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더 가야 그리움이 보일까 / 김재진
문이 닫히고 차가 떠나고
먼지 속에 남겨진 채 지나온 길 생각하며
얼마나 더 가야 그리움이 보일까.
얼마나 더 가야 험한 세상
아프지 않고 외롭지 않고
건너갈 수 있을까.
아득한 대지 위로 풀들이 돋고
산 아래 먼길이 꿈길인 듯 떠오를 때
텅 비어 홀가분한 주머니에 손 찌른 채
얼마나 더 걸어야 산 하나를 넘을까.
이름만 불러도 눈시울 젖는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나는
얼마나 더 가야 네 따뜻한
가슴에 가 안길까.
마음이 마음을 만져 웃음 짓게 하는
눈길이 눈길을 만져 화사하게 하는
얼마나 더 가야 그런 세상
만날 수가 있을까.
못 / 김재진
당신이 내 안에 못 하나 박고 간 뒤
오랫동안 그 못 뺄 수 없었습니다.
덧나는 상처가 두려워서가 아니라
아무것도 당신이 남겨놓지 않았기에
말 없는 못 하나도 소중해서 입니다.
사랑에 대해 생각한다/ 김재진
나 몰래 집 나간
내 마음 돌아오지 않고
남의 마음만 바람불어 심란한 날
길 위에 앉아 길 끝을 본다.
이제 그만 돌아가야지.
원래의 그 자리,
너 없던 그 평온하던 자리로 돌아가야지.
나의 전쟁은
내 마음속으로
네가 들어온 순간부터 시작되었다.
너에게 쫓겨난 내 마음
집 나가고 돌아오지 않는다.
불에 덴 사람이 불에 놀라듯
네 이름 석 자에도 놀라는 나.
사랑에 대해 생각하지만 아무도
사랑에 대해 말하지 않는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다.
마지막 편지 / 김재진
최선을 다해 당신을 사랑했습니다.
더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내게 놓여진 시간 앞에 나는 다만
정직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다시 당신을 사랑할 기회가 생긴다 해도
사랑하지 않겠습니다.
최선을 다한다는 건 한 번뿐
더 이상의 사랑은 내게
무의미한 반복입니다
'Arleta Pech'작품
사랑의 이유 / 김재진
당신이 꼭
아름답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것으로부터 당신이
완전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도 아닙니다.
어쩌면 당신은 장점보다
결점이 두드러지는 사람입니다.
그렇다고 당신의 결점까지
사랑한다는 말을 하려는 건 아닙니다.
세상의 많은 연인들이 그러하듯
어쩌다 보니 당신을 사랑하게 된 건지도 모릅니다.
때로는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 이야기하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쉽게 당신을 사랑한다 말하는 이유는
멀리 있지 않습니다.
나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누구보다 나 스스로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을 향한 그 사랑은 결국 나를 위한 것입니다.
당신이 없으면 힘들던 마음 역시
내가 아팠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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