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인가?" - 그러나 그 작업은 철저히 혼자서 해내야 한다.
너희는 자신의 판단에 따라 '자신'의 초상을 그린다.
사실 너희 국가들은 자신의 판단에 따라 이미 그런 그림들을 그려왔다.
너희 종교들은 자신의 판단에 따라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인상들을 창조해왔다.
너희 사회들 역시 자신의 판단에 따라 나름의 자화상들을 그려왔다.
너희는 이런 그림들이 마음에 드는가? 너희가 만들고 싶은 인상들이
이런 것들인가? 이런 초상화들이 '자신이 누구인지' 말해주는가?
이런 의문들을 다를 때는 신중해야 한다.
이런 의문들은 아마 네게 생각을 요구할 것이다.
생각하기는 힘든 일이다. 가치판단 내리기 역시 어려운 일이다.
그것들은 너를 순수한 창조의 자리에 서게 한다.
왜냐하면 너희가 "난 모르겠어. 정말 모르겠다구"라고
말할 수밖에 없을 때가 무수히 많을 터이기에.
그럼에도 너희는 판단해야 하고,
그에 따라 선택해야 할 것이다. 너희의 임의대로 선택해야 할 것이다.
그런 선택, 전혀 자신의 지식에서 비롯되지 않은 판단을 순수한
창조라고 한다. (옮: 이 부분이 좀 이상하네요. 변역상의 오류같아요.
자신의 지식에서 비롯된 판단을 순수한 창조라고 한다가 문맥상 맞을 것 같아요)
그리고 너희는 그런 판단을 내리면서 자신을 창조한다는 사실을 깊이 자각하게 된다.
너희 대부분은 그처럼 중요한 일에 관심이 없다.
오히려 대부분은 그런 일을 남들에게 맡겨버리고 싶어한다.
그리하여 너희 대부분은 스스로 창조하는 존재가 아니라 습관의 피조물,
다른 사람이 창조한 피조물이 되고 만다.
그런데 남들이 너희더러 이러저러하게 느껴야 한다고 말했는데,
그것이 너희가 느끼는 것과 정면으로 충돌할 때,
너희는 깊은 갈등을 체험한다. 그럴 때면 너희 내면 깊숙히
자리잡은 어떤 것이, 남들이 애기해준 것은 '자신'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이제 그걸 가지고 어디로 가겠는가?
어떻게 하겠는가?
너희는 제일 먼저 종교인들에게 달려간다.
애초에 너희를 그런 처지에 빠트린 바로 그 사람들에게.
너희는 너희의 사제와 랍비와 목사와 선생들에게로 달려간다.
그러면 그들은 너희 자신에게 귀 기울이길 그만드라고 말해준다.
그 중 가장 고약한 이들은 너희에게 겁을 줘서
자아에서 멀어지도록 만드는 사람,
겁을 줘서 너희가 직관으로 느끼는 것에서 멀어지게 만드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마귀와 악마와 귀신과 악령과 지옥과 저주를 비롯하여
자기네가 생각해낼 수 있는 온갖 무시무시한 것들을 다 동원할 것이다.
너희가 직관으로 알고 느끼는 것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어째서 너희가 위안을 찾을 수 있는 유일한 곳이
자기네 사상과 관념과 신학과 자기네 '선악규정'과
자기네의 '자아'개념 뿐인지 너희에게 납득시키려고,
여기서의 유혹은 너희가 그들의 말에 동의만 하면
즉각 그들의 인정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동의하라. 그러면 너는 당장 인정받으리니.
심지어 노래하고 소리치고 춤추고 팔을 흔들어대면서
할렐루야를 외쳐대는 사람까지 있다!
그런 유혹에, 즉 자신이 빛을 봤고,
자신이 구원받았노라는 그같은 인정과 그같은 환희에
저항하기란 쉽지 않다
인정과 시위가 내면의 판단을 동반하는 경우는 거의 없고,
축하가 진실을 따르려는 개인의 선택을 포용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아니, 정반대이다. 아마 다른 사람들은 축하하지 못할 뿐 아니라,
사실상 너희를 조롱하기까지 할 것이다.
뭐라고? 너 혼자 힘으로 생각한다고? 스스로 판단한다고?
너 나름의 척도, 너 나름의 판단, 너 나름의 가치관을
적용하겠다고? 도대체 넌 자신이 누구라고 생각하는 거지?
사실 너희가 대답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질문인데도 말이다.
그러나 그 작업은 철저히 혼자서 해내야 한다.
어떤 보상도, 어떤 인정도, 그리고 아마 어떤 관심도 받지 못하면서,
그래서 너희는 이런 아주 좋은 질문들을 던진다.
왜 그런일을 계속해야 하지요? 애당초 그런 길로 나서야 하는 이유가
뭡니까? 그런 여행을 해서 뭘 얻을 수 있단 말입니까?
그렇게 해야 할 동기나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그것말고는 달리 할 일이 없기 때문에.
그게 무슨 뜻입니까?
그게 이 마을에서 할 수 있는 유일한 게임이란 뜻이다.
다른 할 일은 없다. 사실 그것말고 너희가 할 수 있는 건 없다.
너희는 태어난 이래 줄곧 그래왔듯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앞으로 남은 여생 동안에도 계속할 것이다.
유일한 문제는 너희가 그 일을 의식하면서 하느냐,
의식하지 않고 하느냐뿐이다.
알다시피 너희는 그 여행을 도로 물릴 수 없다.
너희는 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에 이미 그 길에 들어섰다.
너희의 탄생은 그 여행이 시작되었다는 신호탄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그런 길로 나서야 하는 이유는 문제가 아니다.
너희는 이미 그 길로 들어섰으니까.
너희는 심장의 첫박동과 함께 그 여행길을 올랐다.
문제는, "이 길을 의식하면서 걷고 싶어하는가,
의식하지 않고 걷고 싶어하는가? 자각하면서인가,
아니면 자각하지 않고인가? 내 체험의 원인으로서인가,
아니면 그것의 결과로서인가?" 이다.
너희는 삶의 대부분을 자신의 체험 결과에 따라 살아왔다.
그러나 이제 너희는 체험의 원인이 되라는 권유를 받고 있는 중이다.
의식하는 삶이란 게 바로 이런 삶이고,
자각하면서 걷는다는 게 바로 이것이다.
(옮: 자신이 모든 체험의 원인이 되는 요령은 의식하면서 삶을 살아보라는
말씀인데,초의식 - [현재]의식 - 잠재의식 중에서 '현재의식'에
자각을 하면서 살아보라는 말씀 같습니다.)
그런데 너희 중 많은 이들은 내가 말했듯이,
꽤 먼 거리를 걸어왔다.. 너 역시 적지 않은 진전을 이루었다.
그러니 자신이 그 많은 생을 거친 끝에 '고작' 여기까지밖에 못왔느냐고
느끼지 마라. 너희 중 일부 사람은 높은 단계로 진화하여
자신을 확연히 의식하고 있다.
너 역시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이 어떤 존재가 되고 싶은지'
알고 있다. 게다가 너는 여기서 거기까지 가는 방법도 안다.
그건 굉장한 징조이고 확실한 징후이다.
무슨 징후요?
이제 네게는 불과 몇생애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나타내는.
그게 좋은 일인가요?
지금의 네게는 그렇다. 그리고 네가 좋은 일이라 여기기 때문에 그렇다.
불과 몇생에 전까지만 해도 이곳에 머무르는 것이 네게 원하는 전부였다.
그런데 이제는 떠나는 것이 네가 하고 싶은 일의 전부가 되었다.
이것은 아주 좋은 징조다.
불과 몇생에 전까지만 해도 너는 온갖 것들을 죽였다.
곤충, 식물, 나무, 동물, 사람들을. 그런데 이제는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왜 하고 있는지 정확히 알지 않고서는
그 무엇도 죽이지 못한다. 이것은 아주 좋은 징조다.
몇생에 전까지만 해도 너는 삶에는 어떤 목적도 없다는 듯이 삶을 살았다.
그런데 이제는 자신이 삶에 부여한 목적을 빼고는,
삶에는 아무 목적도 없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고 있다.
이것은 아주 좋은 징조다.
몇생에 전까지만 해도 너는 진리를 보여달라고 우주에 간청했다.
그런데 이제 너는 자신의 진리를 우주에게 이야기 한다.
이건 아주 좋은 징조다.
몇생에 전까지만 해도 너는 부와 명성을 추구했다.
그런데 이제 너는 놀랍게도 그저 자신이 되고자 할 뿐이다.
그리고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너는 나를 두려워했다.
그런데 이제는 나를 네 동무라고 부를 정도로 나를 사랑하고 있다.
이 모든 게 다 정말 정말 좋은 징조이다.
후와`````` 당신은 저를 기분좋게 해주시는군요.
당연히 좋아야지. 문장 속에 "후와"란 말을 사용하는
사람이라면 기분이 나쁠 리 없지.
당신은 정말 뛰어난 유머감각을 지닌 분이군요......
유머를 발명한 게 바로 나라는 데도!
그래요, 전에도 그렇게 말씀하셨댔죠. 아무튼 좋습니다.
요컨대 이 길을 계속 가야 하는 건 달리 할 일이 없기 때문이라 건군요.
바로 이게 이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고요.
바로 맞혔다.
그렇다면 한 가지 여쭤볼께요. 이 길을 가는 일이 앞으로
좀더 수월해지긴 하는 겁니까?
오, 내 친애하는 친구여, 지금의 너는 삼(3)생애 전보다 훨씬 더 수월하게
그 일을 해내고 있다. 내가 말로 표현할 수도 없을 만큼.
그렇고 말고, 그것은 갈수록 쉬워진다. 말하자면 네가 더 많이 기억할수록,
너는 더 많이 체험할 것이며, 더 많이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네가 더 많이 알수록, 너는 더 많이 기억해낸다.
그것은 일종의 순환이다. 그렇다. 그 일은 갈수록 쉬워지고,
갈수록 나아질 것이며, 갈수록 즐거워지기까지 할 것이다.
하지만 그 일의 어떤 측면도 진짜로 고된 적은 없었다는 걸 잊지 마라.
요컨대 너는 그 모든 걸 사랑했다! 순간순간마다!
아, 인생이란 참으로 달콤한 것이다! 그건 굉장한 체험이다.
그렇지 않은가?
음,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런 것 같다구? 내가 인생을 이 이상 얼마나 더 굉장한 것으로
만들 수 있게느냐? 너는 모든 걸 다 체험할 수 있지 않느냐?
눈물, 기쁨, 고통, 즐거움, 환희, 극심한 우울, 승리,
패배, 무승부, 그 이상 또 뭐가 있지?
아마 고통이 좀 덜해지는 게 있겠죠.
지혜가 더 높아지지 않으면서 고통만 줄면 너희의 목적을 이룰 수 없다.
그렇게 되면 너희는 무한한 기쁨, 곧 나라는 존재를 체험할 수 없다.
참을성을 가져라. 너는 지혜를 얻고 있다.
그리고 이제 너는 점점 더 고통 없이도 즐거움을 누려가고 있다.
이 역시 아주 좋은 징조다.
너는 고통 없이 사랑하고, 고통 없이 떠나보내고,
고통 없이 창조하고, 고통 없이 우는 법까지 배워가고(기억해내고)
있다. 그렇다. 내 말뜻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너는 고통 없이
고통스러워할 수도 있다.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습니다. 저는 제 자신의 인생드라마까지도
더 즐길 우 있게 되었습니다. 제 삶에서 멀찌감치
물러나 그것을 있는 그대로 볼 수도 있고요. 웃기까지 하죠.
바로 그거다. 그리고 너희는 이런 걸 성장이라고 하지 않느냐?
그런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계속 성장하도록 하라, 내 아들이여.
계속 되어가라. 그 다음의 네 최고 자아상 속에서
네가 되고자 하는 바를 계속 판단하도록 하라.
계속 그것을 향해 작업해가라.
계속하라! 계속하라! 이것이 우리가,
너와 내가 해내고 있는 신의 일이다.
그러니 계속 나아가도록 하라!
- 신과 나눈 이야기 1권중에서 -
'알송 달송'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존재하는 것'과 '일어나는 일'은 둘이 아니다 (0) | 2020.05.31 |
---|---|
만물 속에 침투해 있는 영 (0) | 2020.05.24 |
초인 대사들이 답해주는 삶의 의문에 관한 100문 100답 중 일부 (0) | 2020.05.24 |
한약과 양약의 차이 (0) | 2020.05.24 |
지구의 마지막 시기 (0) | 2020.05.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