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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정수석비서관

황령산산지기 2022. 3. 20. 10:24

 

 
민정수석비서관
民政首席祕書官
Senior Secretary for Civil Affairs
 
현직
김영식
취임
2022년 01월 17일
정당
1. 개요2. 상세
2.1. 권한 및 업무2.2. 비서관실
3. 민원수석비서관4. 민정 / 사정 / 법무수석비서관
4.1. 민정수석비서관 (1980~1998)4.2. 사정수석비서관 (1980~1988)4.3. 법무수석비서관 (1985~1988)4.4. 사정수석비서관 (1990~1993)4.5. 민정수석비서관 (1999~)
 
5. 문제점6. 창작물에서의 등장

1. 개요

Senior Secretary for Civil Affairs

민정수석비서관(民政首席祕書官, 약칭 민정수석)은 민정수석실의 수석비서관이다.

문재인 정부 기준으로 자신의 밑에 민정비서관,[1] 반부패비서관, 공직기강비서관, 법무비서관을 둔다.[2] 
휘하 비서관들의 직책명을 보면 알겠지만 국민여론 및 민심동향 파악, 공직·사회기강 관련업무 보좌,
법률문제 보좌, 민원업무의 담당자다. 쉽게 말해서 청와대 직속 감찰조직의 장이다.
 
대통령 측근 및 친인척 비리가 정권에 주는 충격이 큰 만큼, 정권의 레임덕을 방지하는 역할도 하는 셈이다.

조선시대로 치면 우부승지라는 직책에 비교되기도 한다.
그러나 조선시대의 우부승지와는 다르게 실권이 크다는 점에서 차이가 난다고 할 수 있다.
공직 기강 유지와 인사 검증, 법무 관련 일은 어떤 정권이라도 필수적으로 챙겨야 하는 만큼,
누가 대통령에 취임한다해도 명칭이 바뀌는 일은 있어도 역할이 바뀌는 일은 없을 것이다.

2. 상세

2.1. 권한 및 업무

청와대 TOP 5 또는 행정부 소속 차관급 정무직공무원 중 최강의 권력자로 꼽히는 요직이다.[3] 
과거에는 "날아가던 새도 손가락으로 찍어내면 떨어뜨리는 자리"라는 이야기가 전해질 정도로
민정수석의 권세는 청와대의 실세 중의 실세이다.
 
즉, 직속상관인 대통령 비서실장이나 한 급수 더 높은 국가안보실장 정책실장,
그리고 이 자리의 인사권을 가진 대한민국 대통령, 청와대 외부 인사로는 거물급 정치인 출신
또는 겸직 국무총리만이 실질적으로 민정수석 위에 있다고 볼 수 있다.[4] 
 
국가정보원장, 경제부총리, 감사원장도 함부로 못 건드린다.[5]

신군부 세력이 청와대 안팎의 권력을 장악했던 전두환 정권과[6] 검찰과 민정수석 분리를 천명한 
참여정부에서는 한명만이 검찰 출신이었고 그 검찰 출신도 노무현 대통령의 동네친구 박정규였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2020년까지도 검찰 출신은 커녕 법조인 출신도 단 한명도 임명하지 않았다가
2021년 1월 1일 새해에야 검사 출신 신현수를 임명했다.[7] 
 
그 외 역대 민정수석들은 대부분 검사 출신 변호사다.
실제로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 이명박 정부, 박근혜 정부를 통틀어 민정수석비서관들은
김성재 수석[8]을 제외하고 전원 검찰 출신이었다.

위 문단에서 짐작할 수 있듯 만약 검사 출신 변호사가 아닌 사람이 민정수석으로 임명됐을 때
대부분 그들은 해당정권의 굉장한 푸쉬를 받는 인물임을 알 수 있다.
 
대표적인 예로 5공 당시 육사 출신이자 전두환이 보안사령관 시절부터 휘하에서
그를 보좌했었던 핵심 실세 이학봉 허삼수[9]를 임명한 것을 시작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친구이자 영원한 정치적 동지 문재인 대통령, 현 친문의 핵심으로 불리우는
3철의 멤버 전해철 이호철, 문재인정부에서 임종석 비서실장과 함께
청와대의 얼굴이자 실세로 불리는 조국 민정수석까지 비 검사 출신 민정수석은
굉장히 주목을 받는 편이며, 대부분의 검사출신 민정수석보다 대중들에게 존재감이 큰 편이다.[10] 
 
몇 안 되는 예외로는 박근혜 정부 시절 민정수석을 역임했던 우병우정도를 들 수 있겠다.

민정수석의 권한이 큰 이유는 우선 사정(司正) 기관[11]을 사정하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 직속 비서관으로서 대통령에게 법무행정 및 사정실무, 사정기관장들의 인사권에 관하여
의견을 제시하는 역할이기 때문에, 대통령이 매우 신뢰하는 인물이거나 대통령이 법조인 출신이 아니어서
사정에 관한 수사의 지휘감독이나 절차법에 문외할 경우 더더욱 큰 영향력을 갖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 더하여 민정수석은 대통령의 주요 측근과 장차관급 고위 공무원들의 인사검증을 책임지는 자리이다.[12] 
즉, 권력의 가장 중요한 요건[13] 인사권과 사정권을 둘 다 행사하는 자리인 것이다.[14] 
그러니 실세 중 실세로 꼽힌다.

이런 권한을 행사하는 만큼, 검사 출신 법조인이 이 자리로 가는 것은 검찰의 독립성에 심각한 문제가 되어,
1997년 검찰청법에 파견근무 금지 조항을 신설, 
막상 국민의 정부시절에도 그런 현행법을 검사 사표→비서실 근무→비서실 퇴임후 검사 복귀라는
뻔한 우회방식으로 무력화 하면서 민정수석자리에 사실상 현직 검사를 기용하였고 결국 달라지는 게 없었다.
 
다만 이건 내막을 알고보면 그럴수밖에 없는 것이, 전문적으로 훈련받은 엘리트 검사만큼
민정수석비서관실 업무에 딱들어맞는 인재가 없었기 때문이다.
 
사정이나 감찰 업무라는건 결국 범죄 수사와 거의 동일한 성격이다보니(...)
 
노무현 정부때는 이러한 문제의식 때문에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검사의 민정수석실 근무를 외면하고
심지어 민정수석비서관도 비검사 출신이며 심지어 의형제 수준인 문재인, 검사 출신이지만
사시 시절부터 절친이었던 박정규[15], 비 고시 출신이며 노 전 대통령을 주군으로 모시는 이호철을 임명했고
모두가 알다시피 이러한 인사파괴는 결국 처절한 실패로 돌아와 민정수석의 책임 중 하나인
대통령 친인척 비리를 전혀 막지 못하는 결과를 불러왔다.[16]

청와대 10개 수석 중에서는 인사권과 관련되는 만큼 최고의 실세자리이며,
심지어 대한민국 검찰청 인사도 법무부 장관/검찰총장보다 검사임용 기수가
훨씬 아래인 민정수석이 인사권을 휘두른다는 의혹을 받는 수준이다.
 
다만, 민정수석실에서 감찰을 하는 것은 정권이 합법적으로 시행하는 감찰인데,
최근 정권에서는 비선실세가 민정수석을 흔드는 사건이 몇 번이나 있었다.

한편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라와서 의무적 답변 기준을 충족하는 청원 중 다수가
법 개정 관련 안건이라서 민정수석이 청원 답변에 자주 등장한다.
 
민정수석이 법률문제를 보좌하는 사람이기 때문.
그 외에는 사회적으로 공분을 많이 산 특정 범죄자 강력처벌 및 동물학대 고발 관련건인데,
법률 관련 문제라 일반적으로 민정수석이 답을 한다.

20대 대통령 당선인 윤석열은 사정기관의 독립성 확보를 위해 민정수석실을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

2.2. 비서관실

민정수석비서관실에는 민정비서관, 공직기강비서관, 법무비서관, 민원비서관 총 4개의 비서관이 있다.

2017년 문재인 정부에서는 민원비서관을 폐지하고 반부패비서관을 신설했다.
민원비서관은 청와대에 들어오는 민원을 받는 역할을 담당했으며,
반부패비서관은 문재인의 공약이었던 '반부패' 관련 내용을 짜고 제도화 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가교와 교섭역할을 하는 건 법무부장관과 검찰총장 그리고 감사원장이다.

3. 민원수석비서관

정부
대수
이름
출신지
출신학교
임기
초대
이원홍 (李元洪)
1980년 1월 20일~1980년 7월 28일

4. 민정 / 사정 / 법무수석비서관

4.1. 민정수석비서관 (1980~1998)

정부
대수
이름
출신지
출신학교
임기
초대
이학봉 (李鶴捧)
1980년 9월 9일~1986년 1월 8일
2대
김용갑 (金容甲)
1986년 1월 14일~1988년 2월 24일
초대
한영석 (韓永錫)
1988년 3월 7일~1989년 3월 25일
2대
정구영 (鄭銶永)
경남 하동군
1989년 3월 25일~1990년 12월 6일
3대
김영일 (金榮馹)
경남 김해시
1990년 12월 6일~1990년 12월 27일
4대
이상연 (李相淵)
경북 성주군
1990년 12월 27일~1991년 4월 29일
5대
안교덕 (安敎德)
경북 울진군
1991년 5월 1일~1993년 2월 24일
초대
김영수 (金榮秀)
1993년 2월 25일~1995년 12월 20일
2대
문종수 (文鍾洙)
1995년 12월 20일~1998년 2월 24일

국민의 정부가 출범하면서, 민정수석비서관실이 폐지되었다.
1999년 6월 재신설되기 이전까지는 비서실장 직속으로 민정비서관과 법무비서관이 자리잡았다.

4.2. 사정수석비서관 (1980~1988)

정부
대수
이름
출신지
출신학교
임기
초대
허삼수 (許三守)
부산
1980년 9월 9일~1982년 12월 20일
2대
정관용 (鄭寬溶)
서울
1982년 12월 20일~1986년 1월 8일
3대
김종건 (金鍾鍵)
1986년 1월 9일~1987년 5월 26일
4대
이양우 (李亮雨)
서울
1987년 5월 30일~1988년 2월 24일

4.3. 법무수석비서관 (1985~1988)

정부
대수
이름
출신지
출신학교
임기
초대
이중근 (李重根)
부산
1985년 3월 11일~1988년 2월 24일

1985년 신설되었으나, 폐지되었다.

4.4. 사정수석비서관 (1990~1993)

정부
대수
이름
출신지
출신학교
임기
초대
김영일 (金榮馹)
경남 김해
1990년 12월 27일~1992년 2월 6일
2대
김유후 (金有厚)
서울
1992년 2월 6일~1993년 2월 24일

문민정부가 출범하면서 사정수석비서관실이 폐지되어, 민정수석비서관실로 통합되었다.

4.5. 민정수석비서관 (1999~)

정부
대수
이름
출신지
출신학교
임기
초대
김성재 (金聖在)
경북 포항시
1999년 6월 24일~2000년 1월 12일
2대
신광옥 (辛光玉)
2000년 1월 12일~2001년 9월 11일
3대
김학재 (金鶴在)
2001년 9월 11일~2002년 2월 8일
4대
이재신 (李載侁)
전북 정읍시
2002년 2월 8일~2003년 2월 24일
5대
문재인 (文在寅)
경남 거제시
2003년 2월 25일~2004년 2월 13일
6대
박정규 (朴正圭)
경남 김해
2004년 2월 13일~2005년 1월 12일
7대
문재인[17] (文在寅)
경남 거제
2005년 1월 20일~2006년 5월 2일
8대
전해철 (全海澈)
전남 목포시
2006년 5월 3일~2007년 12월 21일
9대
이호철 (李鎬哲)
부산
2007년 12월 21일~2008년 2월 24일
10대
이종찬 (李鍾燦)
2008년 3월 1일~2008년 6월 20일
11대
정동기 (鄭東基)
부산
2008년 6월 23일~2009년 9월 1일
12대
권재진 (權在珍)
2009년 9월 1일~2011년 8월 5일
13대
정진영 (鄭鎭永)
대구
2011년 8월 20일~2013년 2월 24일
14대
곽상도 (郭尙道)
대구
2013년 3월 25일~2013년 8월 5일
15대
홍경식 (洪景植)
경남 마산
2013년 8월 5일~2014년 6월 11일
16대
김영한 (金英漢)
경북 의성군
2014년 6월 12일~2015년 1월 10일
17대
우병우 (禹柄宇)
경북 봉화군
2015년 1월 26일~2016년 10월 30일
18대
최재경 (崔在卿)
경남 산청군
2016년 10월 31일~2016년 12월 9일
19대
조대환 (曺大煥)
경북 청송군
2016년 12월 10일~2017년 5월 9일
20대
조국[18] (曺國)
부산
2017년 5월 11일~2019년 7월 26일
21대
김조원[19] (金照源)
경남 진주시
2019년 7월 26일~2020년 8월 11일
22대
김종호 (金宗浩)
경남 밀양시
2020년 8월 11일~2020년 12월 31일
23대
신현수 (申炫秀)
서울
2020년 12월 31일~2021년 3월 4일
24대
김진국 (金晋局)
전남 보성군
2021년 3월 4일~2021년 12월 21일
25대
김영식 (金泳植)
전남 함평군
2022년 1월 17일~현재

5. 문제점

 

6. 창작물에서의 등장

 
[1] 민정(民政)은 국민의 안녕 유지 및 행복 증진을 꾀하는 행정, 즉 국민의 뜻을 살피는 일이라는 의미이다.
[2] 2019년 9월 기준. 직위가 자주 변경될 수 있으니 청와대 홈페이지의 조직도를 참고하기 바란다.[3] 국세청장, 법무부 차관 등등 같은 행정부 소속 차관급 정무직공무원들보다는 확실히 우위에 서 있고
초선~재선 국회의원들 (거물급 초선~재선은 제외), 서울특별시장, 경기도지사를 제외한 
광역자치단체장들과 맞먹는 수준이다.
[4] 물론 비정치인 출신 허수아비 총리보다 민정수석이 우위에 있다는 얘기는 아니다.
아무리 허수아비 총리라도 행정부 2인자는 2인자다.
다만, 허수아비 총리든 민정수석이든 어느 쪽이 다른 한 쪽을 함부로 건드리면 큰일나기 때문에 서로 건드리지 않는다.
말단 공무원 끼리의 2계급 차이와 고위 공무원 끼리의 2계급 차이는 차원이 다르다.

 

[5] 다만 이들이 작정하고 밀어붙이면 민정수석이 한 수 접어야 한다. 
부리고 있는 공무원의 수가 넘사벽 어디까지나 함부로 하지 못할 뿐이라는 거지 굽신거린다는 얘기가 아니다.
물론 그쪽에서도 이쪽을 함부로 건드리면 큰일나기 때문에 서로 비등한 관계를 유지해나가고 있다.

 

 

[6] 전두환 정권 당시 초대 민정수석으로 발탁됐던 사람이 5공 정권 당시 최고 실세 중 한 사람이던 이학봉이다.
1980년부터 1986년까지 무려 6년에 걸쳐(!!!) 민정수석비서관을 지냈다.
당연히 역대 민정수석비서관 중 최장기 재임 기록으로 남아있다.
다만 초창기에는 이학봉의 군 선배들이었던 허화평(대통령비서실 보좌관, 정무수석 등 역임)과 
허삼수(사정수석 등 역임)의 권력이 더 강했으며, 이 둘은 권력이 너무 강했던 나머지 전두환의 눈밖에 나기도 했다.

 

[7] 그마저도 항명 파동으로 인해 재임기간을 겨우 두 달 조금 넘기고 사퇴했다.
[8] 한신대 교수 출신
[9] 사정수석
[10] 그렇기 때문에 종종 정권이 검찰에게 일종에 충격요법을 통해 장악력을 높이고자 할 때
비 검사출신 민정수석을 임명하는 방법을 고려하기도 한다.
[11] 검찰, 경찰, 국정원, 국세청, 감사원 등
[12] 최소 차관급 이상인 고위 공직자 임명절차에는 공직자 재산공개등 다양한 공직 검증과정이 필요하다.
이때 대통령은 법적인 조사권을 가진 검찰 등의 집단과 수시로 의사소통을 해야하는데,
이것을 맡는 것이 바로 민정수석 비서관실이다.
[13] 주로 예산권, 인사, 사정권이 언급된다.
[14] 물론 간접적으로 행사하는 거고, 직접 행사하는 인물은 대통령이다.
원칙적으로는 감찰권 및 인사 부적격시 인사 취소를 대통령에게 직언하는 것만 가능하나, 실질적으로 그게 인사권이니...
[15] 그나마도 짧게 재직
[16] 그나마 객관적인 입장을 가질 수 있던게 전해철이었지만 순수 변호사 출신이라 검찰같은 수사 경력은 없으며
그 역시 후보 시절부터의 노무현의 아주 열렬한 지지자였다.
[17] 한 사람이 민정수석비서관을 2번이나 역임한 것은 문재인이 최초다.
이 임기 후 대통령비서실장으로 이임한다.
아울러 민정수석 출신으로 대통령 자리까지 오르는 최초의 인물이기도 하다.
[18] 서울대 교수 출신으로 참여정부 마지막 민정수석비서관이었던 이호철 전 수석에 이어
10년 만에 등장한 비(非)사시 출신 & 법학자 출신 민정수석비서관이다.
[19] 국민의 정부 이후로 김성재 비서관과 함께 유이한 비법학/비법조계 민정수석이다.
김 수석은 행정학, 경영학 전공자로 감사 관련 경력을 가지고 있다.
나머지는 전원 법조인 내지는 법학 전공자였다.
[20] 서울서부지검장에서 민정수석으로 직행.
극중에서는 '청와대 수석비서관'이라고만 언급되지만 검사장이 사퇴 후 청와대 수석으로 직행했다면 민정수석 뿐 이다
.[21] 배우 김병옥이 연기.
[22] 배우 김민종이 연기.
[23] 배우 전혜진(1976)이 연기.
[24] 안석환이 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