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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황령산산지기 2005. 9. 15. 16:55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얼마 전에 
    친정 엄마는 김치 담아놨다고 가져가라
    몇 번씩 전화하시고 
    시어머님은 친정엄마께 무화과 가져다 드려라 성화고 
    이래저래 심부름하느라고 친정에 들렀는데 
    '어야! 저 꽃 찍었는가?' 
    가르치는 방향을 바라보니 흰색 유도화다 
    그리 귀한 꽃은 아니지만 
    아직 내 주머니에 들어오지 않은 꽃이라 
    카메라를 갖고 의기양양하게 갔는데 
    생각보다 높은 위치라 벽돌 다섯 장 정도의 낮은 울타리를 
    행여 누가 뭐라는 사람이 있을까봐 조심히 올라서서 
    겨우 한 컷 
    "그 꽃이 그라고 이삐요?" 아주머니의 음성이다 
    나도 모르게 돌아선다는 게 그만 중심을 잃고 
    어어! 할 새도 없이 떨어지고 말았는데 
    손가락 하나도 움직일 수 없어 
    영락없이 뼈가 부러진 줄 알고 
    병원 응급실로 갔는데 
    그래도 뼈에 이상이 없다니 얼마나 다행인가 
    난 생 처음 깁스를 하고 
    팔을 걸어 큰 목걸이를 하고 나니 
    얼마나 거추장스럽고 불편한가 
    그러다가 손가락이 꼬리지느러미처럼 
    깁스 밖에서 겨우 움직일 때의 환희 
    병신은 안되겠구나 하는 안도감 
    하나를 갖게 되면 둘을 갖고 싶은 사람의 욕심 
    그런 몸으로 컴 앞에 앉아 
    한 손으로 짚어가는 자판은 얼마나 옹색한 글을 만드는지? 
    쌍시옷 쌍비읍이 그렇게 만들기 어려운 문자라는 것과 
    모로 세운 장지 끝으로 자판 하나를 눌러주는 도움에 
    드디어 완벽하게 써지는 글씨에 
    희열처럼 느껴지는 감동 
    며칠이 지나고 
    "요 봐요 내 손이 코에 가 닿았어!~~" 
    정말 당연한 일이지만 내 손이 코에 가 닿는 일이 
    이렇게 감동을 주리라는 것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걸레만 비틀어 짤 수 있다면....... 
    요즘 희망 사항입니다 
    대충 흔들어 빤 걸레를 발로 밟아서 대충 물기를 제거하고 
    마른 수건과 같이 밟아서 물기를 마른 수건에 전달하고 
    쓰는 걸레질의 비참함 
    만약에 내 팔이 건강했다면 
    이런 감동들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기에 
    잠시 아프고 불편했지만 
    오래도록 내게 귀한 경험이 될 것입니다
    
출처 : 『시인의 바다』
글쓴이 : 안숙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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