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심(一心)이 곧 만상(萬像)이요, 만상이 곧 일심이니라.
이것이 가깝지도 아니하고 멀지도 아니하며,
지극히 얕고 지극히 깊어서 건곤(乾坤)으로 더불어 같이 덮이고 실렸으며,
일월(日月)로 더불어 같이 비추었으니,
달빛을 배에 실음이여, 배마다 다 달빛이요,
금으로 그릇을 만들었으니, 그릇마다 다 금이요,
밝고 조촐함은 산호의 가지와 같고,
그 향기는 담복(薝蔔)의 수풀과 같도다.
대용(大用)의 자재(自在)함은 전륜성왕(轉輪聖王)의 상투 속 보배를 획득하였고,
바른 소리가 화합함은 사자의 힘줄로 만든 거문고를 연주하는 것과 같음이로다.
터럭만치도 원융 무애(圓融無碍)를 유실(遺失)하지 아니하였거니, 형상을 비추는 거울이요,
형상의 껍질이 허공에 걸리지 아니하니, 이 또한 담장을 넘어가는 소리로다.
능히 이와 같음에 그 묘함이 아득한 옛과 지금을 초월하여 여여함을 요달하였도다.
대중은 또한 일러라!
이제 요달한 것이 이 무슨 일인고? 도리어 알겠느냐?
평온함이 대지와 같아서 능히 이 물건은
확연한 허공과 같이 바늘 끝만치라도 걸리지 아니함이로다.』
『좌선하는 법은 별달리 긴요한 법칙에 있는 것 아님이니,
일체 망상이 고요함이 곧 좌(坐)요,
화두의 의심이 성성(惺惺)함이 곧 선(禪)이라,
성성함과 적적함을 같이 가지면,
하루 해가 가기 전에 참선하는 일을 성취하리라.
성성함과 적적함은 그만 두고 어찌 하려는고?』
양구하고 이르되,
보배 궁전에 무단히 살되 내 하는 것이 없으니,
4해와 5호가 법왕의 화(化)를 입음이로다.
주장자로 법상을 치고 법상에서 내리시다.
- 만공스님의 <나를 생각하는 자가 누구냐(비움과소통)>에서
불佛이라는 것은 마음이요, 법法이라는 것은 물질인데,
불법이라는 명상名相이 생기기 전에, 부처가 출현하기 전에,
나(大我)는 이미 존재한 것이니라.
질그릇 같은 나(個我)를 버리면
7보寶의 그릇인 법신法身을 얻나니라. / 만공스님
비발디 ~ Rv 356 프레스토(3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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