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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후기신라(통일신라)에서는 개(犬)목걸이도 황금이다 - 아랍 지리서

황령산산지기 2012. 7. 14. 09:20

 

 

[밝은 앞날 되시기를][꿈은 이루어진다][꿈은 미래의 현실이다]


백두산 천지

[ 영원히 살 것처럼 계획하고, 하루 살다 죽을 것처럼 실천하라.]

[ 이상 없는 현실은 무의미하고 현실 없는 이상은 존재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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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백제, 신라가 통일되어 후기신라(통일신라)가 되죠.

후기신라(통일신라) 때는 북쪽에 발해(후고구려)가 있어서 [남북국시대]라 하죠. 

고구려인들이 반은 남아 발해를 세우고 

반은 후기신라(통일신라)로 융합되었다 할 수 있겠죠.

 

당시가 [남북국시대]였다는 점에서는 통일신라라는 말이 적합하지 않을 것이고 

하지만 후기신라가 고구려, 백제, 신라의 융합체였다는 점에서는 

통일신라라는 말이 적합한 면도 있다 봅니다.

( 물론 고구려, 백제, 신라가 같은 고조선의 후예들이라는 것은 당연한 얘기고요.) 

 

후대의 고려 역시 고구려, 백제, 신라의 융합체이니 고구려만을 계승한 나라는 당연히 아니죠.

고려는 발해인들까지 흡수하여 후기신라(통일신라) 때 보다 더 큰 한민족의 통합을 이루죠.

 

후기신라(통일신라)는 고구려, 백제, 신라의 문화가 융합되어 전보다 더욱 찬란한 문화를 꽃피운 면이 있죠. 

그에 대해서 외국인들이 찬탄한 글이 아래 기사에 나옵니다. 

 

 

 

 "신라주민들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외모를 가지고 있으며, 병도 적다" 

 

"신라를 방문한 여행자는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금이 너무 흔하다. 심지어 개의 쇠사슬이나 원숭이의 목테도 금으로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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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 발췌]

 

 

 

신라 때는 개(犬)목걸이도 황금이었다

 

 

                                    [경향신문 2012.03.14]

 

 

 

" (신라인들은) 집을 비단과 금실로 수놓은 천으로 단장한다.

밥을 먹을 때 금으로 만든 그릇을 사용한다."

 

966년, 아랍사학자인 알 마크디시는 < 창세와 역사서(Kitabu'l Badi Wa'd Tarikh) > 에서 신라를 이렇게 표현했다.

 

마크디시 뿐이 아니다. 9~12세기 사이 아랍의 지리학자들은 한결같이 신라를 '신비의 이상향'이자, '황금의 나라'로 표현한다.

 

"신라의 공기가 순수하고 물이 맑고 토질이 비옥하다. 불구자를 볼 수 없다.

만약 그들의 집에 물을 뿌리면 용연향의 향기가 풍긴다.

전염병과 질병은 드물며 파리나 갈증도 적다. 다른 곳에서 병이 걸린 사람은 그곳에 가면 곧 완치된다."

 

 

 

 

 

 

 

 

5~6세기대 금목걸이.

신라에서는 금이 너무 흔해 개나 원숭이의 목테와 사슬도 황금이었다고 한다.

| 국립경주박물관

 

 

 

 

 

 

■"가장 아름다운 신라인들"

 

알 카즈위니(Al Qazwini)는 1250년 발간된 < 제국유적과 인류소식 > 에서 신라인의 생활상을 이렇듯 생생하게 전했다.

또 저명한 철학자이자 의학자인 알 라지(854~932)의 언급을 인용했다.

"신라는 살기 좋고 이점이 많으며, 금이 풍부하기 때문에 일단 그곳에 들어가면 정착해서 떠나지 않는다."

더 나아가 알 카즈위니는 "신라주민들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외모를 가지고 있으며, 병도 적다"고 까지 극찬하기에 이른다.

 

가장 잘 알려진 이는 알 이드시리(Al Idrisi ·1099~1166)이다.

그는 < 천애횡단갈망자의 산책(Nuzhatu'l Mushtaq fi Ikhtiraqi'l Afaq·일명 로제타의 書) > 에서 이렇게 전했다.

"신라를 방문한 여행자는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금이 너무 흔하다. 심지어 개의 쇠사슬이나 원숭이의 목테도 금으로 만든다."

신라 사람들의 외모가 장난이 아니며, 한번 신라를 방문하는 이는 떠날 생각을 하지 않는단다.

뿐인가. 세상에! 집을 비단·금실천으로 단장하고, 식사 때 금그릇을 사용한 것도 모자라 개의 쇠사슬과 원숭이 목걸이까지 황금이었다니….

 

 

 

 

 

 

알 이드리시가 만든 세계지도.

1154년 저술한 < 천애횡단갈망자의 산책 > 에 실려있다.

| 정수일 한국문명교류연구소 소장 제공

 

 

 

 

 

그런데 중세 이슬람 지리학의 태두인 알 이드리시의 표현은 여러모로 신빙성이 있다.

모로코(당시 무왓하딘조) 지중해 연안도시인 사브타의 귀족가문에서 태어났다.

16살 때부터 안다루스(스페인)-프랑스-영국-북아프리카-소아시아-그리스를 주유했다.

그는 시칠리 왕국의 로저 2세왕(1130~1154)의 초청을 받는다. 지리서를 편찬해달라는 것이었다.

편찬위를 구성하고, 지리학자 천문학자 화가 등 세계 각지로 보내 자료를 수집했다.

그가 15년에 걸쳐 엮은 책이 바로 < 천애횡단갈망자의 선택 > 이다.

1154년 사망직전에 이 책을 바친다.

 

책에는 1장의 세계지도에 70장의 지역세분도를 그렸다.

그런데 제1지역도 제10부분도에 중국의 동쪽 해상에 '신라(Al-Silla)'로 이름붙인 섬 5개를 배치시켰다.

"개의 목걸이도 금으로 했다"는 등의 기술과 함께….

 

 

 

중세 아랍학자들 뿐이 아니다. < 일본서기 > '중애기'를 보자.

"눈부신 금은채색이 신라에 많다.(眼念之金銀彩色 多在其國 是謂고衾新羅)"

< 일본서기 > 는 알다시피 서기 8세기대에 찬술된 역사책이다.

그러니까 '신라=황금나라'라는 것은 기록상으로 봐도 8~13세기대에 전세계적으로 공인된 인식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신라는 어떻게 '황금의 나라'라는 찬사를 받았을까.

 

 

 

 

 

 

 

 

 

신라의 금제귀고리.

금세공술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 국립경주박물관

 

 

 

 

 

 

■'고구려 금가루를 먹으면 선인(仙人)이 된다'

 

 

 

 

 

 

 

백제 왕흥사터에서 나온 금제유물들.

특히 0.3~1㎜ 크기의 금알갱이를 이어붙여 축구공 모양으로 만든 황금목걸이와

두께 2㎜에 불과한 금실과 지름 3㎜의 금제구슬은 백제 금세공 기술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이한상 교수 제공

 

 

 

 

이한상 교수는 이 대목에서 "눈 여겨 봐야 할 부분이 있다"고 강조한다.

< 삼국지 > '고구려'와 '부여조'이다.

"공식모임의 의상은 모두 비단과 수가 있는 견직물인데 금은으로 장식한다(其公會 衣服皆錦繡金銀以自飾)"('고구려조')

"금은으로 모자를 장식한다.(以金銀飾帽)"('부여조')

 

 

중국의 대표적인 본초학서의 하나인 < 신농본초(神農本草) > 를 보자.

여기에는 금설(金屑), 즉 금가루를 포함한 11종의 고구려 약재를 소개하고 있다.

금설은 광물성 선약의 일종이다. 불변의 성질을 갖고 있는 금가루와 금물(액)을 직접 복용하는 것.

그래서 인간의 몸을 불변의 성질로 승화시키면 선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금가루를 직접 먹는 것은 매우 위험했다. 따라서 연금술과 연단술이 매우 중요했다.

 

"금설은 유독하여 정련되지 않은 것을 먹으면 죽는다. 그러나 고구려의 금설은 잘 정련되어 먹을 수 있는 진약(珍藥)이다."

 

도홍경(陶弘景·456~536)은 < 신농본초 > 에서 "먹을 수 있는 금가루를 만드는 기술은 고구려가 최고였다"고 평가했다.

 

 

 

                                  이기환 문화·체육에디터 겸 스포츠경향편집국장

 

 

출처 - http://media.daum.net/photo/newsview?newsid=20120314120014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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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금가루를 먹는다고 선인(仙人)이 되는 것은 아니죠.

그런데 확실한 것은

고구려가 먹어도 이상 없는 금가루를 만드는 기술이 뛰어났다 하니  

고구려의 금을 다루는 과학기술 수준이 높았다는 얘기겠죠.

고구려, 백제, 신라 모두 금을 다루는 과학기술 수준이 높았으니

세 나라의 융합체인 후기신라(통일신라) 때는 그 기술이 더욱 높아졌고 

따라서 멀리 아랍에까지 소문이 난 모양이네요^^

 

한국의 물은 사람이 오염만 안시키면 어디든 완벽하리만치 맑죠.

외국에 나가들 보시면 한국처럼 물이 완벽하리만치 맑지는 않다는 것을 많이들 경험해보실 겁니다.

독일, 프랑스가 맥주, 포도주를 그토록 많이 마시는 이유가

그곳의 물들이 그냥 마시기에는 적합치 않은 경우 많아서라는 이유도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얘기죠.

위 기사에 한국물이 맑다는 것을 천년 전 아랍인도 얘기하는 것을 보면...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백제 유물 - 부여 왕흥사터에서 출토

 

[ 뉴시스 2007-10-24 ]

 

문화재청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소장 김용민)는 올해 시행한 부여 왕흥사지 제8차 발굴조사에 대한 자문위원회·현장학습의 날 행사를 갖고

577년 백제 위덕왕이 죽은 왕자를 위해 백마강변에 세운 왕흥사터 목탑지에서 황금사리병 등 다양한 유물을 24일 공개했다.

사진은 진단구 모습 (사진=문화재청 제공)

 

 

기사원문 - http://news.naver.com/news/read.php?mode=LSD&office_id=003&article_id=0000615539&section_id=102&menu_id=102

 

 

 

 

 

 

 

 

[ 영원(永遠)에 합당(合當)한 삶을 살아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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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인간]의 정신은 [사해동포주의]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른민족, 다른나라 사람이라고 해서 공연히 배타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일 것입니다.

 

다이나믹 코리아, 게이트웨이 투 더 월드 

[밝은 앞날 되시기를][꿈은 이루어진다][꿈은 미래의 현실이다]

 

 

출처 : 한국고대사
글쓴이 : 한밝의 후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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