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완전한 존재가 아니라 불완전하게 태어난다.
진행 중인 하나의 " 과정' 으로 태어나는 것이다.
인간은 길 위의 순례자로 태어난다.
이것이 인간의 고통이자 기쁨이다.
인간이 고통 받는 것은 쉴 수 없기 때문이다.
계속해서 앞으로 나가야 한다.
언제나 앞으로 나아가고 탐험해야 한다.
인간은 살아가면서 형성된다.
인간의 존재 가치는 무엇인가로 '되어 감'에 의해서만 발현된다.
이러한 과정이 인간이 근원적 존재를 규정한다.
인간은 움직이고 있을 때만 존재할 수 있다.
진화는 인간의 본성이다. 진화는 바로 인간의 영혼이다.
자신의 존재를 당연하게 여기는 사람은 미완성인 채로 남는다.
이미 자신이 완벽하게 태어났기 때문에 더 이상 진화할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에게 인간이란 그냥 씨앗인 채로 머물다가 소멸하는 존재다.
결코 나무로 성장하지 못한다.
봄볕과 비가 어루만져 주는 기쁨을 알지 못한다.
수만 송이의 꽃으로 피어나는 환희를 알지 못한다.
수많은 꽃으로 피어나는 것, 그 폭발이 진정한 인간의 완성이다.
가능성이 현실에서 이루어질 때만이 진정한 인간이 되는 것이다.
인간은 가능성을 가지고 태어났다. 이것이 인간의 독특함이다.
모든 다른 동물은 완벽하게 태어났다.
동물의 탄생과 죽음 사이에는 어떠한 진화도 없다.
동물들은 평생 동안 같은 차원에 머문다. 어떠한 변형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들의 삶에 급진적인 변화는 없다.
동물들은 수평적인 차원에서 움직일 뿐 수직적인 상승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동물과 마찬가지로 수평적인 차원에서만 움직이는 사람은 존재성 beinghood을 획득하지 못한다.
그런 사람은 하나의 독립된 영혼이 될 수 없다.
수직적인 변화가 그대를 관통해야만 하나의 아름다운 영혼이 될 수 있다.
영혼을 갖는다는 의미는 수직적인 것이 수평적 차원을 관통했다는 것이다.
이것을 비유하자면 유충, 애벌레, 그리고 나비의 단계를 들 수 있다.
인간은 유층으로 태어난다.
불행하게도 그중 많은 사람은 유층인 채로 죽는다.
그리고 약간의 인간이 애벌레가 된다.
유충은 정지해 있고 움직일 수 없다.
그냥 한 단계에 머물면서 한 장소에 딱 붙은 채 살아간다.
소수의 사람들만이 애벌레로 성장한다.
애벌레는 활발하게 움직인다. 유충은 정지해 있지만 애벌레는 움직인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이 애벌레의 단계에 머문다.
그들은 수평선상에서 움직인다. 하나의 차원을 벗어나지 못한다.
아주 드물게 붓다. 루미, 예수, 카비르 같은 사람들만이 궁극적인 도약을 이루어 나비가 된다.
그들은 수직적인 차원으로 들어간다.
- 오쇼 < 이해의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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