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보지 않은 곳에 / 안희선
문득, 내가 가보지 않은 곳에 가고 싶었다
미처 수습하지 못했던 삶의 잔해가 휑하니 널브러진 곳에 내가 애써 외면했던 아픈 시간들이 차라리 착한 꿈이 되어, 안개 같은 인간의 숲에서 배회하고 있었다
먼 하늘에서 살며시 내려 온 태양도 대지를 포옹하며, 골고루 구석 구석에 눈물어린 따스한 온기를 나누어 주고 있었다
이곳에서 불안한 건 오직, 나밖에 없었다
언제나 나보다 한 발 앞서 달아나는 내 마음은 여전했다 꿈꾸던 아름다운 삶이 늘 그렇게, 나를 지나쳐 앞서 달려간 것처럼
생각하면, 아무 것도 아닌 나
원래 잃을 것도 없건만, 왜 항상 잃고 살아왔다고 느껴졌던지
그렇게 홀현(忽顯)한 구름처럼 걷다 보니, 더 이상 갈 수 없는 곳에서 이윽고 나도 없어지고 저 멀리 보이는 하얀 산 위로 창망(蒼茫)한 허공만 푸르게 빛난다
하늘에 이르는 길이 더 이상, 지상(地上)의 길이 아닌 곳에서 내 앞에 소리 없이 열린다
누군가 오래 전 부터 마음 한 자리 비워둔 곳에 비로소 즐거운 숨을 쉬기 시작하는, 야릇한 영혼 하나가 하늘에서 동아줄을 타고 내려온다
그와 인사를 해야 할지, 망설여진다
하지만, 나는 이곳에서 이미 내가 없어진 것도 모르고
Free as a bi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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