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인간탁란을 연상케 하는 영화 비바리움(vivarium)

황령산산지기 2021. 5. 30. 06:11

반전 없는 영화를 상상할 수 있을까? 영화는 반전에 있다. 반전에 또 반전을 보면 영화보는 맛이 난다. 예전에 보았던 식스센스가 대표적이다.

반전영화 특징은 스릴과 서스펜스이다. 다음 장면이 어떻게 진행될지 모른다. 그래서 영화를 소개할 때 결말을 언급해서는 안된다. 영화보기를 망친다고 하여 스포일러가 되기 때문이다.

어제 영화채널에서 본 것은 비바리움이다. 2020년에 제작된 최신작품이다. 도중에 보았기 때문에 줄거리가 궁금했다. 인터넷 검색을 해 보았다. 다음과 같은 소개글이 있다.


함께 살 곳을 찾던젬마
중개인으로부터욘더라는 독특한 마을의 9호 집을 소개받는다. 똑같은 모양의 주택들이 즐비한 곳에서
알 수 없는 기묘함에 사로잡힌 순간, 중개인은 사라져 버린다.”

 



영화 비바리움은 2019년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 출품작이라고도 한다. 비바리움(vivarium)은 생태용어이다. 동물이나 식물을 관찰할 목적으로 지어진 생태적 공간을 의미한다. 영화에서는 기묘한 주택가 단지가 대상이다.

주택단지는 규격화 되고 획일화되어 있다. 어느 집이나 똑같은 모습이다. 마치 같은 틀로 찍어낸 공산품 같다. 마치 인조인간을 연상케 하는 무표정한 중개인은 가장 완벽한 안식처가 되어줄 거에요, 영원히라고 말한다. 이 말이 씨가 된다. 영화는 결국 이 말대로 흘러간다.

영화는 탁란(托卵)을 연상케 한다. 뻐꾸기의 탁란을 말한다. 언젠가 자연다큐에서 뻐꾸기 탁란을 봤는데 충격이 꽤 오래 갔다. 그런데 뻐꾸기 탁란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인간도 탁란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불효로 본다.

탁란은 뻐꾸기가 생존해 가는 방식을 보여준다. 뻐꾸기가 남의 둥지에 알을 낳는 것이 그렇고, 새끼뻐꾸기가 밀어내기 하는 것이 그렇다. 이 모든 방식이 충격적이다. 분명히 사람도 그런 사람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불효하는 자식이 그렇다.

역사적으로 왕이 된 자는 아버지를 죽이고 왕이 된 자가 많았다. 아버지를 밀어내고 왕이 된 자도 많았다. 오늘날에는 재벌가에서도 종종 볼 수 있다. 일반사람들도 재산문제로 부모를 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를 뻐꾸기 탁란으로 비유하면 지나친 것일까?

불교에 오역죄가 있다. 아버지를 살해하거나 어머니를 살해하는 등 다섯 가지 무간업을 말한다. 오역죄를 지으면 지옥에 떨어지는데 한우주기가 끝나도 구원받지 못한다고 한다. 세계와 세계 사이에 있는 빛의 사각지대에서 한량 세월동안 암흑의 무간지옥에서 살아야 함을 말한다.

부모살해는 최악의 범죄행위에 해당된다. 아라한을 살해하는 것과 같고, 부처 몸에 피를 내는 것과 같다. 악인의 대명사 데바닷따와 같은 사람이다. 그런데 부모살인에 준하는 불효를 했을 때 뻐꾸기 탁란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어찌보면 인간탁란이라고 볼 수 있다.

부모자식간의 관계는 특별하다. 이 세상에 존재하게 된 것은 부모가 있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부모는 길러 주었다. 교육도 시켜 주었다. 그런데 부모 재산이 탐이 나서 빼앗으려 한다면 이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악의적 상속자가 되려 할 때 인간탁란이라 해야 할 것이다.

불효는 언제 발생할까? 부모가 가난하다면 덜 할 것이다. 부모가 부유하다면 불효자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 부모재산 그거 하나 바라보고 사는 자식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속을 기대하며 부모가 빨리 죽기만을 바랄지 모른다.

요즘 청년들 희망이 없다고 한다. 기대할 것은 상속밖에 없다는 것이다. 어떤 기사에 따르면 부모가 63세에 죽으면 가장 좋다는 것이다. 많이 소유함으로 인해서 좋기도 하지만 소유가 괴로움일 수도 있다.

가진 것이 많으면 자식에게 많이 물려줄 것이다. 그러나 자식의 자립을 방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나중에는 다 차지 하고자 할 것이다. 부모 재산을 빼앗는 행위야 말로 왕권을 탈취하는 것과 같고 부모를 살 하는 것과 같다.

영화 비바리움을 보면서 뻐꾸기 탁란이 연상되었다. 자연스럽게 인간탁란도 연상되었다. 탐욕의 상속자가 되었을 때 뻐꾸기새끼나 다름 없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제석천상윳따 7대 서원을 보면 기장 첫번째가 나는 살아 있는 한 아버지와 어머니를 부양하리라.”(S11.11)이다.

부모 살아 있을 때 효도하라고 했다. 부모가 돌아가시고 나니 효도할 대상이 없다. “이럴줄 알았으면 살아 계실 때 잘할껄이라고 후회가 든다. 누구나 다하는 말이다. 알면서도 실천하지 못하는 것이다.

영화 비바리움을 보면서 불효가 생각나는 것은 어떤 이유일까? 그것은 인간의 도리를 다하지 못한 자책이다. 한분이라도 남아 있다면 도리를 다해야 할 것이다. “나는 살아 있는 한 아버지와 어머니를 부양하리라.”라고.


2021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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