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라만상

[스크랩] 세 가지 만트라

황령산산지기 2016. 9. 4. 10:41

(만트라 : 신비한 힘을 가졌다고 여기는 단어나 문장을
반복해서 외는 것으로, 동양의 오랜 전통을 가진 수행법의 하나)

 

산모퉁이를 돌자 만년설을 뒤집어쓴 히말라야가 아이맥스영화처럼 펼쳐졌다. 그리고 그아래 가부좌를 틀고 앉은 요기(요가 수행자)를 발견했다.

지그시 감은 눈, 얼굴엔 평화로운 미소
두 손은 허공중에 무드라(깨달음의 형상)를 그리며 있었다.

신비 그 자체였고
그 동안 내가 찾아헤메던 완벽한 스승의 상이었다.

 

단숨에 그에게로 가 제자로 받아드려달라고
그의 발에 이마를 갖다대며 존경의 표를했다.

요기는 천천히 눈을 떴다.
그 눈은 내 영혼을 빨아들이는듯 강렬했다.

" 당신은 내가 받아들일만큼 완벽한 제자인가?
나는 완벽한 제자가 아니면 받아들이지 않는다."

 

...... 머릿속에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아 즉흥적으로

"성자님처럼 저도 긴머리를 가지고있읍니다.
주위의 눈총을 이겨가며 끈질기게 머리를 길렀읍니다.
절 받아만 주신다면
완벽한 제자라는 걸 증명해 보이겠읍니다."

그렇게 얼토당토않은 대답으로 난 그 요기의 제자가 되었다.

 

요기는 야크털 담요와 토기로 된 물항아리가 전재산으로
북인도 쿤자푸리산 동굴에서 살고있었다.

나의 첫 수행임무는 아침마다 한시간거리가 넘는 골짜기로 가
물을 길러오는 것이었다.
길이 가파르고 험해서 자칫 잘못하면 깨기 십상이였다.

 

항아리가 없으면 큰일이다.
물은 성자보다 내가 더 절실히 필요한 것이므로...


 

그런데 참으로 이해가 안되는 일이 생겼다.

그토록 평화롭고 고요해보이던 요기가
내가 입문한 이후론 더 이상 명상의 자세로 앉지도 않고
미친듯이 이산저산을 쏘다니다가 느닷없이
내게 필요없는 밭을 갈라하는가 하면
땔감으로 쓸 소똥을 주워오게 하며 날 인정사정없이 부려먹었다.
나는 고된 노동으로 입술까지 부르텃다.

 

열흘이 지나서 요기는 내게 내가 혼자 거처할 움막을 지으라고 했다.

전날 책에서 제자에게 움막을 짓게하는 수행을 시키는 게
전통이란 걸 읽은 적이 있어
두말없이 집을 짓기 시작했다.


 

생전 처음 짓는 집이지만 생각보다는 짓기 쉬웠다.
주위에 돌이 많아 넙적한 돌들을 쌓아 집을 지었다.
그럴듯한 집의 모양이 보였다.

너무 열심으로 일한 탓에 땀은 비오듯했고 갈증이 나서
아침에 길러온 물을 나 혼자 모두 마셔버렸다.

 

집이 거의 완성될 쯤엔 태양에 몸의 수분이 모두 증발해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항아리를 들고 골짜기로 내려갔다.

 

아뿔싸!
물을 길러와보니 기막힌 일이 벌어졌다.
내가 힘들여 종일 지은 집이 사방에 흩어져있었다.
분명히 요기가 한 짓이라고 단정했다.

날 골탕먹이려고 한 짓을 생각하니 너무나도 화가났다.
하지만 스승인데 증거도 없이 다그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스승께는 절대복종해야 한다고 하질 않는가?

 

언제 나타났는지 요기는 시치미를 뚝 떼고
집을 짓지 아니했다고 내게 호통을 쳤다.
억지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하지만 내일 다시 짓겠다고 말했다.


 

다음 날도 똑 같은 일이 벌어졌다.
요기는 내게 집을 어서 지으라고 말하고는
집이 완성되면 "세가지 만트라"를 전수하겠노라 했다.

 


나는 한번도 만트라를 경험한 적이 없는 터라
서둘러서 물을 길러오고 돌을 날라다 집을 지었다
전날의 경험이 있어 훨씬 속도가 빨랐다.

전날처럼 그런 일을 당할까봐
갈증이 나도 물을 아껴 마셨다.
드디어 집을 완성했다!

 

뿌듯한 마음으로 집을 바라보고 있는데
머리칼을 허리까지 늘어뜨린 실성한 듯한 요기가 와서는
만트라를 전수하겠다며 산위로 올라가자고 했다.

나는 기대에 차서 그를 따랐다.
과연 산위엔 널다란 바위가 있었다.
바위에서 바라본 광경은 이틀 동안의 힘든 노동을 잊게 할만큼
아름다웠다.


" 그대는 이곳에 앉아 잠시 명상에 들라 .
반시간 동안
그대의 몸과 마음을 정화시킨다음 그대에게 만트라를 전해주리라" 이렇게 말하고는 요기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나는 정성을 다해 가부좌를 틀고 앉아 단전호흡을 시작했다.
그러나
약속한 반시간~
한시간이 지나도 요기는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미심쩍은 생각이 들어 서둘러 움막을 지은 곳으로 내려왔다.아니나 다를까
내가 그토록 힘들여 지은 움막은 간곳이 없고
돌들만 소똥처럼 굴러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지붕을 얹었던 나뭇가지는 한쪽에서 모두 불타버린 뒤였다.

 

한참 뒤 나타난 요기는
예상대로 오히려 더 큰소리였다.

1년 중 하루밖에 없는 길일이 오늘인데
나의 부족한 인내심 때문에 만트라전수를 망쳤다는 것이다.

 

그날 밤.

동굴 밖의 나의 요람은 더욱 추웠고
요기의 코고는 소리는 전날보다 더 크게 들렸다.
생각할수록 괘씸한 요기였다.

내 머릿속엔 깨달음이고 뭐고 어떻게 하면 복수할까?
하는
생각 뿐이었다.

완벽한 스승이란 허구에 불과했다는 생각에 이르자
더 이상 여기 있는 건 시간낭비였다.

 

이튿날 아침
요기는 벌써 어디론가 가버렸고

무려 열이틀 동안 생고생한 게 억울해서 마침 눈에 띄는 물항아리를
납작바위에다 내동댕이쳐 깨버리곤
요기가 이꼴을 보면 무언가 깨닫는 바가 있을 거라 여겼다.

 

서둘러 그곳을 떠나려 버스 정류장에 왔다.

그런데
출발하기 직전!
실성한 사람같은 그 요기가
먼데서부터 걸어오는 게 보였다.

분명
항아리 때문에 날 잡으러 온 것이었다.
도망치고 싶었지만 달리 숨을 곳이 없었다.

 

그는 차창너머로 내게 만트라를 전수하겠다며
손을 뻗어 머리에 얹은 채.
세 개의 만트라를 내게 전했다.

 

"그대에게 세 가지 만트라를 전수시켜주기 위해서 왔다.
이 세 가지 만트라를 기억한다면
그대는 다른 누구도 스승으로 섬길 필요가 없다.
그대의 가장 완벽한 스승은 그대 자신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첫째 만트라는 이것이다.
너 자신에게 정직하라.
세상 모든 사람과 타협할지라도 너 자신과 타협하지는 말라.
그러면 누구도 그대를 지배하지 못할 것이다.



둘째 만트라는 이것이다.
기쁜 일이나 슬픈 일이 찾아오면 그것들 또한 머지 않아 사라질 것임을 명심하라.
어떤 것도 영원하지 않음을 기억하라.
그러면 어떤 일이 일어난다 해도 넌 마음의 평화를 잃지 않을 것이다.



셋째 만트라는 이것이다.
누가 너에게 도움을 청하러 오거든 신이 도와줄 것이라고 말하지 말라.
마치 신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네가 나서서 도우라."



 

말을 마치자 요기는 옴~~~~~하고 진동을 보냈다.


 
그 순간!

척추 끝으로부터 온몸을 마비시킬 것 같은 진동이
축복과 환희의 물결로 내 안으로 들어왔다.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미치광이로 알았던 그가 더없이 훌륭한 스승이었던 것이다.

버스는 그를 놓아두고 떠나고
나는 항아리를 깨뜨려 미안하다는 말도 못 전하고 말았다.

 

 

-유시화의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 중에서-

 

 

출처 : 송운도가 (松雲道家)
글쓴이 : notouch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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