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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군의 검, 환도

황령산산지기 2022. 6. 19. 12:20

환도는 조선시대의 군의 칼이다.

 

환도에 대한 기록은 1277년 고려에 몽골사신이 와서

 

이장무와 함께 환도를 만들기 시작한것이 최초이며

 

고려후기에 들어온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세종실록 - 우리나라 말로 환도라 한다. 검은 칠을 하고, 장식은 황동을 사용하고, 술은 홍도수아로써 드리우고, 띠는 가죽을 사용한다.>

 

 

 

 

*환도와 일본도의 구분법

일본도

 

환도

 

 

구분법은 여러 방법이 있는데 젤 쉬운게 그냥 장식을 보면된다

(칼날단면. 즉, 육각도,배형도,편삼각도 등으로 구분하는건 복잡 함)

 

환도는 칼 양끝에 '금속장식'과 '칼집에 띠돈'이 달려있고, '자루에 술'이 달려있다.

 

띠돈에 군복용 허리띠를 걸어 패용(착용)하는 방식이다.

 

일부 환도 칼집에는 칼을 뽑을수 없게 락킹 버튼이 있는 경우도 있다

 

 

 

 

*환도 패용법

 

환도는 칼자루가 뒤로 가도록 패용했다

 

그 이유는

 

1. 말 탔을 때 걸리적 거리지 않음

 

2. 활 쏠 때도 걸리적 거리지 않음

 

때문이였다

 

 

넷플릭스 킹덤을 보면 칼자루가 앞으로 오도록 패용하고 있는데 그렇게 해도 상관은 없지만

 

활을 쏠때 줄을 당기는데, 이때 칼자루에 걸려서 매우 매우 불편 하게 된다

 

 

그래서 활과 같이 무장 할때는 칼자루가 뒤로 가도록 패용 하는게 정석이다

 

 

근데 이렇게 칼자루가 뒤로가면 칼은 어떻게 뽑음? 하겠지만...

 

 

 

 

아주 쉽고 편하게 잘 뽑 힌다

 

 

 

 

 

*환도의 특징

 

조선 초기의 환도는 길이가 짧아서 적을 공격할 수 있는 거리가 짧았고 이는 단점이였다.

 

물론 초기 환도에도 장점은 있다

 

좌우로 스텝을 밟으면서 후려치거나, 빠르게 이동해서 베는 식으로 기동력을 살리는 전법에 편리했다.

 

방패를 들고 자신을 보호하면서 상대를 찌르는 검술에도 유리했지만,

 

기록을 보면 조선초기의 환도는 일본도의 위력을 이길 수 없었다고 나온다

 

 

초기 환도는 질량에 비해서 구조적인 안정성은 높지만, 한손으로 휘두르는 속력에만 의존해야 하므로 살상력이 부족했다

 

임진왜란 당시에는 일격만으로도 충분히 살상력이 나오는 일본도에게 버티지 못 했었다

(당시 일본군은 검을 들고 크게 도약하며 창까지 상대 했었다고 한다)

 

결국 임진왜란을 겪으며 일본도를 상대 하기 위해 환도의 길이가 길어지게되고

 

임진왜란 이후엔, 몸을 위아래로 크게 회전하면서 체중을 실어 베는 일본의 검술을 받아들이게 된다. 

 

사실 질량이나 내구도 같은 검의 스펙 같은게 중요한게 아니라, 검을 다루고 가르치는 검술 체계가 있느냐가 제일 중요했다

 

 

<선조실록 1594년 7월>

 

이번에 귀순한 왜인(항왜) 중에는 검을 잘 쓰는 자도 있고 창을 잘 쓰는 자도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검술이 전해 오지 않았는데, 근일에 약간 전습하니 이는 만세에 유익한 일이다.

 

 

<선조실록 1594년 12월 27일>

 

비망기로 일렀다. "우리 나라 습속은 남의 나라의 기예를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고 더러는 도리어 비굴하게 여긴다. 왜인의 검술은 대적할 자가 없다.

 

별도로 한 장수를 뽑고 아이들 약간 명을 선택하여 한 대열을 만들어서 왜인의 검술을 익히되 주야로 권장하여 그 묘법을 완전히 터득한다면, 

 

이는 적국의 기예가 바로 우리의 것이 되는 것인데, 어찌 유익하지 않겠는가? 훈련 도감에 이르라."

 

 

<『승정원일기』 숙종 5년(1679) 7월 27일>

 

훈련대장 유혁연이 말하기를, "검술은 천하 어디에도 있지만 왜의 것이 최고입니다.

 

우리나라 홀로 전하고 익히는 자가 없어 신의 마음이 항상 분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중략)신의 아랫사람 중에 배울 수 있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을 보내 검을 배우게 하면 어떠하겠습니까?"

 

하니, 상이 말하기를, "보내라" 하였다.

 

 

 

 

*환도는 원래 보조무기

 

국궁, 승자총통, 천자총통 같은 무기와 집단 전술을 애용했던 조선에서 짧은 환도는 보조무기였다.

 

애당초 조선의 주력은 갑사 부대 즉, 기마궁술이였다. (여진족,왜구 잘 조지던 정예병력이였는데, 신립이 탄금대에서 다 날려먹음)

 

때문에 조선에서 검을 이용한 전술은 빠르게 쇠퇴했고, 검을 제작하는 기술은 휴대하기에 편한 칼을 만드는데 집중되었다.

 

또한 이렇게 만들어진 환도는 일본도랑 크기가 비슷하더라도 약간 더 가벼웠다.

 

질량을 낮추었으므로 타격력이 조금 약해졌지만, 다양한 무기들을 함께 패용하거나, 기동성이 높은 전술을 쓰기에도 유리했다.

 

활을 주무기로 한 우리나라의 병법에 맞춰 변화한 것이다.

 

우리나라는 근접전도 활로 할 정도였고, 임란 당시에도 궁술의 달인들이 많았었다.

 

 

 

 

*임진왜란 이전 무과 시험에 검술과목 자체가 없었다.

 

다만, 군영에서 검술을 딱히 중요하게 안가르쳐서 공식적인 검술이 없던것이지

 

기록을 보면 소수의 민간에서 전승되어 몇몇 선비나 장군들이 칼로 전공 세우거나 검술 익혔단 기록들이 있긴있다

 

전쟁 터져서 수도까지 털리고 하니 당시 정보력 수준으로는 검술을 제대로 할 줄 아는 애들 찾기가 아주 어려웠다고 한다

 

근데 이건 세조가 조선군의 인사 고과를 철저히 궁사 위주로 재편시켜 창,검술의 전승이 거의 끊겼기 때문이기도 하다

 

괜히 임란때 고생한게 아니다

 

 

 

*무예도보통지에 실린 조선의 검술

 

무예도보통지는 임진왜란 발발 200년 이후 1790년(정조 14년)에 편찬된 조선 시대 군용 무술 교본이다.

 

여기에 5개의 검술이 실려있는데 임란 이후 일본의 검술과 중국 남부의 검술을 받아들여, 

 

우리나라의 무기,편제,상황에 맞게 상당부분 재구성 및 재편된 것들이다.

 

참고로 동시대 기준 수준이 매우 높은 검술 체계들로, 숙련된 검사들이 육성되기 시작했다 (김체건,김광택,백동수 등)

 

간혹 일본거랑 중국거 수입해와서 한국거 아니다라고 박박거리는 무식한 인간들이 있는데,

 

무예도보통지에는 우리나라만의 오리지널리티 있는것들이 포함되어있고, 어차피 무술뿐만 아니라 모든 기술은 교류를 통해 만들어진다.

 

일본의 가라데는 중국 남파 권법에서 유래해 오키나와를 거쳐 일본 본토에 전해졌다. 즉, 자기들만의 무술로 승화시킨것이다.

 

현재 가라데를 중국무술이라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드라마의 폐해

 

한국 사극에서는 100편 중 90편 이상이 카타나(일본도)를 써서 논란이 많았다.

 

이후 추노, 뿌리깊은 나무, 해를 품은 달, 킹덤 등등..

 

무기 고증에 어느 정도 신경을 쓴 작품이 나오며 고증된 형태의 환도를 볼 수 있는 비율이 높아지게 되었다

 

 

 

 

 

*현대에 남아 있는 환도

 

칼 양끝의 '금속장식'과 '칼집의 띠돈'이 환도임을 나타내고 있다

 

 

(독일박물관 소장 녹칠어피 운검)

 

조선은 군에서 사용하는 대부분의 칼들을 환도라고 불렀는데.

 

환도 종류로는 대표적으로 일반군용, 운검, 별운검, 어도 등이 있고

 

환도 외에는 사인검, 칠성검, 예검 등이 있었다.

 

 

 

(독일 라이프치히 박물관 소장) 

 

 

 

(고려대박물관 소장)

 

운검

 

조선의 대표적인 환도 양식으로 후기까지 많이 유지했다.

 

운검은 왕의 호위무사들을 칭하고

 

이들이 패용하는 환도 명칭도 운검이라고 한다.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별운검

 

나라의 큰 행사 때 왕의 양옆에서 별운검을 들고 호위하는 임시관직이다.

 

종2품(중장급) 이상 믿을만한 사람 2명을 선발한다.

 

 

<수원화성박물관 소장>

 

어도(임금의 환도)

 

대모갑, 옥, 금, 은을 사용해 제작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네덜란드 소장 운검)

 

 

 

(독일 라이프치히 소장 환도)

 

칼집에 십장생문을 새겨 넣었고 칼날에는 광사두우 光射斗牛

 

'칼의 빛이 북두칠성과 견우성을 쏘아 우주의 이치에 맞닿는다'가 새겨져 있다

 

 

 

(독일 라이프치히 박물관 소장 환도)

 

 

 

(러시아 박물관 소장 환도)

 

코끼리 상아로 칼집을 만들고 조각을 넣음

금, 은 등을 사용해 제작

 

임진왜란 이후 일본도식 손잡이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고려대 박물관 소장)

 

칼집에 옻칠을 하고 위에 금분을 뿌려 마무리하는 일본 전통공예 양식(마키에 양식)을 사용

 

 

전어도

 

태조 이성계의 칼

 

 

전어도는 경복궁의 고궁박물관에 소장중인 칼로

 

임금의 어도라고 전해지는 검이다.

 

야사로는 이성계의 칼로 전해지는데

 

고궁박물관엔 같은 칼이 1점이 더 있다.

 

 

 

 

 

p.s

 

독일에 환도가 많이 남아 있는 이유가 고종이 선물로 준것들도 많고, 수집가들도 많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