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다Narada의 일화
마음 중에서 가톨릭, 공산주의, 유태인, 자이나교도 등 그 어떤 종류의 마음도 모두 똑같다. 마음은 하나의 질병이다. 그리고 모든 마음은 그대 주변에 감옥을 만든다. 다양한 종류의 감옥이 있다. 건축양식과 재료가 다를 뿐이다. 어떤 것은 석조이고 어떤 것은 벽돌, 혹은 나무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재료는 중요하지 않다. 그대가 감옥에 가둬졌다는 게 문제이다.
가톨릭의 마음과 힌두교의 마음은 서로 다른 개념, 서로 다른 이데올로기에 뿌리를 두긴 하지만, 모든 마음은 이데올로기를 필요로 한다. 비록 신을 믿지 않는 무신론자도 감옥 안에서 살아간다. 그는 자신을 무신론자라고 여기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그의 무신론이 바로 그의 신앙이다. 그는 신자들이 열심히 믿는 것과 같이 열광적으로 불신한다. 때로는 더 열광적으로 자신의 무신론을 믿는다. 신을 믿는 사람들은 매우 일요일에 교회에 가서 가끔씩 신을 떠올리지만, 무신론자는 끊임없이 신을 반대하는 주장을 편다. 무신론자야 말로 신을 끊임없이 떠올린다.
인도 경전에 나오는 멋진 일화가 있다.
대단한 귀의자로 알려진 나라다Narada가 죽어갈 때, 신이 그의 눈앞에 나타났다. 과거에는 그런 일들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런 일은 없다. 다음 생에서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면 뭘 원하는지 신이 그에게 물었다.
나라다가 답했다.
“저는 다음 생에 무신론자로 태어나고 싶습니다.”
신은 깜짝 놀랐다. 신이 궁금해서 다시 물었다.
“뭐라고? 무신론자로 태어나고 싶다 했느냐? 내 이름을 노래 부르듯 외치며 살아온 자네 같은 귀의자가 말이야.”
나라다가 말했다.
“네, 그렇습니다. 제가 귀의자이긴 하지만 당신을 계속 잊어먹게 됩니다. 하지만 저는 무신론자들이 결코 당신을 잊지 않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다음 생에는 무신론자가 되고 싶은 겁니다. 그래야 당신을 영원히 잊지 않을 테니까요. 저는 단 한 순간도 당신을 잊고 싶지 않습니다. 이제 당신은 제 마음 속에 유일한 존재입니다. 하지만 무신론자에겐 당신이 전부인 것처럼 보입니다. 비록 그가 당신을 부정하더라도 그는 늘 당신을 떠올립니다. 그러니 제게 은총을 내려주신다면, 저를 무신론자로 태어나게 해주십시오. 그러면 저는 항상 당신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을 겁니다.”
무신론자와 유신론자가 서로 다른 배를 타고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아주 재미있는 일화이다.
공산주의자는 항상 신을 반대하는 주장을 편다. 사실 그는 신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칼 마르크스가 왜 신에 대해 신경을 쓰겠는가? 경제학에 관한 한 신은 전혀 개입하지 않는다. 신은 경제이론이 아니다. 하지만 마르크스는 늘 신이라는 존재에 집착했다. 그는 마치 신이 자신을 계속 괴롭히고 있다는 듯 끊임없이 신을 부정했다.
이들은 모두 광신도에 지나지 않는다. 신봉자, 무신론자, 힌두교도, 회교도, 기독교도 모두가 광신도이다. 그리고 광신도는 결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않는다. 그래서 그가 광신도인 것이다. 광신도가 추구하는 신조는 이렇다.
‘우리는 옳다. 사실에 현혹되지 마라. 사실이 말하는 건 모두 틀린 법이다. 우리는 이미 진실이 무엇인지 결론 내렸다. 이제 사실이 우리의 신조에 따라야 한다. 그 반대는 안 된다.’
이 모든 이데올로기는 심각한 불구자들에 의해 만들어졌다.
물론 가톨릭 신자의 마음은 세상에서 가장 심각하게 왜곡되고 불구가 된 마음 가운데 하나이다. 그것은 매우 억압적이기 때문이다. 뭔가를 억압하면, 그대는 추악해지기 때문이다. 억압된 것은 모두 그 자리에 고착된다. 거기에 고착될 뿐만 아니라 점점 더 강력해진다. 억압된 것은 차츰 에너지를 축적해간다.
밖으로 표현된 에너지는 수증기처럼 증발한다. 예를 들어, 다른 사람처럼 일상적으로 화를 내는 사람-그에게 욕하면 그는 화를 낸다-은 그다지 위험한 사람이 아니다. 그는 많은 에너지를 안에 축적하지 않기 때문에 자신이 위험한 상태라는 걸 드러내 보인다. 하지만 자신의 화를 억누르는 사람은 마치 활화산 위에 앉아있는 모양새와 같다. 그 화산은 언제든지 폭발할 수 있다. 그런 사람은 자살을 감행하거나 살인을 저지를 수도 있다. 그것보다 더 하면 더 했지 덜 하진 않을 것이다.
오쇼/사랑의 연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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