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스크랩

심판

황령산산지기 2007. 2. 10. 17:35
작고한 전 프로야구 감독 김동엽씨가 가장 확실하게 기억하는 경기는 1970년대 동대문구장에서 벌어진 일본과 대만의 야구경기이다. 그러나 그는 선수도 아니고 코칭스태프도 아니었다. 그저 심판일 뿐이었다. 한국, 대만, 일본이 물고 물린 이 대회에서 한국이 우승하려면 일본이 대만에 져야 했다. 당시엔 무엇을 하든 일본에 지면 매국노가 되는 상황이었다. 일본의 패배를 위해 ‘총대’를 멘 김동엽 주심은 일본투수가 던진 공은 대부분 볼판정을 내렸다.

그가 ‘눈 딱 감고 판정을 내린 덕’에 일본은 패했고 한국은 결국 우승을 차지했다. 그의 ‘애국 판정’은 당연히 문제가 되었고 더 이상 심판석에 설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한 번 내린 판정은 번복되지 않았으며 한국의 우승기록 역시 지금까지 남아있다. 창춘 동계아시안게임 쇼트트랙 경기에서 안현수가 1등으로 골인을 하고 실격패한 것도 중국심판의 ‘애국 판정’ 때문이었다.

운동경기에서 심판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다. 판정 한번에 승부가 오락가락 할 수 있으므로 정확한 룰 적용으로 경기를 물 흐르듯 해야 한다. 그래서 심판을 사회의 법관에 비유하기도 하고 제3의 선수라고도 부르지만, 완벽한 심판은 말처럼 쉽지는 않다. 선수나 코칭스태프가 꼭 필요하다면서도 없으면 좋은 첫 번째 대상자로 심판을 꼽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판정 잡음을 없애기 위해 로봇으로 대체하자거나 전자판독기에 맡기자는 이야기도 나왔지만 인간의 냄새가 나지 않고 재미가 없다는 주장 때문에 심판은 여전히 존재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실수에 의한 오판에만 해당되는 것이다. 승부조작을 위해 일부러 그랬다면 달리 생각해야 한다. 경향신문 보도에 의하면 한 농구심판이 이기게 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돈을 받았다가 적발되었다고 한다. 이기고 지는 승부보다는 정정당당함을 가르치는 초등학교 코트에까지 어른들의 추한 욕심이 가세한 것이어서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오판은 경기내용의 일부가 될 수 있지만 승부조작을 위한 편파 판정은 범죄이다. 목적을 위해 돈을 주고받았다면 그것은 운동장 안이든 밖이든 모두 영원히 퇴출되어야 한다.

〈이영만 논설위원〉

'뉴스 스크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중국의 해양굴기  (0) 2007.03.09
과거(科擧)  (0) 2007.02.10
공무원 열차  (0) 2007.02.10
'세상 하나뿐인 자동차' 제이레노의 ECOJET  (0) 2006.12.17
12억 짜리 버스  (0) 2006.1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