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科擧) | |||
입력: 2007년 02월 04일 17:53:57 | |||
과거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판소리 ‘춘향가’이다. “임금이 풍악을 내려주시고 부수찬을 제수하니 머리에 어사화(御賜花), 몸에는 앵삼이라. 비단옷 입은 화동이 앞을 서 옥피리 소리, 여민락에 갖은 풍악, 어깨춤이 절로난다.” 이몽룡이 장원급제한 뒤를 묘사한 부분이다. 그러나 춘향가가 지금껏 우리의 심금을 울리는 이유는 화려한 어사화보다는 그가 암행어사가 되어 탐관오리를 혼내고 기생의 딸인 춘향과 백년가약의 약속을 지킨 모습 때문일 터이다. 그런데 역기능도 어지간했던 모양이다. 우선 과거시험부터 문제가 있었던 듯하다. 숙종실록에 따르면 성균관 인근 동네 밭에서 한 아낙이 나물을 캐다가 노끈에 묶인 대나무 통을 발견했다. 대나무 통은 땅속으로 과거 시험장인 성균관 반수당(泮水堂)까지 연결돼 있었다. 누군가가 시험장 밖에서 대나무 통을 통해 과거생으로부터 시험문제를 전달받아 답안지를 작성한 뒤 같은 방법으로 답안지를 넘겨 주었다는 얘기다. 요즈음 휴대폰, 무전기를 이용한 부정시험과 무척 닮았다. 백범 김구 선생은 ‘백범일지’에서 자신의 아버지 대신 과거시험을 쳐달라고 훈장에게 부탁했음을 고백하고 있다. 이밖에 좋은 자리잡기 싸움, 답안지 바꾸기, 친인척 챙기기, 합격자 바꿔치기, 심지어 시험장에서 술판까지 벌어졌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한국학 중앙연구원이 최근 조선시대 과거시험 합격자를 분석한 결과 서울 거주자가 65.2%를 차지했으며, 일부 명문가 성씨의 합격자 수가 유달리 많았다고 한다. 이 같은 결과가 당시 과거시험 모습과 어떤 연관 관계를 갖는지 확언하기 힘들다. 하지만 조선시대의 수도권 쏠림현상, 계층간 차별현상이 오늘날 우리 교육 현실에서 되풀이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이승철 논설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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