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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혹수심 ; 두 붉은 별이 만나는 불길한 징조

황령산산지기 2017. 2. 26. 12:05


2007년 9월에 찍힌 전갈자리의 모습. 화면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거대한 은하수 오른쪽으로 떠 있는 노란색 별이 안타레스다. 안타레스 오른쪽 위로 떠 있는 목성이 한층 더 밝게 빛나고 있다. 미국 항공우주국 제공


▶ 먼 옛날 달빛과 별빛에만 의지해야 했던 조상들은 천체의 운행에 우리보다 더 관심이 많았다. 지상의 힘으론 어찌할 수 없는 별들의 움직임을 보며 조상들은 절대적인 힘을 느꼈다. 스스로의 길흉화복을 점치기도 했다. 점성술이 천문학과 분리된 것은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사후인 18세기에 들어와서야 이뤄진 일이다. 아직도 밤하늘을 보며 한해의 운을 가늠하는 이들이 있다. 올해 하늘에선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 우린 조금 더 평화롭고 행복해질 수 있을까.


새해가 밝았다. 지난해엔 살진 아이 얼굴 같은 둥근 보름달이 지친 우리를 즐겁게 했다. 지난해 추석 보름달은 지구에 가장 가깝게 근접한 근지점 보름달을 이르는 ‘슈퍼문’이었다. 슈퍼문은 지구와 가장 멀리 떨어진 작은 보름달에 견줘 13%가량 크고 두 배로 밝다. 추수와 감사의 시기에 뜬 커다랗고 둥근 달은 마음을 풍요롭게 한다.


성탄절에도 보름달이 떴다. 성탄절에 뜨는 보름달은 ‘러키문’이라 부른다. 동양에선 예부터 보름달을 ‘풍요의 상징’으로 여겨왔다. 성탄절에 뜬 보름달을 보며 아이들은 산타할아버지에게 원하는 선물을 받을 수 있게 해달라고 빈다. 러키문이 뜬 건 1977년 이후 처음이었다. 다음 러키문은 19년 후인 2034년에나 볼 수 있다.


올해 하늘에선 어떤 일이 벌어질까. 지난 3~4일엔 ‘별똥별 소나기’라 부르는 유성우가 밤하늘의 용자리에 내렸다. 유성우는 지구 궤도를 지나는 혜성이나 소행성이 우주공간에 뿌려놓은 부스러기가 지구 중력에 이끌려 떨어지면서 불에 타 빛이 나는 현상이다. 이 유성우들은 소행성 ‘2003 EH1’의 부스러기들이라고 한다.


올해 유성우는 오는 8월 중순 페르세우스자리에서 가장 많이 관측될 것으로 보이는데, 이 부스러기들은 130년에 한 번씩 태양 주위를 도는 ‘109P/스위프트-터틀’ 혜성이 뿌려놓은 것들이다. 페르세우스자리 유성우는 8월11~12일 밤 시간당 150회가량의 별똥별을 밤하늘에 흩뿌릴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다만 ‘빛공해’가 심한 도심에선 시간당 10개 정도만 관측할 수 있다고 한다.


오는 3월9일엔 오전 10시10분부터 1시간가량 해가 달에 의해 가려지는 부분일식이 일어난다. 달이 태양과 지구 사이에 위치해 태양의 일부가 가려 보이지 않는 것이다. 이번 부분일식은 서울에서 관측할 경우 태양이 3.5%밖에 가려지지 않아 육안으로는 거의 구분이 어렵다고 한다. 남쪽으로 갈수록 달이 해를 가리는 ‘식 비율’이 높아지는데, 제주도에선 최대 8.2%가 된다.


동남아에선 매우 잘 보이고 인도네시아에선 완전한 개기일식을 관측할 수 있다고 한다. 일식을 보는 것은 태양빛을 직접 봐야 하는 일이므로, 문구점 등에서 파는 일식 관측용 안경 등을 사용해 눈을 보호해야 한다.


마야문명서도 파멸 전조로 읽혀


올해는 특히 중국과 일본 등에서 ‘흉조 운’이 화제다. 하늘에서 일어나는 최악의 흉조라 하는 ‘형혹수심’(熒惑守心)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직전의 형혹수심은 2001년에 있었다. 형혹은 ‘현혹’과 비슷한 말이다. ‘정신을 어수선하게 해 할 바를 잊게 한다’는 뜻이다.


중국에선 예부터 붉은 기운이 도는 음산한 빛의 화성을 형혹성이라 불렀다. 화성의 영어 이름 ‘마르스’(Mars)도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전쟁의 신 이름에서 따왔다. 그리스 신화에선 아레스로 불린 신이다. 전쟁과 죽음을 상징하는 이 형혹성이 전갈자리의 ‘심수’에 머무는 현상을 형혹수심이라 한다.


심수의 ‘심’은 마음 혹은 심장, ‘수’는 별자리를 의미한다. 심수는 곧 ‘심장 별’이다. 여름철의 대표 별자리인 전갈자리의 심장을 이루는 별 세 개는 중국에서 각각 심전성, 심중성(심대성), 심후성으로 불렸다.


각각 태자와 천자, 서자를 상징했다. 세 별 중 가장 밝고 붉은 별인 ‘안타레스’가 천자를 상징하는 심대성이다. 심대성, 즉 안타레스와 다른 두 개의 별은 주로 수평선에 거의 근접한 남쪽 하늘에서 잘 보인다.


별자리 형태 때문에 바닷가에서 보면 전갈의 꼬리가 마치 하늘에서 드리운 낚싯바늘처럼 보이기도 한다. 뉴질랜드 마오리족 신화에선 전갈자리가 아니라 낚싯바늘자리였다.

안타레스는 그리스 말로 ‘화성에 맞선다’(against Ares)는 뜻이다. 태양빛을 받아 빛나는 화성만큼 밝진 않지만 안타레스는 밤하늘에서 16번째로 밝은 1등성이다. 태양보다 6만5000배나 많은 복사에너지를 발산하고, 붉은빛 때문에 화성과 닮았다. 그래서 주로 화성과 비견된다.


지구에서 약 600광년 떨어진, 외계의 항성인 안타레스와 달리 화성은 지구처럼 태양 주위를 공전하는 행성이다. 이 공전 때문에 지구에서 봤을 때 붙박이처럼 밤하늘에 고정된 다른 별과 달리, 행성은 별자리 사이를 이동(행)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는 매일 밤 다른 별들과 행성들의 위치를 비교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특히 수성과 금성을 제외한, 지구보다 공전 주기가 긴 외행성들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움직이다 어느 순간 서쪽에서 동쪽으로 ‘역행’한 뒤 다시 반대 방향으로 ‘순행’한다. 지구가 외행성보다 공전주기가 짧아 태양 주위를 더 빨리 돌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안타레스는 밤하늘에서 태양과 행성들이 지나는 황도 주변에 위치해 있다.


자연히 화성은 주기적으로 안타레스를 거쳐간다. 화성이 간혹 안타레스 주변에서 역행과 순행을 하며 잠시 머무는 것처럼 보이는 것을 중국에선 ‘수’(守)라 불렀다.


하늘의 두 붉은 별이 만날 때마다 사람들은 불길한 기운을 느꼈다. 형혹수심은 서양의 천문학에서도, 사라진 마야 문명에서도 전쟁과 파멸의 전조로 읽혔다. 중국에선 천자를 위협하는 불길한 징조로 보았다.


지난해 유독 크고 둥근 보름달 잦아
‘슈퍼문’ ‘러키문’ 보며 ‘소원’
올핸 유성우·부분일식 등 볼거리
최악의 흉조 ‘형혹수심’도
붉은 별 화성과 안타레스 만난다

중국서 안타레스는 천자를 상징
‘죽음’ 뜻하는 화성이 천자 위협
진시황 죽기 전 나타난 기현상
흉조를 남에게 떠넘기지 않고
어떻게 받아들이냐가 더 중요

기원전 211년 진시황 때 있었던 일


가장 널리 알려진 형혹수심은 기원전 211년 진시황 때 있었다. 진시황이 죽기 전 나타났다는 기이한 일 중 하나가 바로 이 형혹수심이다. 두 붉은 별이 가까이 만난 불길한 밤, 또다른 기이한 일들이 일어나 황제의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어느 날 운석이 떨어졌는데, 운석에 ‘진시황이 곧 죽을 것이며 대진제국이 멸망한다’는 글이 쓰여 있는 것이다. 황제는 글을 새긴 사람이 누구인지 찾았지만 나타나지 않자 운석이 떨어진 곳 주변 모든 사람들을 죽였다. 얼마 뒤엔 제사를 지내며 강물 속에 던져 넣었던 둥그런 옥석이 돌아왔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남자가 ‘올해 조룡이 죽는다’며 돌을 건넨 뒤 사라졌다. 황제는 조룡이 자신을 가리킨다고 생각했다. 여러 괴이한 일들이 일어나자 진시황은 불안한 마음에 점을 쳤다.


 ‘이동이 길하다’는 점괘가 나오자 백성들을 이주시키고 자신은 전국 순행에 나섰다. 가을에 시작된 순행은 이듬해 여름까지 이어졌다. 그는 순행 중 병을 얻어 숨졌다. 형혹수심이 나타난 이듬해 7월이었다.


점성술이 왕과 나라의 길흉을 점치는 학문이었던 중국에선 흉조에 대한 대처가 왕과 나라의 운명을 가르기도 했다. 흉조 그 자체가 아니라, 흉조를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이느냐가 정작 중요했던 것이다.


기원전 2년 중국 전한의 12대 황제인 성제는 조례에도 나오지 않고 국정을 외척에 맡겨놓은 채 주색에 빠져 지냈다. 그사이 외척인 왕(王)가가 조정을 멋대로 농단했다.


세금을 걷었지만 수리시설을 고치지 않아 비만 오면 홍수가 났고 비가 조금만 적어도 가뭄이 들었다. 마침 형혹수심이 일어났다. 그 때문인지, 외척의 국정농단 때문인지 전국에 이상한 재앙이 잇따르고 변고도 잦았다.


오늘날 대통령 비서실쯤에 해당하는 승상부의 관리 이심은 외척 왕가의 술수에 놀아나 실권 없는 재상 적방진에게 편지를 보냈다. ‘별자리가 흉흉하니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황제인 성제도 적방진을 불러 형혹수심을 핑계댔고 이어 다시 적방진을 책망하는 편지를 내려보냈다.


편지엔 “그대를 재상 자리에서 물러나게 하고 싶지만 차마 그렇게 못 하고 있다. 좋은 술 10석과 살진 소 한 마리를 내려줄 테니 알아서 처리하라”고 쓰였다.


공명정대하고 강직한 인품이었다는 적방진은 그 직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성제는 이런 사실을 비밀로 한 채 적방진의 장례를 성대히 치러줬다.


형혹이 심수에 이르자 당시 권력에서 멀리 떨어져 겨우 재상의 이름만 유지하던 적방진을 희생양으로 삼은 것이다. 하지만 성제는 적방진이 숨진 지 한 달이 채 못 돼 갑자기 병으로 숨졌다.


 <자치통감>을 쓴 중국 북송의 유학자 사마광은 이를 두고 “적방진이 죽을죄를 짓지 않았는데 그를 죽여 커다란 변고를 감당하게 한 것이라면 이는 하늘을 속이려고 한 것이다. 장례를 후하게 치러 사람들까지 속이니 무슨 소득이 있겠나”라고 했다.


하늘의 재앙을 책임진 군주


형혹수심이 일어났지만 다른 대처를 한 이도 있었다. 중국 춘추시대인 기원전 480년 송나라의 임금 경공은 심수에 이른 형혹을 보며 근심했다. 춘추시대 고대 중국의 별자리는 나라별로 ‘분야’돼 있었다.


오늘날 전갈자리는 당시 송나라의 몫이었다. 그곳에 불길한 기운의 화성, 형혹이 머물고 있었던 것이다. 별자리를 관측하는 일을 하던 관리인 ‘사성’이었던 자위는 “재상이나 백성에게 형혹의 재앙을 옮길 수 있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경공은 이를 거부했다.


 “재상은 자신을 대신해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이니 안 되고 백성들에게 옮기면 누구를 상대로 임금 노릇을 하겠느냐”는 이유였다.


경공은 “차라리 나 혼자 죽겠다”고 답했다. 당황한 자위가 “그럼 세성(목성)에 재앙을 옮길 수 있다”고 하자 경공은 “세성이 해를 입으면 곡식이 익지 않고 백성이 주리게 된다.


내 목숨이 다한 것이니 더 이상 말하지 말라”고 했다. 임금이 하늘의 재앙을 누구에게도 전가하지 않고 자신이 책임지겠다고 한 것이다.


이 말을 듣고 북쪽 하늘을 향해 두 번 절한 자위는 “신이 임금을 칭찬한다. 하늘은 높은 곳에서도 낮은 곳의 일을 듣는다. 괴이한 별은 자리를 옮길 것이고 임금의 수명은 21년 더 늘어날 것”이라 했다.


이 일이 있고서 경공은 실제로 25년이 넘도록 왕위에 있었다. 고대 중국 진의 재상인 여불위가 춘추전국시대의 정치와 율령에 대해 쓴 <여씨춘추>에 기록된 이야기다. 올해 나타날 형혹수심에 나라의 지도자들이 어떤 대처를 할지 자못 궁금해진다.



박기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