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송 달송

[스크랩] 에고(ego)와 참나(眞我)

황령산산지기 2017. 7. 31. 10:20

에고(自我)는 외부와 구분되어 있음을 인식한 생명체가 동일한 주체로서 인식하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단일체를 말한다.

생명체는 살아가면서 외부와 경계를 짓고, 또한 생존하기 위해서 환경과 끊임없이 소통을 한다.

당연히 사람도 여기에서 예외가 될 수 없다고 여겨진다. 

지구상의 최초의 생명체는 아마도 박테리아 처럼 하나의 세포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단일한 세포들이 생존이라는 목적을 효율적으로 달성하기 위하여, 점차 연합해서 인간까지 이르렀다고 보여진다.

인간이 문화를 이루고 통찰(아하!반응)을 다른 동물보다 잘하는 것은 연산속도가 빠르기 때문이다.

즉, 뇌세포의 발달로 뇌의 각 영역이 발달했으며, 즉각적인 감성보다는 효율적인 이성을 추구함의 결과이다.

물론 생존이라는 본능을 추구함에 있어서 감성보다 이성이 늘 우위를 차지하지는 않는다.


이성은 논리적, 순차적으로 오는데에 비하여 감성은 한 번에 우리에게 다가온다고 보여진다.

경험(간접, 직접)에 의해 주로 오는 이성은 미지의 상황에서는 대처하기가 쉽지 않다.

오히려 이런 경우에는 감성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낳을 수 있다고 여겨진다.

그리고 창조적인 것들은 이성과 논리보다는 감성에 좌우되는 경우가 많다고 하겠다.


3차원의 세계에서 모든 생명체는 외부와 경계를 짓고, 또한 외부와 소통하면서 생존이라는 목적을 향해 나간다.

여기에서 최초의 단세포들은 점차로 자기를 잃어 버리고, 경계 지어진 전체 몸을 위하여 희생(?)한다.

살아 가는 동안에는 끊임없이 새로운 세포들이 생성되며, 효용을 다한 세포들은 생명을 잃어 버린다.

우리의 에고도 마찬가지로 보여진다.


아기였을 때의 자아와 청소년기의 자아, 그리고 노년기의 에고는 모두 다르다.

전체로서 나를 인식하는 것은 변함이 없지만 에고 자체가 변한다고 하겠다.  마치 우리 몸이 변하는 것처럼. 

외부와 경계를 짓고 나를 인식하는 에고가 있는 이상, 탐진치 또한 어쩔 수 없이 따라온다고 보여진다.

그러므로 삶에서 욕망이란 당연하고 있을 수 밖에 없다고 여겨진다.


G. 프로이트는 인간을 본능체(이드), 자아체(에고), 초자아체(슈퍼에고)로 분류하였다.

아마도 인간이 다른 생명체와 다른 점은 초자아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즉, 나를 확장해서 더 큰 나를 이루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박테리아나 단세포생물들이 이드만을 가지고 있다면, 동물과 식물들은 에고까지 있다고 보여진다.


천변만화의 세계에서 나는 무었인가?

나의 몸이 변하고, 나의 의식이 변하며, 전체로서의 나는 끊임없이 변화할 수 밖에 없다.

즉, 나는 유동적이라고 보여진다.

우리가 스스로 경계를 짓고 나를 인식해서 존재하는 것이지 나라고 할 것이 없는 셈이다.


피부의 세포는 나의 몸을 이루고 있는 동안에는 나라고 인식된다.

그러나 생명력을 잃고 몸에서 분리되는 순간, 불결하게 인식되며 혐오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터럭이 몸에 있을 때는 내 몸의 일부라고 인식되지만 떨어져 나가는 순간에는 내가 아니다.

마찬가지로 음식물이 밖에 있을 때는 나하고 분리되지만, 몸에 흡수되는 순간에는 나의 몸이 된다.


명상 중에, 유체이탈을 하는 동안에, 아니면 임사체험을 하다가 내 몸과 상관없이 나를 보는 경우가 있다.

즉, 내 몸과 분리되어서 인식하는 또 다른 내가 있는 경험을 하는 사람들이 간혹 있다.

이런 경우에는 의학에서는 뇌의 착각으로 본다. 

즉, 뇌의 착각으로 실재하지 않는 것을 있는 것으로 느낀다고 여긴다.

그러나 착각으로 여기기에는 너무도 사실에 부합하고 정확하게 경험을 한다고 여겨진다.


이미 정신병리학에서 거의 확고하게 굳어진 다중인격(해리장애)은 내 몸에 여러개의 내가 있다고 하겠다.

과거에 '귀신들린 자'로 불려졌던 이들은 대부분 다중인격을 지칭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른바 '접신(接神)'을 하는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내 몸에 다른 인격이 들어와서 들어온 인격이 나를 대표하는 경우라고 보여진다.


내가 하나의 단세포일 때는 나의 몸이 하나였다.

그러나 여러개의 세포가 모여서 몸을 이룰 때는 무의식적으로 하나의 의식을 가지며 역시 하나의 몸으로 인식한다.

기억도 마찬가지로 보인다.

우리 몸의 기억저장은 뇌에 하는 것이 아니라 각 세포에 저장된다고 여겨진다.

뇌는 각 세포에 있는 기억(경험)을 가지고 연산작용을 함으로써 효율적인 전체 세포의 생존을 모색한다고 본다.


마음도 각 세포에 있다고 여겨진다.

마음을 주관하는 것은 심장에서 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전체적으로 각 마음이 100개조(?) 쯤 있는 셈이다.

경계를 벗어나면 외부의 것들도 나의 마음이 된다.  꽃을 보면, 사랑하는 사람을 쳐다보면 나의 마음이 그 곳으로 간다.

바라보는 곳에, 향하는 곳에 나의 마음이 존재하는 것이다.


우리의 몸도, 기억도, 마음도 경계를 벗어나면 없어지기도 하며 전체에 존재하기도 한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속에서 우리 스스로가 경계를 짓고 스스로를 제한한다고 보여진다.

나의 경계가 넓어져서 가족이 내가 되고, 사회가 내가 되며

온갖 동물과 식물이 내가 될 때에는 나는 궁극적으로 만물에 존재하기도 하며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


나는 과연 지금 어디에 있는가?



출처 : 그날이 오면.....
글쓴이 : 조만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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