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란?

무엇이 존엄한 죽음인가

황령산산지기 2021. 9. 19. 06:19


"나 좀 죽여줘. 제발 부탁이야."


아내는 일 년 동안 남편인 정씨(80세)에게 부탁했다. 차마 정씨는 아내의 부탁을 들어줄 수 없었다.

엄연히 살인이니까.


아내는 20년 전에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아내 병세는 조금씩 악화했고 아예 움직이지 못했다.

정씨는 아내 병간호뿐만 아니라 자녀 돌봄도 책임진 다중 간병인이다.

아들은 나이가 50살이지만 몸은 초등학교 1~2학년 수준이다. 키 130cm에 몸무게가 30kg 남짓이다.

아들은 장애를 안고 태어났다. 몸과 마음 발달이 더뎠다. 복합 장애 1급 판정을 받았다.

그래도 정씨 부부에게는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아들이다.

 

정씨 아내는 아들에게 물리치료, 재활치료, 음악치료까지 안 해본 게 없다.

그러나 아들의 병은 좋아지지 않았다.
30년간 아들 병시중을 한 아내가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그때부터 정씨는 아내와 아들의 병간호를 도맡아야 했다. 직장도 그만두었다.

모아두었던 돈도 집도 병원비, 간병비로 사라졌다. 아내는 이런 형편을 알았다.

자신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수 있다면 결행했을 텐데

혼자서는 화장실도 못 가는 상태인지라 남의 도움 없이는 죽을 수도 없었다.


그래서 남편 정씨에게 죽여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정씨도 병간호가 너무 힘들어 아내와 아들을 죽이고, 자신도 자살할 생각을 수도 없이 했다.

막상 아내로부터 죽여달라는 말을 듣자 아내와 아들을 끌어안고 울기만 했다.

언제까지 간병 문제를 외면할 것인가


안락사법 대화 모임을 진행 중인 노년유니온 조합원들
ⓒ 노년유니온


간병살인으로 일컬어지는 사례들이 있다.

간병살인을 한 이들은 주변에서 희생적인 부모이거나 효자, 효부로 불린 이들이었다.

하지만 끝 모를 간병의 터널에서 결국 무너졌다.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다른 가족의 삶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가정에서 돌봄을 받는 환자를 100만 명으로 추산한다.

20가구 가운데 한 가구는 누군가의 집에서 아픈 가족을 돌보는 것이다.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가족의 대소변을 받아내고 밥을 떠먹이고

욕창을 막으려 체위를 바꾸는 중노동을 일상처럼 반복한다.


'죽어서라도 모든 걸 끝내고 싶다'라는 생각을 정씨와 아내는 했을 것이다.

50세가 된 아들이 죽고, 한 달 후 아내도 죽었다.

 

두 사람을 하늘로 보내고 정씨는 호스피스 자원봉사를 하면서 자신의 마지막을 준비하고 있다.

정씨는 아내와 아들을 간호하면서, 호스피스 병동에서

시한부 사람들을 돌보면서 존엄한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게 됐다.

스스로 선택하는 죽음에 대하여


2018년 우리나라는 연명의료결정법에 따라 본인과 가족의 동의하에 연명하기 위한 치료를 중단할 수 있다.

이를 존엄사법이라고도 부르지만 정씨는 진정한 존엄사란 '죽음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죽음을 선택한다고 하면 자살과 똑같지 않냐고 묻는 사람이 있다.

자살은 대체로 충동적이고 폭력적인 방법을 동원한다.

또한, 격리 상태이거나 은둔 상태에서 고통스럽게 이루어진다.

 

그로 인해 가족과 친구들은 말할 수 없는 죄책감과 상처를 평생 안게 된다.

그러나 합법화된 안락사는 여러 가지 주변 여건을 숙고한 끝에 행하는 온건하고 평온한 죽음이다.

가족 구성원의 이해와 도움이 필수적이고 전문가들의 진단과 협의를 해야 한다.


정씨는, 자신이 정신은 멀쩡해도 육체 기능이 마비되는 징조가 보이면 안락사하고 싶다고 했다.

안락사처럼 죽음을 선택할 수 있어야 존엄한 죽음이라며

자신을 죽여 달라는 아내의 말이 무슨 뜻인지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고 한다.


2019년 서울신문과 비영리 공공조사 네트워크 공공의창이 전국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 한 결과 80.7%가 우리나라에서도 안락사 허용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안락사 찬성 이유는 '죽음 선택도 인간의 권리(52%)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는 병으로 인한 고통을 줄일 수 있기 때문(34.9%)도 안락사 찬성의 이유로 꼽혔다.


정씨가 존엄한 죽음을 맞으려면 스위스에 가야만 한다. 비용도 2천만 원이 든다.

낯선 이국땅에서 죽는 것이 존엄한 죽음은 아니지 않을까.

한국에서 안락사법이 만들어지면 2천만 원이 없어도

굳이 낯선 땅이 아닌, 자기가 살던 곳에서 자신을 알고 가까이 지내는 사람들의 배웅을 받으며

존엄한 죽음을 맞을 수 있다며 안락사법 제정을 힘주어 주장했다.

존엄사를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인도영화 <청원>


존엄사를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인도영화 <청원>
ⓒ UTV 모션 픽처


인도 영화 <청원>에서 마술사인 주인공은 14년 전 공연 도중 사고로 추락해 목뼈가 부러지면서 전신 마비가 된다.

몸속의 노폐물을 걸러주는 콩팥이 제대로 기능을 하지 못해 정기적으로 혈액투석을 받아야 하는 처지다.

14년 동안 방송 활동을 통해 전국의 전신마비 환자들에게 희망을 줬던 주인공은

몸 상태가 날로 악화하자 법원에 안락사를 청원하게 된다.


아들이 안락사를 도와달라고 한다면 어머니로서 돕겠느냐는 검사의 질문에 "네 돕겠습니다.

더는 아프지 않게 해주고 싶어요. 이제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주고 싶어요."라고 대답했다.

 

판사는 마지막으로 주인공에게 말할 기회를 준다.

주인공은 마술을 보여주겠다며 한 사람이 겨우 들어갈 수 있는 나무 궤짝을 가져오게 한다.

주인공은 60초면 끝난다면서 검사에게 마술의 신세계를 경험해 보라고 설득한다.


마지못해 궤짝에 들어간 검사는 잠시 후 숨이 막힌다며 비명을 지른다.

약속한 60초가 다 되어도 마술을 보여주지 않자 판사가 소리친다.

 

"지금 뭐 하고 있는 겁니까? 이런 게 마술입니까? 어서 검사를 꺼내주시오."

 

잠시 후 나무 궤짝에서 나온 검사는 숨을 헐떡이며 "이게 재미있습니까?

숨이 턱턱 막히고 죽을 것 같은데."라고 항의한다.

 

그러자 주인공은 "검사님은 14년간 전신 마비 환자로 살아온 저의 삶을 60초간 체험했습니다.

겨우 60초라고요"라고 담담히 말한다.

덧붙이는 글 |
* 이 글은 고현종 노년유니온 사무처장이 쓴 글이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에서 발행하는 격월간 <비정규노동>
9, 10월호 ‘백세노동’ 꼭지에도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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