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과 과학이 분리된 것은 르네상스시대 부터이다.
중세의 어두움을 벗어나기 전까지 유럽은 형식적으로 신정(神政)국가였다.
천문학에서 시작된 과학은 그 전까지의 철학및 과학(신학)을 깨뜨렸다.
그리스의 철학자및 과학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로 대변된다.
플라톤은 이데아계의 투영이 물자계(현상계)로 봤다.
즉, 이 세상은 어디쯤에 있는 천국의 투영(그림자)으로 봤으며, 이 후에 기독교의 교리에 차용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물질에는 곧 정신이 포함되어 있다고 여겼으며
물질론으로 대변되는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현대의 과학문명은 르네상스기에 기초를 확립하고 근대이후에 비약적으로 발달하였다.
20세기에 들어와서 컴퓨터의 발명및 활용으로
과거 백여년의 발전이 일년에 이루어지는 속도로 문명이 발전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더구나 양자물리학의 발전으로 지금까지의 철학및 과학이 새로운 차원으로 전환하고 있다고 하겠다.
분석과 해부로 대변되던 과학은 21세기에 들어와서는, 거시와 통합으로 대변되는 길을 가고 있으며
학제학이나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결합으로, 새로운 방향및 동양사상에 주목하며 획기적으로 발전하리라고 여겨진다.
통섭은 "막힘없이 두루 통함"으로 월리엄 휘웰에 의해서 제안됐으며,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결합을 의미한다.
인문학과 자연과학을 통합해서 공통의 기반을 마련하여, 두루 통하는 논리를 개발하고자 함이었다.
정의(正義)는 막연한 개념으로 누구나 자기의 생각및 행동을 정의라고 주장할수 있게 된다.
태극기집회에서나 촛불집회에서도 모두 자기들이 정의를 대변하고 있다고 여긴다.
그러므로 추상적인 정의보다는 공의(公義)란 개념이 좀 더 구체적이라고 보여진다.
민주주의는 다수결의 원리에 의하여 운영되므로 "힘(권력)이 곧 정의"라는 말은 통하지 않는다.
정당한 방법으로 획득된 권력이어야 하고 정당한 방법으로 권력이 행사되어야 하므로
탄핵정국에서는 태극기집회보다 촛불집회가 공의라고 여겨진다.
유대교문화에서 태어나고 자라난 예수는 성경에 기술된 것에서 보면 한 번 분노를 나타낸 적이 있다.
유대교회당이 장사하는 사람들에게 점령?당해서 시장통이 되자 장사꾼들을 때려서 내쫒은 적이 있다.
예루살렘에 입성시, "호산나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찬미 받으소서"라고 군중들이 외치고
주변인들이 군중들을 만류하자, "저들이 소리 지르지 않으면 돌(성벽)이 소리 치리라."고 했다.
호산나는 "우리를 구원하소서"라고 번역된다.
공의를 구현하는 일에는 모든 일들이 협력하며, 침묵하는 것은 불의와 같다고 보여진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하여 경계를 짓고, 경계를 지음으로서 타자와 나를 구별하게 된다.
개체로서의 생명은 태어남과 성장과 병과 죽음이 있지만, 본질적으로 보면 생노병사가 없다.
오로지 변화만이 존재할 뿐이다.
전체인류로서 사람이 계속 존재하려면 서로 투쟁하지 말고 협력해야 한다고 본다.
왕조시대에서 폭군과 성군의 차이는 나와 모두를 같이 보느냐 보지않느냐의 차이라고 보여진다.
같은 생명으로서 같은 인간으로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홀로 존재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보여진다.
나의 생존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적대적이기 보다는 협력적이어야 한다고 여겨진다.
"극도의 이기주의는 이타주의이다."
다만, 여기에서는 어느 정도의 앎(DNA에 새겨지는)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보여진다.
내가 가족에게 확장되는 것은 자연스럽게 보인다.
그러나 가족을 넘어서 사람들에게 혹은 인간이 아닌 생명들에게까지 확장되는 것은 어렵다.
학문의 세계에서 학제학이나 통섭이 대두됨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정신이 없는 과학은 인류를 오히려 피폐해지게 할수 있으며
여러학문의 융합으로 절제와 유익한 방향으로, 그리고 더욱 더 발전하리라고 여겨진다.
21세기는 대립과 분열의 시대를 벗어나서 상생과 화해의 시대로 보여진다.
그러나 공의를 벗어난 무리들에게는 당연히 분노를 표하고 치죄를 해야한다.
아직까지 인류는 각성의 초입에 있다고 보이며
대부분은 각성을 하는 중이거나 미혹에 빠져있어 보인다.
지금도 구시대의 사고방식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발휘하며
기득권자들은 새로운 방식으로 착취와 탄압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성인으로 추앙받는 이들도 분노할 때는 분노했고, 행동으로 나타날 때는 행동으로 말로 표현했다.
모든 사람들을 존중해가며 선의로 대한다는 것은, 자기및 다른 사람들에 대한 기만이라고 본다.
더구나 탄핵정국의 끝을 향해가는 시점에서, 옛것을 마무리하고 새로운 시대로 가기 위해서는
지나간 것을 평가하고 단죄할 것은 단죄하면서 새시대로 가야 한다고 여겨진다.
'알송 달송'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트럼프가 프리메이슨과 일루미나티에게 전쟁을 선포하다. 한국의 미래는? (0) | 2017.03.05 |
---|---|
[스크랩] 에드가 케이시의 예언 (0) | 2017.03.05 |
[스크랩] 전사자의 천상과 지옥, 밴드 오브 브라더스(Band of Brothers)를 보고 (0) | 2017.02.19 |
[스크랩] 천부경 해설(직역) : 우주의 생명 창조 원리와 후천 개벽 시대의 도래 (0) | 2017.02.19 |
[스크랩] 현재 이 지구별에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조금 이야기해 주세요 (0) | 2017.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