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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소서노 '고구려와 백제의 건국의 주역?!

황령산산지기 2005. 7. 16. 12:26
소서노 '고구려와 백제의 건국의 주역?!

역사교과서에는 나오지 않는 인물 소서노에 관해서 요즘 기사에 많이 나오고 있네요
소서노는 단재 신채호 선생의 조선상고사에 의하면
"조선사상 유일한 여성 창업자일뿐 아니라 곧 고구려 백재 두 나라를 건설한 사람이었다."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우리가 회복해야할 역사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을 하구요
아래글은 한번쯤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
고조선과 북부여에서 고구려로 가는 한민족 역사의 맥을 잡는데 도움이 될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고구려와 백제를 건국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여걸에 대해 잘 모르고 있을 것입니다.

이 여걸을 충북 음성에 있는 조각공원이 대형 돌 동상으로 만들어 우리 고대사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김동우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역사를 주도적으로 움직인 여성들은 세계적으로 많이 알려졌지만, 고구려와 백제 건국의 주역였던 '소서노'라는 여걸은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이 '소서노'라는 여걸은 우리 고대 국가였던 졸본부여의 공주로 주몽과 결혼해 고구려를 세우고, 또 아들 온조를 도와 백제를 건립하는데 핵심 역할을 했습니다.

[기자]
그렇지만 고구려 건국의 공은 남편 주몽에게, 백제 건국의 공은 아들 온조에게 돌아가 지금까지 역사의 편린으로 남아있었습니다.

이런 이 '소서노'가 2천여년 만에 높이 5미터에 무게 30여톤의 화강암 동상으로 우리 앞에 나타나 그 위용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충북 음성에 있는 조각공원이 1년동안의 고증을 통해 '소서노'의 영정을 그려낸데 이어 9개월만에 동상 제막식을 갖은 것입니다.

동상 제막식에는 많은 여성들이 참여해 여걸 '소서노'의 업적을 기렸습니다.

[인터뷰:신낙균, 새천년민주당 부대표]
"고구려는 고주몽이.백제는 온조가 세웠다고 들었지만 이 뒤에 여성이 있었다는 것에.."

[인터뷰:정근희, 큰바위얼굴 조각공원]
"두 나라를 세운 여걸을 동상으로 만들어 교육의 장으로 삼고저 합니다."

이번 고구려와 백제 건국의 주역 '소서노'의 동상건립은 중국의 동북공정 추진으로 고대사에 대한 관심과 재평가 노력이 절실한 시점에서, 우리 고대국가의 역사를 재확인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YTN 김동우입니다.


고조선 말기 여러 제후국들이 독립 세력으로 등장했던 이 시대를 ‘열국시대’라 일컫는데, 가장 유력했던 나라가 북부여, 옥저, 동예, 낙랑국, 원시 고구려(고리국), 남삼한(진한, 마한, 번한) 등이다.
 
 이때는 명분상 가장 강한 나라가 고조선 왕실을 계승한 패자(영도국)로 군림했는데, 맨 처음 패자로 등장한 나라가 북부여였다.
 
 북부여는 BC 239년에 ‘해모수’에 의해 건국되었다. 해모수는 BC 195년까지 통치를 했으며, 북부여는 BC 58년에 고구려가 건국될 때까지 6명의 단군이 재위를 했다.
 
 해모수는 중국의 진시황과 동시대인데, 당시 진시황이 만리장성을 쌓은 것은 흉노 뿐 아니라 북부여를 막기 위해서였다. 즉 만리장성 동쪽은 전부 우리 동방민족의 세력권이었던 것이다.
 
 북부여의 여섯 번째 단군인 고무서 단군에게는 아들이 없고 ‘소서노’라는 딸이 있었다. 소서노와 결혼 사람이 바로 고구려를 건국한 고주몽성제다.
 
 고주몽성제는 북부여를 계승해 오다가 BC 37년 ‘고구려’라고 국호를 바꾼다. 『삼국사기』에 보면 고구려 건국이 BC 37년, 백제는 BC18년, 신라는 BC 57년이라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본래 고구려 건국은 BC 58년이며 처음에는 ‘다물’이라는 연호를 썼다. 그런데 BC 37년에 국호를 ‘고구려’로 바꾸고 ‘평락’ 이라는 연호를 쓰게 되면서 이때부터를 고구려 건국으로 잡은 것이다.

출처 : ─┼★불가사의에 답이있다★┼─
글쓴이 : 생명의빛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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