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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동아시안컵에서 등장한 수자기(帥子旗)|

황령산산지기 2019. 12. 22. 10:46

류비아      

어제 동아시안컵 축구대회에서 익숙한 깃발을 발견하고, 그 깃발에 대해 잠시 이야기 하고자 합니다.

바로 ‘수자기(帥子旗)' 입니다.(깃발의 위아래가 바뀌긴 했지만..)


"수자기"는 장수를 뜻하는 ‘수(帥)’라는 글자가 한가운데 적혀 있는 깃발로 총지휘관이 있는 본영을 표시하기 위해 세웠습니다.

조선 후기 병서 ‘병학지남연의’에 따르면 수자기는 넓이 12폭, 길이 16척 무명에 12척 길이의 ‘수’자를 써넣었다고 하네요.

조선시대의 수군(水軍), 대장선의 수자기.
(육군과 해군의 수자기는 보시는것 처럼, 서로 바탕과 글씨의 색(色)이 다릅니다.)



수자기와 관련하여 대중에게 가장 익숙하고, 많이 알려진 것이 바로 ‘어재연 장군 수자기’일 겁니다.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에서도 잠깐 등장합니다.




잠깐, 어재연장군에 대해 언급하고 가겠습니다.

魚在淵
1823년(순조 23년)~1871년(고종 8년)


신미양요가 발생하자 전황은 좋지 않게 흘러가는데, 미군이 초지진과 덕진진을 점령하고 본진인 광성보로 쳐들어온다. 이에 600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광성진에서 배수진을 치고 수비하던 그는 6월 11일에 덕진진까지 점령한 미군의 총공세에 맞서 고군분투하였다.

여기서 손돌목돈대까지 밀리자 어재연 장군은 자신의 휘하 군사 350명과 함께 최후의 전투 준비를 하게 된다.


손돌목돈대에서 미군과 조선군은 치열한 백병전을 펼친다.

어재연 장군은 수륙 양면 작전을 전개하는 미군에 맞서 싸우며 야포 사격을 전개하다가

육박전에 돌입해서 끝까지 물러서지 않고 싸우다가 미군이 찌른 총검에 장렬히 전사하였다.


이 전투에서 조선군은 어재연 및 어재순과 휘하 군사 53명이 전사하고, 100명이 자결하고 20명이 포로로 잡히는 처참한 패배를 당한다. 하지만 자신들과 끈질기게 싸운 조선군을 높이 평가한 미군이 어재연을 포함한 장교진들을 정중히 매장해준다.

충북 음성군 대소면에 위치한 그의 묘소.





어재연 장군의 수자기 크기는 가로, 세로 각각 4.13m, 4.3m 정도라고 하는데

아래 사진을 보시면 그 크기가 대략적으로 짐작 가실 겁니다.

이 수자기는 위에 언급한 1871년 신미양요 당시 광성진을 함락한 미군이 전리품으로

(미군의 기록에 의하면 당시 포대에 꽂혀있던 수자기를 조선군4명이 몸으로 애워싼것도 모잘라

 끈으로 몸과 수자기를 결속하고 지켰다고 합니다. ㅠㅠ)

가져간 이후 미국 해군사관학교 박물관에 계속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던 가운데 2007년, 해외 유출문화재 반환 운동의 결과로 10년간 장기 대여 형식으로 국내 귀환이 결정되었고 결국 136년 만에 다시 돌아오게 됩니다. 이후 반환 전까지 강화박물관에 보관 및 전시되고 있습니다.(현재는 복제품이라고 합니다.)

사진은 2007년, 서울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린 어재연 장군기 공개설명회에서

해군 간부들이 136년 만에 귀환한 장군기 앞에서 예의를 표하고 있는 장면입니다.



2018년 제주 국제관함식에서 대통령이 사열한 일출봉함에 수자기를 게양한 것을 두고 일본은 뜬금없이 시비를 겁니다.

임진왜란에서 왜군을 완벽하게 제압했던 이순신 장군을 상징하는 깃발이라는 이유였습니다.

코웃음밖에 안나오는 상황이죠.
지들이 전범기 사용하는건 아몰랑! 시전중인 놈들이.....

아무튼, 어제 동아시아축구에서 등장한 수자기는 한일 간 경기인 만큼,

한일전의 대표적 상징이신 이순신 장군을 생각하고 들고 오신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순신장군은 수군인데, 축구는 땅에서 하는거라서 육군수자기를 들고오셨겠죠.)

-끝-


댓글로 본문에 미처 언급하지 못하거나, 미흡한 내용의 보충설명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