九里平野滿疏影(구리평야만소영)-구리 평야엔 희미한 그림자 가득하고
殘波斯菊飄心香(잔파사국표심향)-남은 코스모스가 심향 나부끼네.
身上老衰仍傷恐(신상노쇠잉상공)-몸이 노쇠하니 다칠까 두려워...
老去所依唯與郞(노거소의유여랑)-늙어 가면서 의지 할 곳은 오직 남편과 함께
하는 것 뿐
오복님(吳福任)
늙어 의지 할 곳은 오직 남편과 지팡이 뿐 !
위의 한시는 경희대학교 오복님(吳福任) 교수가 쓴 것이다.
부군(夫君)과 같이 해넘어가는 구리평야(九里平野)를 걷는 모습이 눈에 선 하다.
잘 넘어지셔서 걷는 고생이 염려되었는데 가을 구리평야를 가셨을 정도니 다행이다.
× × × × × ×
일흔세 살 남편은 25년 전 교통사고로 뇌를 다쳐 치매에 걸렸다.
부모 자식도 기억 못 하지만 딱 한 사람 아내만은 알아본다.
불편한 대로 걷기도 하고 밥 먹고 책도 볼때가 있다.
일흔두 살 아내가 하루도 빠짐없이 간병 일지를 쓰며 지성으로 수발한 덕분이다.
남편은 아내가 장 보러 간 사이 걸레로 마루를 닦기도 하고 세탁기도 돌린다.
아내 고생을 덜어주려는 마음에서다.
부부는 어디를 갈 때는 늘 손을 꼭 붙잡고 다닌다.
의사는 “기적 같은 일”이라면서도 “병이 나아진 건 아니다”고 했다.
아내는 말한다.
“남편의 기억이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다 해도 행복하게 살아갈 용기가 있습니다”
위의 이야기는 2013년 10월 2일 TV조선 다큐 프로그램 “코리아 헌터”에서 본
제주도 서귀포 노(老)부부 이야기인데 당시 내 처지와 비슷하고 감명깊어
메모를 하여 둔 것이다.
“부부 사랑은 주름살 속에 산다”는 말이 있다.
좋든 싫든 때로는 티격태격하면서도 서로 기대며 살아가는 동안 서로 닮아가고
모질게 정(情)이 쌓여 간다.
올해 아흔인 김종길 시인은
늙은 부부를 낡은그릇 한 쌍에 비유했다.
“오십 년 넘도록 하루같이 붙어 다니느라 때 묻고 이가 빠졌을망정
늘 함께 있어야만 제격인 사발과 대접“이라고 했다.
필자는 전에 말하기를 “내가 먼저 아내의 무릎을 베고 죽기를 원한다”고 했는데
내 처지를 아는 사람은 “농월이 죽고나면 병든 아내는 누가 돌보고” 라고 하였다.
정말 아내가 자기만 편하려고 홀로남은 내 생각은 아니하고 매정하게 먼저 갔다.
신문 통계에는 보편적으로 남자들 명이 짧아 부부가 해로(偕老)하기가 쉽지 않다고
하였다.
내 생각에는 남자가 먼저 죽는 것이 행복한 일이다.
조물주의 정해진 스팩인데 아내가 먼저 죽는 것은 역리(逆理)라고 나는 주장한다.
마트에 가면 음식도 편리하게 많고 생활 전반이 혼자살기 편리하게 된 세상이라 하지만
홀로된 여자는 살기 쉬워도
혼자된 남자는 살기 어렵다.
우리 속담에 “효자도 악처만 못하다”고 했다.
“곯아도 젓국이 좋고 늙어도 영감이 좋다”는 속담도 있다.
신숙주(申叔舟)는 늙음을 한탄하기를
前年一齒落(전년일치락)-작년에는 이 한 개 빠지더니
今年一髮白(금년일발백)-금년에는 머리털 하나가 세었다.
固知老不免(고지로불면)-진실로 늙는 것은 면치 못할 줄 알지마는
奈此便相迫(내차편상박)-이렇게 서로 늙음을 재촉할 줄이야
신문에는 황혼(黃昏) 이혼(離婚) 기사가 가끔 눈에 띄지만
그것은 일부 사람 나름이고
좋네 싫네 하여도 늙어 의지 할 곳은 오직 남편과 아내뿐이며
지팡이 그리고 효자손이 그 다음이다.
아내 잃은 슬픔
往者不再作(왕자부재작)-가버린 사람은 다시 오지 못하고
存者日以老(존자일이노)-남은 사람도 날마다 늙어만 가네.
試看北邙山(시간북망산)-북망산을 바라보니 오래된 무덤들은
古塚牛羊道(고총우양도)-소와 양이 다니는 길이 되었네.
白楊何蕭蕭(백양하소소)-백양나무는 어찌 그리 쓸쓸하며
枯骨纏宿草(고골전숙초)-마른 뼈다귀에는 묵은 풀이 얽혔네.
貴賤同歸土(귀천동귀토)-귀하거나 천하거나 함께 흙으로 돌아가니
誰殤與誰考(수상여수고)-누가 일찍 죽고 누가 오래 살았나.
亦復觀吾生(역복관오생)-내 인생을 다시 돌아다보니
朱顔不長好(주안부장호)-혈색 좋은 얼굴이 오래 가지 않았네.
何處有三山(하처유삼산)-삼신산은 어디쯤 있는지
雲濤渺浩浩(운도묘호호)-구름과 물결만 아득해 보이지도 않구나.
悲傷可柰何(비상가내하)-슬퍼하고 마음 아파한들 어찌할 건가,
行樂須當早(행락수당조)-젊었을 때 마땅히 맘껏 즐기세.
육가잡영(六家雜詠)
농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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