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의 왕과 왕비
불가에서 일컫는 말 가운데 윤회생사(輪廻生死)가 있다. 사람의 살고 죽음이 모두 영혼의 윤회전생(輪廻轉生)도 있다. 중생이 사집(邪執)과 유견(諭見)과 번뇌와 업 등으로 인해 삼계육도(三界六道)에 죽어서는 다시 나고 또다시 죽으며 생사를 끝없이 반복한다는 뜻이다.
나는 앞의 경우에 대해서는 이의가 없으나 뒤의 견해에 대해서는 뜻을 달리한다는 글을 발표한 적이 있다. 그 글의 요점은, 사람은 다시 태어나도 사람일 뿐 전생의 업에 따라 축생(사람이 기르는 짐승) 등으로 환생하는 것은 아니라는 내용이었다. 그것은 내가 체험한 수많은 ‘영혼 여행’을 통해 얻은 결론임을 아울러 밝혔다.
나는 어느 노부인의 청에 따라 구명시식을 집례한 적이 있었다. 그 영혼 여행을 통해 다시 한 번 인간의 환생 법칙에는 일정한 기준과 인간은 역시 인간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평소소신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날의 주인공이었다 노부인의 칠생(七生)을 탐색한 후에 내린 결론이기도 하다.
노부인의 나이는 65세. 한 여성으로서 그분은 세상적으로 볼 때 복을 많이 타고난 편이었다. 세상적이라는 표현은 객관적 기준에 따른다는 것을 뜻한다.
남이 보기에 경제적으로 넉넉할 뿐만 아니라, 가정적으로도 성공한 남편과 잘 성장한 자식들을 둔 기품을 갖춘 한 집안의 안주인이었다. 그 누구도 그분을 불행하다고 여기지 않을 만큼 모든 것을 갖추고 있었다. 혹시 그녀가 “나는 불행해.”라는 말이라도 하려고 하면 복에 겨워서 그렇다고 들은 체도 하지 않을 만큼 모범적인 인생을 산 분이었다.
그러나 정작본인은 행복하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고 나에게 고백하는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은 늙어갈수록 골수에 사무치기까지 했다고 한다.
노부인은 경남 양산에서 첫손가락에 꼽히는 부잣집 맏딸로 태어났다. 그녀의 할아버지는 일찍이 명의로 소문이 나 전국각지에서 사람들이 찾아오곤 했다. 그녀가 자란 99칸짜리 기와집에는 늘 사람들로 붐볐다.
맏딸인 그녀는 풍족한 환경 속에서 귀여움을 독차지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지방의 명문 K여고를 다니던 시절에 그녀의 집에 놀러 온 친구들도 놀랄 정도로 그녀는 행복한 집안에서 부러움을 모르고 성장했다.
어느새 그녀에게도 혼기가 다가왔다. 내노라 하는 집안에서 매파를 통해 의사를 물어왔다. 그렇게 해서 본 선만 해도 스물네 번이 넘을 정도였다.
그러던 어느 날 밤 꿈속에서였다. 누군가가 선을 보러 왔다는 것이었다. 그 사람은 키는 작았지만 당시로서는 보기 드문 하이칼라인 신식 청년이었다. 비록 꿈속이긴 해도 모습이 또렷했다. 본능적으로 그녀는 부끄러움을 탔다. 그런데 청년이 선을 보고자 하는 사람은 그녀가 아니라 고모라는 게 아닌가. 그녀에게는 나이 어린 고모가 있었다. 꿈속이었지만 그녀는 아무리 고모라고 해도 자신이 더 나이가 많은데 무슨 소리인가 하고 서운함을 느끼기까지 했다.
그녀는 또 하나의 이상한 광경을 보게 되었는데, 바로 청년이 서 있는 배경에는 왕릉과 같은 크나큰 고분과 연못이 펼쳐져 있었다.
이상한 꿈을 꾼 그날 아침, 아저씨뻘 되는 먼 친척이 찾아왔다. 경주에 산다는 신랑감을 중매하기 위해 온 것이다. 신랑감이라는 사람이 서울대학에 다니며 아들이 많은 부잣집 장남이라고 했다. 경주라는 말에 그녀는 문득 지난밤 꿈속에서 본 신라 고분이 떠올랐다.
그러고 나서 며칠이 지난 아침이었다. 할아버지가 그녀를 찾았다. 영문도 모른 채 불려 간 그녀에게 할아버지가 느닷없이 말씀하셨다.
“너, 오늘 개울에 나가 빨래를 하거라.”
그녀의 집 앞에는 통도사에서 흘러내리는 개울이 있었다.
어안이 벙벙해진 그녀를 향해 할아버지의 엄명은 계속 떨어졌다.
“너 혼자만 가거라. 그리고 북청색 유똥 치마에 양단 저고리를 입고 가거라.”
그날은 몹시 추운 날이었다. 하필이면 춥디추운 날 해보지도 않던 빨래를 하라는 할아버지의 말씀이 처음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무슨무슨 옷을 입고 가라는 말이 의미하는 것을 알아차렸다. 할아버지의 분부는 그 시절의 양반집에서 과년한 처녀들을 선보이는 풍습이었던 것이다.
그녀는 자존심도 상하고 내키지도 않았지만 할아버지의 말씀을 거역할 수 업어서 개울가에 나가 빨래를 했다. 그러자 인기척이 났다. 그녀는 멀찌감치 서 있는 남자를 곁눈으로 훔쳐보았다. 순간, 그녀는 전율을 느꼈다. 꿈속에서 본 그 사람이 거기에 서 있는 게 아닌가! 틀림없이 하이칼라 그 사람이었다.
그날은 먼발치에서 서로를 확인하는 것으로 끝났다. 그녀로서는 첫눈에 드는 남자였지만 그렇게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
또 며칠이 지난 뒤, 할아버지가 그녀를 불렀다. 그녀는 속마음으로 하이칼라와의 혼사를 매듭짓기 위해 부른 줄로 생각했다. 할아버지는 하이칼라 이야기를 비치지도 않고 엉뚱하게도 울산에 산다는 신랑감에게 시집을 가라고 했다.
늘 고분고분하던 그녀였지만 결혼만은 마음에 드는 사람과 하고 싶었다. 그녀는 경주의 하이칼라와 결혼하겠다고 당당히 말했다. 예상대로 집안의 반대가 있었다. 그녀는 물러서지 않았다. 마침내 그와의 결혼을 계속 고집하면 한푼도 보내 주지 않겠노라고 할아버지가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그래도 끝까지 뜻을 굽히지 않은 그녀는 결국 하이칼라와 혼인을 하게 되었다. 할아버지는 선언한 대로 그녀 몫의 재산을 주지 않고 간단한 세간 살림만 딸려 손녀딸을 보냈다. 그래도 그녀는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하게 되었다는 기쁨에 들떠 한없이 즐거웠다.
우여곡절을 겪고 경주에 있는 신랑집에 온 그녀는 또 한 번 놀랐다. 시집은 천마총(天馬冢), 즉 대릉원이라는 신라의 고분이 모여 있는 곳 가까이에 자리잡은 600여 평의 집이었다. 꿈속에서 보았던 그 고분이었다. 지금은 비록 연못으로 변하고 집도 없어졌지만 틀림없는 그 집이었다. 가슴속에 벅차 오르는 그 무엇이 그녀를 억눌렀다.
그녀가 시집살이를 할 때쯤, 고분은 시동생들과 동네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어 있었다. 훼손되어 가는 고분을 바라보는 그녀의 마음 한구석에서 할 수 없는 서러움이 복받쳐 오르곤했다. 특히 달빛이 교교한 밤에 천마총을 바라보노라면 저며오는 서러움에 그녀는 남몰래 눈물을 훔치곤 했다.
그 무렵, 남편의 집안은 가세가 기울어져 있었다. 그녀의 집안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몰락해 갔다. 그녀는 남편을 따라 서울로 이사를 했다.
결혼 생활이 해를 거듭할수록 그녀의 가슴속에 왠지 모르게 남편에 대한 불만이 자라고 있었다. 남편을 그토록 존경하고 사랑하건만, 남편의 그녀를 사랑하지 않고 늘 냉정하게 대한다는 생각이 뿌리깊게 박혔다.
남편의 태도에 대해 그녀는 여러 모로 생각해 보았다. 남편은 최고 학부를 나온 하이칼라로서의 자존심이 유난히 강했다. 그런데 남편의 집안은 몰락해 형편없다. 더군다나 아내의 집안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기울어졌다. 그 사실은 자존심이 강한 남편에게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었을 것이다. 그러저러한 것들이 아내에 대한 무관심과 냉정함으로 나타난다고 그녀는 나름대로 분석했다.
그렇다고 해서 남편에 대한 연모의 정이 식는 것도 아니었다. 애타게 남편을 사랑하는 그녀의 마음은 뜨겁기 그지없었다. 그럴수록 이루어지지 않는 짝사랑의 안타까움과도 같은 감정의 골이 비례해서 깊어만 갔다.
그러면 그녀의 시집 근처에 자리해서 늘 그녀를 안타깝게 했던 천마총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왜 그녀는 천마총을 볼 때마다 알 수 없는 서러움에 눈물을 훔쳐야 했을까.
천마총은 경주 황남동 고분군 일대를 정비하면서 대릉원(大陵苑)이라고 이름 지은 고분 공원 안 서북쪽에 자리잡은 고분이다. 원래는 경주 155호분이라 했던 것이다.
이 고분의 주인공이 신라 제21대 소지마립간 또는 제22대 지중마립간이라는 설이 있을 뿐, 누구의 무덤인지는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고분 안에서 천마를 그린 장니(말다래)와 금관을 비롯한 많은 유물이 출토되어 천마총이라 불리게 되었을 따름이다.
그런데 내가 영혼 탐색을 한 결과 놀라운 사실이 발견되었다. 그녀의 전생에 대한 비밀이 밝혀졌기 때문이었다. 천마총의 주인공은 그녀의 남편과 그녀였다. 그들은 전생에 왕과 왕비였던 것이다.
아무튼 그녀의 결혼 생활은 남이 보는 겉모습과 달랐다. 남편은 국책 은행의 임원으로서 이른바 성공한 사람이었지만 그녀에게 무심하기 짝이 없었다. 전형적인 경상도 사나이로, 부부간의 대화도 “니 밥 묵었나? 자자.” 정도가 전부라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한편, 그녀의 자식들도 뜻대로 되지 않았다. 큰딸은 명문가로 출가했지만 사위와 사이가 별로 안 좋았다. 큰아들은 집안에서 반대하는 결혼을 굳이 하더니 사업에 실패해서 부모의 속을 썩이고 있었다. 막내딸은 모 은행에 다니고 있었는데 나이가 서른세 살이나 되어 역시 걱정거리였다.
그런 상황에서 남편과 무관심과 냉정함까지 겹쳐 그녀를 절망으로 몰고 갔다. 영원한 평행선, 그녀가 남편과의 관계를 표현하는 말이다. 남편은 그렇게 그녀를 옭매고 있었다.
오죽했으면 자신의 전생이 무엇이었기에 이렇게 살아야 하느냐는 하소연을 하러 나를 찾았겠는가. 그런 그녀에게는 구명시식을 할 돈마저도 없었다. 그만큼 남편이 그녀에게 무관심했던 것이다.
그녀는 남편에게 내색 한 번 한 적이 없었다.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남몰래 혼자서 속을 썩였을 뿐, 겉으로는 언제나 평안함을 가장하고 있었다.
이런 사연으로 시작된 영혼 탐방에서 나는 그녀와 그녀의 남편이 천 년을 두고 반복되 윤회 법칙 속의 주인공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만인 지상의 군주로서의 남편과 지고한 자세는 비록 지금은 이승의 필부에 지나지 않지만 아무도 모르는 전생의 기품이 나타나, 아녀자의 눈에 냉정함으로 비쳐졌던 것이리라. 그녀 역시 예순다섯의 늙은 여인이었지만, 부드러우면서도 품위를 잃지 않는 도도함이 전생의 존귀함을 자아내고 있었다. 사랑하면서도 말로 표현하지 않고 괴로워도 표정으로 드러내지 않는 왕과 왕비의 절도가 그들의 결혼 생활을 ‘행복하지 못하게’ 한 비밀이었다. 서로의 마음의 문을 안으로 걸어 잠그고 있었던 것이다.
드디어 그녀는 마음의 빗장을 풀어놓았다. 평화를 구한 것이다. 나와의 만남 뒤에 가정에도 평화가 깃들이기 시작했다. 큰딸의 결혼 생활이 극적으로 정상으로 돌아왔고, 아들네도 평안을 유지했다. 막내딸도 좋은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천마총이 파헤쳐진 1973년 그때를 그녀는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그 무렵의 어느 날 밤에 꿈을 꾸었지요. 꿈속에서 우리집이 도둑을 맞는 게 보였어요. 마치 내몸에서 뭔가 날아가는 느낌을 받았지요.”
그리고 이튿날, 금관을 비롯한 많은 소장품이 발굴되었다는 보도가 도하 각 신문에 대서 특필되었다고 한다.
고분이 있던 자리에 공원이 조성되면서 시댁에 있던 자리는 연못으로 변했다. 그때의 서운함을 그녀는 지금까지 가슴에 간직하고 있다.
그녀는 소박하지만 꼭 이루고 싶은 소망이 있다. 경주가 문화 도시로서 제몫을 다하는 데 기여할 수 있는 작은 예술하교를 세웠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리고 그녀 자신과 남편의 전생의 유택(무덤)이었던 고분이 예전대로 복원되기를 기원하고 있다. 경주가 21세기를 꽃피우는 도시가 되기를 그녀는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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