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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발퀴리와 니벨룽의 반지

황령산산지기 2007. 2. 1. 11:04

 


극광 Aurora Borealis (1865) by 처치 Frederic Edwin Church (1826-1900)
캔버스에 유채, 142.6 x 212.1 cm, 국립 미국 미술관, 워싱턴

 

    극지방의 밤하늘에 보이는 아름다운 오로라는 발퀴리 Valkyrie 의 빛이라고도 불립니다. 발퀴리는 북유럽 신화에 나오는 반신반인의 무장한 처녀들인데, 전쟁터에서 명예롭게 죽는 전사들을 최고신 오딘 Odin 의 전당인 발할라 Valhalla 로 인도해가는 일을 한다고 합니다. 발퀴리는 말을 타고 창공을 달리는데, 그때 그들의 갑옷에서 나는 빛이 바로 오로라라는 거죠.

 

    북유럽의 옛 전사들은 처참한 전쟁터의 하늘 위로 찬란하게 펼쳐지는 오로라를 보곤 했을 겁니다. 그것을 보며 발퀴리가 이미 죽은 자신의 동료들을, 또는 이제 곧 죽을 자신을 데리러 온다고 생각했겠지요. 피에 물든 대지에 참혹한 모습으로 쓰러진 전사들이, 기대와 환희에 가득 찬 힘없는 눈동자로 눈부신 오로라가 펼쳐진 하늘을 올려다보는 장면을 상상해 보세요...

 


발퀴리 by 래컴 Arthur Rackham (1867-1939)
바그너의 악극 "니벨룽의 반지 Der Ring des Nibelungen"
를 위한 일러스트레이션 중에서

 

    요즘 이 발퀴리라는 단어가 매체를 통해 많이 들리더군요. 이번 주말부터 한국에서 처음으로 상연되는 “니벨룽의 반지” 제2부의 제목이 바로 “발퀴리”거든요. 바그너(W. R. Wagner 1813-1883)가 작사, 작곡한 이 악극은 “라인의 황금,” “발퀴리,” “지크프리트,” “신들의 황혼,” 이렇게 4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악극의 규모는 정말 장대해서 한 부를 상연하는데 5시간씩 걸리고 (1부만 좀 짧다고 해요) 하루에 한 부씩 나흘에 걸쳐 상연한다고 합니다. 공연하는 사람들이나 보는 사람이나 엄청난 체력이 요구되는 모양이더군요. 그래서 바그너를 특별히 좋아하지 않는 저로서는 솔직히 엄두가 안 납니다. 반면에 제가 관심 있는 반지 전설을 바탕으로 한데다가 역사적으로도 의미도 많은 극이고, 또 우리나라에서 4부가 전부 상연되는 일은 앞으로도 좀처럼 없을 것이기 때문에... 놓치면 후회할 것 같기도 해요. 이런 식으로 몇 달째 계속 망설이고만 있습니다...^^

 

망을 보는 발퀴리
by 휴즈Edward Robert Hughes

(1851-1917)

 

    요즘 이 악극의 광고를 많이 하던데, 최근에 영화로 만들어져 열풍을 일으킨 톨킨 J. R. R. Tolkien (1892-1973) 의 “반지의 제왕 the Lord of the Rings”과의 연관성을 강조하더군요. 틀린 이야기가 아니죠. 톨킨이 “니벨룽의 반지”의 영향을 받기도 했을 것이고, “반지의 제왕”과 “니벨룽의 반지” 모두 천년에 걸쳐 전해 내려온 북유럽 반지 전설에 바탕을 두고 있으니까요.

 

    이 전설에는 만인이 소유하고 싶어하지만 정작 소유하는 자는 파멸하게 되는 황금반지가 등장합니다. 이 반지는 절대권력을 상징하는 것이죠. 가진 자는 내놓으려하지 않고 집착하며, 가지지 못한 자는 빼앗으려 하는...그래서 끝없는 싸움과 살육을 낳는 권력을 말이죠.

 

    반지 전설은 13세기의 문헌에 이미 등장하는데, 바로 스칸디나비아 지역의 학자이며 시인인 스노리 Snorri Sturluson (1179-1241)가 쓴 시학詩學서 “에다 Edda ”에서죠. 비슷한 시기에 역시 반지 전설을 바탕으로 한 영웅서사시인 “니벨룽의 노래”가 나왔고요.

 

    바그너의 “니벨룽의 반지”는 이 두 가지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극의 내용은 "니벨룽의 노래"보다 "에다"와 가까운 면이 더 많습니다. 절대권력을 상징하는 황금반지를 둘러싼 파멸의 순환이 강조되는 점에서 특히 그렇죠. “니벨룽의 반지”에서는 사랑을 신뢰한 한 여인에 의해 반지가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면서 그 저주가 끝납니다. 그 여인이 바로 발퀴리인 브륀힐데 Brunhilde 이죠.

 

    그럼 이 악극의 간략한 내용을 래컴 Arthur Rackham (1867-1939) 의 일러스트레이션과 함께 보시죠. 래컴 특유의 우울한 색조가 "니벨룽의 반지"의 분위기와 잘 어울리죠... 이 극은 난쟁이 니벨룽족인 알베리히 Alberich 가 물의 정령인 라인처녀들에게 구애하다가 그들이 지키는 황금을 발견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사랑을 부정하는 자는 그 금으로 절대권력의 반지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알베리히는 구애를 단념하고 황금을 훔쳐 달아나죠. 그리고 반지를 만들어 그 힘으로 많은 보물을 얻습니다.

 


알베리히를 희롱하는 라인처녀들

 

    그러나 신들이 알베리히의 반지와 보물을 빼앗습니다. 여신 프레야 Freya 를 인질로 잡은 거인 형제에게 몸값을 지불하기 위해서였죠. 알베리히는 누구든지 반지를 소유하는 자는 파멸하리라고 저주합니다. 저주는 곧 실현돼서 거인 형제는 반지를 두고 골육상잔의 싸움을 벌이게 되고 결국 하나가 나머지 하나를 죽이고 보물을 독차지합니다. 그는 용이 되어 반지와 보믈을 지키죠. 여기까지가 1부인데 이 부분은 거의 "에다"의 반지 전설과 비슷하답니다

 

    오딘에 해당하는 최고신 보탄 Wotan 또한 반지에 미련이 있었으나 계약에 따라 용을 직접 공격할 수 없기에 인간 영웅인 지그문트 Siegmund 로 하여금 반지를 찾게 하려 합니다. 그러나 다른 신과의 이해관계가 걸려 결국 보탄은 자신이 지그문트에게 준 검 노퉁 Nothung 을 산산조각 내서 그를 죽게 만들죠. 이처럼 인간의 운명을 멋대로 바꿔서 그들을 불행에 빠뜨린 것이 훗날 신들의 멸망의 한 원인이 됩니다.

 


브륀힐데

 

    보탄의 딸이며 발퀴리인 브륀힐데는 지그문트와 그의 연인 지클린데 Sieglinde 의 애틋한 사랑을 동정하여, 보탄의 명을 어기고 지그문트를 지켜주려 했고 그가 죽자 지클린데를 피신시켰습니다. 그 벌로 브륀힐데는 발퀴리로서의 신분을 박탈당하고 불의 벽으로 둘러싸여 잠들게 되었는데, 긴 세월이 흐른 후 불을 뚫고 나타난 사람이 바로 지그문트와 지클린데의 아들 지크프리트Siegfried 였죠.

 

    그전에 지크프리트는 아버지의 검 조각을 모아 만든 새로운 노퉁으로 용을 죽이고 반지를 포함한 알베리히의 보물을 얻었습니다. 부러진 검을 모아 만든 새 검으로 적을 무찌른다는 설정이 “반지의 제왕”에도 나오지요. 브륀힐데를 깨운 지크프리트는 그녀와 사랑에 빠지고 변함없는 사랑의 표시로 반지를 그녀에게 줍니다.

 


용을 죽이는 지크프리트

 

    그후 지크프리트는 잠시 브륀힐데와 떨어져 군터 Gunther 왕에게 갔는데, 여기에서 군터와 그의 신하이며 알베리히의 아들인 하겐의 음모로 마법의 술을 마시고 브륀힐데에 대한 기억을 잃어버립니다. 그래서 그는 군터를 돕고자 그의 모습으로 변하여 브륀힐데를 군터의 신부로 강제로 데려오고 자신이 주었던 그녀의 반지도 빼앗습니다.

 

    군터의 성에 끌려온 브륀힐데에게 하겐은 그녀를 데려온 사람이 사실 지크프리트였다는 것을 알려주죠. 지크프리트가 마법에 걸렸다는 사실을 모르는 브륀힐드는 하겐이 의도한 대로 처참한 배신감에 사로잡히고, 그의 약점을 하겐에게 알려주어 죽이도록 합니다. 결국 지크프리트는 유일한 약점을 창으로 찔리고 그 순간 브륀힐데에 대한 기억이 돌아와 그녀를 애타게 부르며 죽습니다.

 

    하겐과 군터는 반지를 두고 싸우다가 하겐이 군터마저 죽입니다. 그러나 그 사이 진실을 알게 된 브륀힐데는 슬픔에 잠겨 지크프리트를 화장할 준비를 하죠. 그녀는 지크프리트의 손가락에서 반지를 빼 자신이 끼고 화장단에 불을 붙입니다. 그 불이 발할라까지 솟아올라 신들도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고 라인처녀들은 재 속에서 반지를 되찾을 것이라고 예언한 다음 브륀힐데는 말을 타고 불길로 뛰어듭니다.

 


불 속으로 뛰어드는 브륀힐데

 

    과연 불은 발할라까지 옮겨붙어 하늘이 붉게 물들면서 신들의 황혼과 새로운 세계의 여명을 알립니다. 그와 함께 라인강이 지상의 불을 휩쓸어 끄고, 라인처녀들이 되찾은 반지를 높이 쳐들며 이 극은 끝이 나죠.

 

    “에다”에 나온 반지전설의 구체적인 내용과 “니벨룽의 반지,” 그리고 “반지의 제왕”으로 이어지며 발전되는 반지전설의 상징성에 대해서는 제 책 “미술관에서 숨은 신화 찾기” 중 "파멸을 부르는 황금반지" 챕터에 좀더 자세히 나옵니다...

 

 

출처 : Moon의 미술관 속 비밀도서관
글쓴이 : Moon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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