 잘못인 양 자책하게 만들어 본인이 일방적인 폭력의 피해자임을 인지하지 못하게 한다. 결과적으로 가해자의 피해자 비난하기는 폭력을 지속시키고 피해자가 가해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게 속박하는 작용을 한다(Dutton & Goodman, 2005; Finkel & Eckhardt, 2013).
이렇게 가해자가 자신이 나쁜 게 아니라고 ‘자기 방어적 변명’을 늘어놓는 것은 그렇게 놀라운 일은 아니다. 죄가 클수록 이것이 바깥으로 알려지는 순간 잃을 것이 많은 법이며 그럴수록 죄를 인정하지 않고 다 내 탓인 것은 아니라며 잘못을 덜어내는 법이다. 흥미로운 현상은 제3자이면서 피해자보다 가해자의 입장에 이입해 마치 자신을 방어하듯 가해자를 옹호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미국 테네시대 콜린 키 교수에 따르면 이들은 가해자의 잘못이 잘못으로 인정될 경우 본인도 잃을 것이 많은 사람들이다. 즉 본인이 가해자와 비슷한 성질을 가지고 있으며 따라서 피해자보다 가해자의 입장에 속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이렇게 자신을 가해자와 동일시 하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피해자를 비난하고 가해자를 옹호하는 경향을 보였다(Key & Ridge, 2011).
연구자들은 성폭력 경향성을 측정했다. 연구자들은 성차별적인 사고방식, 상대방이 원치 않는 성적인 농담이나 성적 행위를 하는 것에 죄책감이 없고 강간 문화에 익숙한 정도에 대해 물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성폭력은 ‘한 순간의 실수’이기보다 오래된 성차별적 의식과 잘못된 성관념, 강간 문화의 산물이다(Polaschek & Gannon, 2004). 예컨데 “여성과 남성은 직장에서 다른 대우를 받아야 한다”, “여성의 노(No)는 예스(Yes)이다”, “여성들은 겉으로는 싫은 척 해도 남성에게 성적 관심을 받는 것을 즐긴다”, “내가 상사라면 부하직원에게 적극적으로 대쉬할 것이다” 등이었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남성이 때론 여성에게 무력을 행사해도 괜찮다고 여기는 폭력적 태도 및 실제 성폭력을 저지를 확률 등과 관련을 보인다(Bartling & Eisenman, 1993).
연구자들은 사람들에게 여덟 가지 가상의 시나리오를 보여줬다. 예컨데 남성 A가 직장동료 여성 B에게 ‘벌이가 시원찮으면 노출을 좀 더 해봐’ 같은 부적절한 성적 발언을 하는 상황이다. 이 남성은 과거에도 여러번 이와 같은 부적절한 행동으로 물의를 일으킨 바 있으며 이에 회사에서 남성을 다른 사업장으로 배치했다. 이와 같은 상황을 상상해보고 이 남성 A와 본인이 비슷한 상황에 처할 확률이 얼마나 될 것 같은지, 이 남성 A가 얼마나 자신과 닮았는지, 또 그 상황에서 남성이 또 여성이 각각 얼마나 잘못했는지에 대해 물었다.
그 결과 성차별의식과 그릇된 성관념을 가진 남성들은 그렇지 않은 남성들에 비해 가해자의 입장에 크게 이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자신이 가해자와 비슷한 상황에 처할 확률이 높으며 자신과 가해자가 비슷한 면이 많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이렇게 가해자와 자신이 비슷하다고 여길수록 가해자의 잘못은 작게 평가한 반면 피해자의 잘못을 크게 평가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평소 찔리는 점이 많고 스스로를 비슷한 가해 확률이 높은 잠재적 가해자로 여길수록, 다른 가해자의 잘못을 자기 방어하듯 옹호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남자들은 다 그래”라는 변명들 역시, 흔히 나타나는 “모든 남자가 다 그런 것은 아니야”와 상충 관계에 있음은 차치하고, 서로의 잘못을 함께 공유하고 힘을 합쳐 숨겨주는 집단을 늘리기 위한 논리로 악용될 소지는 충분히 있는 셈이다. 모두가 죄를 저지른다면 그것은 죄가 아니게 될 수 있으니 말이다. 이렇게 공고한 상호 성폭력 옹호 시스템 속에서 성폭력이 단톡방(메신저 단체 채팅방)의 농담 정도로 삼을 수 있는 가벼운 일로 자리잡게 된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박진영 심리학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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