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세계
글쓴이 개리 래취맨(Gary Lachman)
옮긴이 박윤정
스웨덴보르그의 영적 체험을 통한 [천국과 지옥]의 실체를 밝히는 이 글은 미국의 뉴에이지 저널인 《그노시스 Gnosis》 1995년 여름호에 실린 것을 본지와의 제휴로 실은 것입니다. 엠마뉴엘 스웨덴보르그의 이 글을 두 번에 걸쳐 나눠 싣습니다. 다음 호에는 그의 지옥에 대한 견해와 천국과 지옥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깨달음에 관한 글이 이어지게 됩니다. 글을 쓴 게리 레취맨은 여러 정신세계 잡지에 기고하고 있으며, 영국 록그룹 [블론디Blondie’의 작곡가로도 활동한 바 있습니다.
이 신비로운 스웨덴의 영성가는 자신의 파란만장한 영혼의 여행을 통해 우리를 빛으로 휘감을 진정한 사랑의 거처 '천국과 지옥'을 목격했다.
관습적인 시각으로 볼 때 일상의 세계가 유일한 세계는 아니라는 생각은 공상적인 기이한 생각에 불과하다. 그래서인지 오감을 통해 인식하는 것이 실재(Reality)의 전부라는 물질주의적인 시각이 보편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이런식의 이해가 자리잡은 건 근래의 일이다. 고대의 인류와 문화는 결코 보고 듣고 만지고 맛보고 냄새 맡을 수 있는 것들이 실재의 전부라고는 생각지 않았던 것이다. 사실 그들은 물질계를 확신하듯 보이지 않는 영적인 세계의 실재에 대해서도 확신을 갖고 있었다. 일례로 중세인들에게 있어 영적인 세계는 나무나 집의 존재처럼 아주 분명히 실제하는 것이었다. 물질계는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며 물질계 너머의 세계에 인간의 영원한 운명이 놓여 있다는 종교적 가르침이 이처럼 영적인 세계의 실재를 더욱 확실하게 믿도록 만든 것 같다.
미지의 저 세상에 대한 정직한 안내자 스웨덴보르그
오감을 통해 인식한 것이 실재의 전부라는 견해가 지난 수 세기 동안 우리의 문화를 지배해왔다. 하지만 그 한편에선 언제나 또 다른 세계의 실재를 인정하는 사상의 조류가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최근 들어서는 이 두 가지 개념들이 흥미로운 변증법적 상호 작용에 들어섰다.
신경과학자들은 인간 정신의 신체적인 기반으로 추정되는 것에 천착하는 반면, 대중문화에선 그 어느 때보다도 광범위한 스케일로 또 다른 세계를 포용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이런 와중에서 ‘영혼의 시장’엔 채널러와 물리학자, 신비주의자, 온갖 분야의 선지자들이 몰려들고 있다. 이들 중엔 물론 진실로 유익한 지혜를 설파하는 경우도 있지만, 다소 미심쩍은 가르침들을 이용해 이득을 챙기는 경우도 있다.
소설 『천국과 지옥(Heaven and Hell)』에서 올더스 헉슬리는 이렇게 쓰고 있다. [백년 전의 지구처럼, 우리의 내면엔 아직도 미지의 아프리카 대륙과 인적미답의 보르네오 섬, 아마존 습지 같은 곳들이 존재한다.] 또 다른 세계로의 이끌림과 함께 이 세계에 대한 탐구의 어려움을 토로한 대목이다. 미지의 영역에서는 길을 잃기 쉬우며, 어느 정도의 사전 지식이 없을 경우엔 그곳을 다녀왔다는 사람의 주장도 쉽게 판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타인들의 기묘한 이야기에 푹 빠져들어 확고하게 그것을 받아들일 수도 있다. 그 이야기의 진위여부를 밝힐 방법이 전혀 없는 경우에도 말이다. 하지만 진실로 현명한 방법은 역시 믿을 만한 안내자를 찾는 데에 있을 것이다.
두 세계의 장벽을 뚫어버린 놀라운 염력
근대에서 다른 세계에 대한 가장 체계적이고도 일관된 안내자의 한 명으로 스웨덴의 선지적 철학자인 임마뉴엘 스웨덴보르그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천국과 지옥에 대한 그의 책을 논하면서 올더스 헉슬리가 스웨덴보르그에게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는 사실을 미심쩍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천국과 지옥』은 분명 영계를 다룬 서양의 정전들 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훌륭한 안내서이다.
심각한 영적 위기를 맞이했던 1745년, 57세의 스웨덴보르그는 이를 계기로 그 이전은 물론 이후까지 누구도 필적할 수 없는 훌륭한 영계 안내서를 만들어냈다.
귀족의 칭호를 받기 전까지 스웨드베르그(Swedberg)로 불렸던 임마뉴엘 스웨덴보르그는 1688년 1월 29일 스웨덴의 스톡홀름에서 태어나, 1772년 3월 29일 런던에서 세상을 떠났다. 천사나 영혼들과의 대화를 기록하는 데에 스무 해도 넘는 세월을 바친 그는 자신의 죽음으로 이 세계와 저 세계간의 장벽을 뚫어버릴 수 있는 그의 능력을 확실하게 입증해 보였다. 지상에서의 마지막 달, 그는 영적인 세계를 통해 감리교의 창시자인 [존 웨슬리]가 그를 만나고 싶어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존 웨슬리 자신은 누구에게도 이런 소망을 고백한 적이 없는데도 말이다.
광범위한 설교 여행을 떠나기 며칠 전, 웨슬리는 스웨덴보르그로부터 편지를 한 통 받았다. [영적인 세계를 통해 당신이 나와 간절히 대화를 나누고 싶어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깜짝 놀란 웨슬리는 유감스럽지만 방문을 몇 달 뒤로 연기할 수밖에 없으며, 런던으로 돌아가는 길에 뵐 수 있으면 감사하겠다고 답신을 보냈다. 그러자 스웨덴보르그는 내달 29일이 되면 자신은 이 세상에 없을 것이므로 그건 불가능하다고 회답했다. 실제로 스웨덴보르그는 그가 예견한 바로 그 날, 이 생을 마감했다.
그러나 자신의 죽음에 대한 스웨덴보르그의 예언은 그의 놀라운 염력을 입증해주는 하나의 예에 불과하다. 그의 생애를 다룬 책들을 보면 그의 이런 능력에 대한 기록들이 무수하게 실려 있으며, 그 자체로도 충분히 놀라운 일들이다. 그래서일까? 영계에 대한 그의 저작물들은 괴테나 윌리엄 블레이크, 헨리 제임스, 사뮤엘 테일러 코울리지, 오노레 드 발자크,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어거스트 스트린드베리 같은 주목할 만한 인물들에게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뿐만 아니라 랄프 왈도 에머슨 같은 경우는 그를 일컬어 [평범한 학자들로서는 도저히 평가할 수 없는 문학의 거성]이라고까지 했고, 자기 나름의 색다른 방식으로 이미 보이지 않는 세계에 거주하고 있던 헬렌 켈러 같은 경우는 스웨덴보르그의 가르침들을 담은 그녀의 점자식 책들 속에 영적인 세계의 비밀들을 가득 채워 넣었다. 하지만 이들이 스웨덴 보르그에게서 이토록 엄청난 영향을 받은 것은 결코 그의 사소한 이적들(minor miracles) 때문은 아니었다.
실제적이고 체계적인 접근으로 그린 영계 지도
그렇다면 이처럼 무수한 사람들에게 스웨덴보르그가 엄청난 호소력을 가질 수 있었던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그 근본적인 이유는 그가 실제로 천국과 지옥을 가 보았으며 다시 돌아와 아주 세밀하게 두 세계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는 데에 있다.
하지만 스웨덴 보르그는 내면의 세계가 아닌 외면의 세계를 과학적으로 탐구하는 데에 생의 더 많은 시간을 할애 했다. 그의 학문적 열정은 그야말로 탐욕스러웠다. 덕택에 영적인 위기를 맞이할 즈음 그는 이미 야금학에서부터 두뇌 해부에 이르기까지 온갖 영역에 걸쳐 엄청난 양의 글을 쓴 저자이자 정치가, 광산의 감독원으로서 스웨덴에서 대단한 명성을 누리고 있었다. 게다가 대단한 수완가이기도 했다. 일례로 배 몇 척을 산 넘어 내륙으로 운반하는 일을 원래 일정보다 훨씬 앞당겨 완수하기도 했다.
요컨대 스웨덴보르그는 결코 모호한 신비주의자가 아니었던 것이다. 오히려 실제적이고도 체계적인 접근법으로 영계의 지도를 그려냄으로써, 천국과 지옥에 대한 자신의 기록에 논리적인 일관성을 부여했다. 이는 덜 꼼꼼했던 다른 탐구자들에게서는 찾을 수 없는 미덕이다.
윌슨 반 뒤센의 말처럼, [내면으로의 여행은 습관적으로 무시하고 간과했던 것들을 설명하는 개인의 가치와 시각을 근본적으로 확장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그러나 스웨덴보르그는 당대의 과학과 철학에 두루 정통했지만 정작 자신의 내적인 삶, 즉 감성의 세계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영적인 위기를 맞이하던 시기, 그의 가장 커다란 관심사는 인간의 두뇌 안에 있는 영혼의 자리, 당대의 신경 과학자들도 계속해서 찾고 있던 그 자리를 발견하는 것이었다. 결국엔 영혼에 대한 그의 과학적인 탐구에 가망이 없을 뿐만 아니라 영혼의 진정한 집, 인간 정신의 내적인 영역들로부터도 멀리 벗어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말았지만 말이다.
그가 『꿈일지(Journal of Dreams)』에 기록하고 있는 것처럼, 그를 이런 깨달음으로 인도한 것은 일련의 파편적인 비젼들이었다. 한창 그런 비전들에 시달리기 시작할 즈음, 꿈에 예수가 나타나 스웨덴보르그에게 [건강 증명서]를 갖고 있냐고; 전염병을 옮긴다는 오해로 죽을 뻔했던 사건을 암시하는 것; 물었다. {주여, 저보다 주께서 더 잘 알고 계십니다.} 하고 그가 대답하자, 예수께서 다시 이렇게 물었다. {그래, 그렇다면 하거라.} 스웨덴보르그는 자신이 영적인 세계를 더 깊이 파고들게 되리라는 것으로 이 꿈의 의미를 해석했다.
그 영적인 위기를 통해 스웨덴보르그는 자신의 내면을 깊이 파고들면 들수록, 영적인 세계에 더욱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는 근본적인 깨달음을 얻었다. 그 예로 『천국과 지옥』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인간은 자신의 보다 내적인 영역과 관계를 맺는 만큼 천국과 교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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