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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외로움을 기억하는 날에는

황령산산지기 2015. 2. 20. 18:54


Age Of Loneliness - Enigma



로움을 기억하는 날에는

잠시동안, 절망으로 파고드는 마음을
나의 것이 아닌 양 노트(Note)에 적어본다

이것은
분명히 포근한 몽상은 아니어서
이 무지(無智)한 삶을 추스르기엔 너무 가녀린,
도무지 나의 것이 아닌듯한
정말 값비싼 슬픔과 치렁한 그리움이다

가을에 서럽게 익은 감 모양,
붉고도 선명한 음절로 뚝뚝 잘라져
마치 시(詩)처럼 쓰여진다
불어오는 바람 속에서...

그 바람은
내가 다시는 사랑에게 돌아가지 않을 시간들을
품었음을 알리고 있다

내 익숙치 못한 귓설미로도
새로이 불어오는 계절풍의 심란한 속삭임을
모르는 바는 아니어서, 이미 비좁은 나의 꿈속엔
그것들을 잠재울만한 공간이 없음도 알고 있지만
나를 가두고 있는 이 공허한 의식(意識)의 종말을 위해
하얀 그리움에 깊은 밤이 전율(戰慄)하는 별빛을 그리며,
내 안에 힘겹게 남아있던 사랑의 마지막 호흡을
묵묵한 세월에 새긴다

그것이 정녕코 알 수 없는 행위라 해도
아무 의심 없이, 정말 잘 이해하는 얼굴로,
타다 남은 재(灰)를 가장 뜨거웠던 것으로 기억하는
한 사람으로서
사랑의 기쁨과 아픔을 가장 아름다웠던 내 인생의
허물어진 모험으로 기억하면서,
마치 시(詩)를 쓰듯이...


                                                          - 안희선

 
출처 : 시인의 파라다이스
글쓴이 : 안희선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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