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는 감촉이 있고 묵묵(默默)해야 한다
둥근 과일처럼
엄지 손가락에 닿는 오래된 메달처럼
말 없고
이끼 낀 창(窓) 턱의 소맷자락에 닳은
돌처럼 고요하고
새가 날듯이 시는 무언(無言)해야 한다
시는 달이 떠오르듯 시시각각 움직임이
보이지않아야 한다
어둠에 얽힌 나무를 한 가지 한 가지씩
달이 놓아 주듯
겨울철 나뭇잎에 가리운 달처럼
하나씩 추억을 간직하면서 마음에서
떠나가야 한다
시는 구체적이어야 한다
사실이 아니라
슬픔의 긴 역사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텅 빈 문간과 단풍잎 하나를
사랑을 위해서는
비스듬히 기댄 풀잎들과 바다 위
두개의 별빛을
시는 의미(意味)할 것이아니라
(그 자체로) 존재해야 한다
Archibald MacLeish
(1892 ~ 1982)
미국 일리노이 州 출생. <상아탑,1917>을 비롯한
다수의 시집 이외에도 시극(詩劇) 등의 저작이 있다
하바드 大 교수를 역임했고 두 차례에 걸쳐
퓰리쳐 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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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 감상>
우선, 시제가 담지하는 느낌이 각별하다
<시쓰기>에도 그 무슨 법이 있을까..
아무튼,
요즘의 이른바 첨단을 달리는 詩들을 대하면 그 어떤 詩들은 마치
스마트 . 전자제품의 복잡한 사용설명서를 읽는단 느낌마저 들곤 한다
<詩읽기>에 따른, 독자의 무한책임만 일방적으로 강조되는..
(詩를 이해하지 못하는 건 전적으로 독자의 무지와 돌 같은 머리,
그리고 예민하지 못한 가슴에 따른다는 유의사항과 함께
- 요즘의 신춘문예 심사평調가 그러하듯이)
하지만 詩란 건 논리적이고 현학적(衒學的)이고 추상적인 게 아니라, 살아있는
구체적 감응(感應)으로 전해지는 그 어떤 것이어야 한다고 <아치볼드>는 말하고 있다
즉, 시인은 자신의 詩를 장황하게 설명하기보다는 독자로 하여금 생생하게
詩를 보고 만지고 냄새 맡을 수 있게 하여야 한다는 뜻일 거다
詩가 마치, 정신공학(精神工學)을 말하는 복잡한 논문 같아서야
독자에게 그 무슨 살아있는 감동으로 전해질 수 있을까..
詩에서 말해지듯이,
사랑을 복잡하게 기술(記述)하기보다는 서로 기대어 한 방향으로 기우는 풀잎들,
깜깜한 바다 위에서 함께 반짝이는 두 개의 별빛을 고즈넉히 보여주는 것
그리고, 슬픔을 길게 설명하기보다는 독자가 슬픔을 가슴으로 느낄 수 있도록
텅 빈 문간과 단풍잎 하나를 넌지시 보여주는 것
시인이 자신의 생각을 세부적 . 기술적(技術的)으로 설명하기보다는, 혹은 설득을 위한
강요보다는 둥그런 과일, 오래된 메달, 떠오르는 달, 비상하는 새와 같은 오감(悟感)
으로 전해지는 이미지를 보여주는 게 詩의 本 모습은 아닐까 생각해 보며...
-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