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송 달송

[스크랩] 그 유명한 이야기, `선녀와 나무꾼`의 재발견

황령산산지기 2019. 1. 13. 07:32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 아시죠?

그런데 나무꾼이 선녀옷을 몰래 숨겼다고요? 그거 도둑질인데..

도둑질하고 어떻게 그렇게 예쁜 선녀하고 결혼을.. 복을 받을 수 있나요?

사실은 그보다 먼저 지어 놓은 복이 있었던 겁니다.


아주 옛날 한 마을에 한 나무꾼이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사냥꾼에게 쫓기던 사슴 한 마리가 달려와서는 살려 달라고 애원했다.

나무꾼은 쌓아 놓은 나뭇더미 속에 사슴을 숨겨서 사냥꾼으로부터 구해 주었다.

사슴은 산을 돌아 나가면 하늘의 선녀들이 멱을 감는 연못이 있다고 귀띔해 주었다.

그리고 선녀들이 멱감는 틈을 타서 그중 한 선녀의 날개옷을 감추라고 했다.

하늘로 올라가지 못한 선녀를 집으로 데려와 보살피면 아내가 될 거라고 했다.

그런데 아이 셋을 낳기 까지는 날개옷을 깊이 감추고 절대로 보여 주지 말라고 했다.

나무꾼은 연못을 찾아가서 사슴이 일러준 대로 했다.

멱을 다 감은 선녀들이 다들 하늘로 돌아가는데, 날개옷을 도둑맞은 막내 선녀는 그러지 못 하고 울고만 있었다.

나무꾼은 선녀를 집으로 데리고 와서 지내다가 아내로 삼고 잘 살았다..


그래서 나쁜짓 하고도 잘사는 사람을 보고

그게 악업의 과보라고 생각하면 오해입니다.

요즘 세상은 저렇게 좀 못되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면 큰 오해입니다.

우리가 모를 뿐, 예전의 선업에 대한 과보를 누리고 있는 것이죠.

그래서 법구경에 이런 게송이 있습니다.


'내게는 업보가 오지 않으리라고
악을 가볍게 여기지 말라.
방울물이 고여서 항아리를 채우나니
작은 악이 쌓여서 큰 죄악이 되느니라.

 

악의 열매가 맺기 전에는
악한 자도 복을 만난다.
그러나 악의 열매가 익었을 때
악한 자는 재앙을 입는다.

 

선의 열매가 맺기 전에는
선한 이도 이따금 화를 만난다.
그러나 선의 열매가 익었을 때
선한 사람은 복을 누린다'



그렇게 수삼 년을 지나는 사이에 아이를 둘 얻었다.

아내는 이제 아이를 둘이나 두었으니 제발 날개옷을 보여 달라고 했다.

결국 나무꾼은 날개옷을 꺼내 와서 선녀에게 건네 주었다.

아내는 날개옷을 입어보더니 두 아이의 손을 잡고는  하늘로 훨훨 날아서 올라가 버렸다.


나무꾼은 매일 눈물로 보내다가 다시 사슴에게 방법을 청하게 되고

이제는 선녀들이 내려오지 않고 두레박으로 물을 퍼 올려 목욕을 한다면서 두레박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라고 알려주었다.

나무꾼은 그 말대로 두레박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 아이들과 선녀와 행복하게 살았다.

 

다른 생명을 살려주는 방생은 이렇게 큰 공덕이 있습니다.

인간계 중에서도 평민이 졸지에 천당에.. 천상세계로 올라가다니

그야말로 급격한 신분상승.. 엘리베이터 상승도 아니고 로켓트 급상승이고요,

죽어야만 천당에 가는 게 아니라 선업을 지으면 저렇게 살아서 이미 천당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선업은 이렇게 좋아요.. 하자가 생기면 추후에 A/S도 되니까요 ㅎㅎ)



그렇지만 나무꾼은 어머니가 걱정이 되어 다시 지상으로 내려오려고 했다.

아내는 천마 한 마리를 내주면서 타고 가서 어머니를 만나되, 무슨 일이 있어도 말에서 내려 땅을 밟지 말라고 했다. 

이 말은 본래 용이기 때문에 말에서 내리면 바로 용으로 변해 날아가버리니까 절대로 내리지 말라고 당부했다. 

나무꾼은 용마를 타고 어머니에게로 와서 말에서 내리지 않은 채, 하늘나라에서 잘 살고 있다고 안부를 전했다.

어머니는 내려서  밥을 먹고 가라고 간절히 바라고.. 밥이 안 되면 따뜻한 죽이라도 한그릇 먹고 가라면서 

아들이 좋아하는 팥죽(또는 호박죽)을 끓여 주었는데, 아들은 그 청을 못 이겨 말 위에서 죽을 먹다가

팥죽이 너무 뜨거운 탓에 먹다가 그만 말 등에 흘리고 말았고.. 말이 기겁을 하고 놀라 뛰는 바람에

나무꾼은 땅바닥에 떨어지고 천마는 하늘로 올라가 버렸다.


그래서 남자는 여자 말을 잘 들어야 합니다.

부인 말을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겨요.

아니 피자가 생기고, 술이 생길지도 모르죠..^^



다시는 하늘로 못 가게 된 나무꾼은 날마다 하늘을 쳐다보며 슬퍼하다가 죽었고

수탉이 되어 지금도 지붕 위에 올라 하늘을 바라보며 운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닭이 되었을까요?

우리가 좀 비속어로 '닭대가리'라는 말을 쓰죠? 잘 까먹을 때..

그리고 불화에서 탐진치 중에 치심(癡 어리석음)을 닭으로 표현하기도 하는데

<1>조심하라는 아내의 말을 좀 더 유념하지 못한 어리석음..


<2>그리고 '지금 여기'에 대한 감사를 모르는 어리석음..

땅에서는 하늘을 그리워하고, 하늘에서는 땅을 그리워하고

또 땅에 와선 하늘을 그리워하고..


<3>그리고, 피할 수 없는 것을 거부하는 어리석음..

눈물 흘리되 그 눈물에 젖어서는 안 되는데

젖는 건 고사하고 그 눈물에 푹 빠져 헤어나지 못하는 것은

결국 스스로를 해치는.. 정말정말 슬픈 일이므로

그 과보를 면치 못한 것이 아닐까요?

그래서 매일 아침 수닭의 울음은 어둠을 깨쳐 새벽을 부르는 소리..

우리의 어리석음(無明)을 깨우쳐 지혜(光明)로 나아가라는 소리..

그런 경종이 아닐까요?


출처 : 불교는 행복찾기
글쓴이 : 햇빛엽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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