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기들은 ‘세대’라는 기준으로 나뉘고 있다. 한 세대별로 대표되는 특정 능력이나 기술을 갖출 경우, 그 세대에 포함을 시킨다. 최근 몇 년간 이슈가 되고 있는 5세대 전투기의 필수조건은 바로 스텔스(Stealth)이다. 스텔스는 쉽게 표현하자면 적의 레이더가 나의 항공기를 식별하기 어렵도록 레이더 반사 면적(RCS)을 최소화 하는 기술이다. 여러 장점과 함께 실전에서 검증된 능력이지만, 일반적으로 스텔스는 잘못 이해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스텔스에 대응하기 위한 스텔스 탐지 기술들도 개발에 상당한 진전이 있었다.스텔스와 스텔스에 대항하기 위한 기술 개발은 어디까지 왔는가?
스텔스의 시작
적의 상공에 진입하는 전투기는 여러 위협에 직면하게 된다. 먼저 적의 전투기에게 차단될 수 있다. 무엇보다 지상에서 발사하는 대공미사일은 항공기 격추에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이와 같은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해 군사 항공기 개발자들은 오랜 시간 고민을 했었다.
기존에는 위협을 피하기 위해 두 가지 대응책을 활용했다. 하나는 적의 미사일이나 전투기가 따라 올 수 없는 정도의 높은 고도에서 비행을 하는 것이다. 고고도 비행을 하는 대표적인 항공기는 바로 U-2기이다. U-2는 냉전시절 소련의 내부를 정찰하기 위해 개발되었는데 7만 피트의 이상에서도 비행이 가능하다. 공기의 밀도가 낮으며 산소도 적은 곳을 비행하기 위해 U-2의 길이는 63피트인 반면 날개는 103피트나 되며 조종사는 조종복 보다는 우주복에 가까운 장비를 착용한다.
SR-71 블랙버드, 마하 3.5가 넘는 속도로 비행하는 정찰기였다.
적의 위협을 피하는 두 번째 방법은 빠른 속도를 활용하는 것이었다. SR-71 정찰기는 높은 고도에서 비행할 뿐만 아니라 마하 3.5라는 엄청난 속도를 자랑하는 항공기였다. 음속에 세배나 빠른 속도로 비행하기에 적의 전투기나 미사일들은 이 속도를 도저히 따라 올 수 없었다. 실제로 SR-71이 적에게 피격 된 적이 한 번도 없다. 하지만 고장으로 인한 추락은 잦은 편이었다.
하지만 고도를 위해서만, 또는 속도를 위해서만 만들어진 항공기는 한계가 있다. 위에서 소개한 두 항공기는 모두 정찰기였다. 더 많은 무장을 싣고 비행해야 하는 폭격기나 뛰어난 기동성을 필요로 하는 전투기들은 최고 속도나 고도만 고려하고 설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기술자들이 찾게 된 해답이 바로 스텔스였다.
스텔스의 원리
레이더는 특정 주파수를 하늘로 쏘아 올려 반사되어 오는 전자파를 형상화함으로써 항공기의 위치를 파악한다. 즉, 레이더파가 반사되어 다시 적의 레이더에 입력되는 것을 막으면 적이 아군의 위치를 파악할 수 없다. 항공기의 크기, 모양, 재질에 따라 반사의 정도가 달라지는 정도를 바로 레이더 반사면적(RCS)라고 표현한다.
쉽게 생각해 보자. 내가 핸드폰 화면을 정면에 두고 바라보고 있을 때는 핸드폰의 크기가 가장 현실에 가깝게 나타난다. 하지만 그 같은 핸드폰은 눕혀두고 옆에서 바라본다고 생각해 보자. 같은 핸드폰이지만 내 눈이 실제로 인지하는 핸드폰의 면적은 확연한 차이가 있다. 레이더 반사면적을 줄인다는 것이 이와 비슷한 개념이다. 레이더파가 어느 방향에서 날아오든 항공기의 형태가 그 전자파를 정면으로 반사하는 면적으로 최소화 하면 RCS가 최소화 되는 것이다.
대표적인 스텔스기인 F-22나 현재 개발 중인 F-35 등을 보면 항공기들이 과도하게 각이 져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F-15, F-16등은 각 보다는 부드럽게 처리 된 부분이 많다. 바로 날아오는 전자파를 다른 방향으로 반사하기 위해 스텔스기들은 각진 형태를 지니는 것이다.
하지만 항공기 설계에 있어서는 항공역학도 고려해야 한다. 따라서 외형만으로는 충분한 스텔스 성능을 갗추기 어렵다. 그래서 사용되는 방법은 스텔스기에 레이더파를 흡수하는 특수 페인트를 칠해주는 것이다. 레이더 흡수 물질(RAM)의 역할은 레이더의 전자파를 직접적으로 흡수하는 것이 아니라 전자파 에너지를 열 에너지로 변환시켜 적의 레이더가 전자파를 다시 수신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이 외에도 플라즈마 스텔스라는 기술이 있다. 아직 베일에 싸여 있는 기술이며 러시아가 실용화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항공기 주변에 플라즈마로 형성된 ‘층’을 발생시켜 전자파를 흡수시켜 버리는 것이다. 이론적으론 가능하나 아직 검증된 바가 없다.
미국의 독점
아직까지 스텔스 기능이 검증된 항공기를 가진 국가는 미국이 유일하다. 현존하는 최고의 전투기로 평가받는 F-22 랩터는 유일하게 실전 배치된 스텔스 전투기이다. 이 항공기의 RCS가 정확히 어느 정도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2005년 미공군은 F-22는 레이더의 입장에서 ‘금속 구슬’의 크기 정도이고, F-35는 골프공 정도라고 발표한 적이 있다.
현재 러시아는 T-50(PAK-FA)를 개발 중에 있다. 1990년대 개발이 시작되었으며, 미국의 F-22와 유럽의 유로파이터에 대응하기 위해 추진된 사업이다. 현재 5대의 원형기가 있으며, 2016년 실전 배치를 목표로 하고 있다. RCS는 약 1 정도로 알려졌다. 실제 제원이 어느 정도인지는 파악하기 어렵다.
중국의 경우에는 두 종류의 스텔스기를 동시에 개발하고 있다. 청두 J-20는 2011년 첫 시험 비행이 있었으며 5대의 원형기가 제작된 상태이다. 2017년 실전 배치를 목표로 하고 있다. 센양 J-31은 2012년에 첫 시험 비행이 있었다. 아직 원형기는 1대 밖에 없다. 두 항공기 모두 스텔스 기능을 갖추는 것을 목표로 개발되고 있으나 정확히 어느 정도의 성능을 목표로 하는지, 기술 개발이 어디까지 진행되었는지는 확인되지 않은 상황이다.
스텔스의 한계
F-117의 각이 진 외형이 눈에 띈다. 날아오는 전자파를 다른 방향으로 반사하기 위해서이다.
스텔스라는 단어는 항공기가 아예 적의 레이더에 안 보인다는 착각을 줄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거리가 멀다. 어디까지나 적의 레이더에 발각될 가능성을 낮춰 주는 것이지 스텔스기라고 해서 적의 상공에서 마음대로 비행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1999년 유고슬라비아 상공에서 미국의 F-117이 지대공 미사일에 격추되었다. F-117은 록히드 마틴의 스컹크 워크스(Skunk Works – 록히드사의 가장 유명한 R&D 팀의 이름)에서 1980년대 개발한 스텔스 전폭기다. ‘나이트 호크’라는 이름이 붙은 이 항공기는 스텔스 기술이 항공기 전반에 적용된 첫 항공기였다. 1999년 3월 27일 작전 중이던 F-117은 유고슬라비아 방공부대의 SA-3에 격추되었다. 이 부대의 책임자였던 졸탄 다니 대령은 인터뷰에서 레이더의 주파수를 조정함으로써 스텔스기에 대한 식별 능력이 강화되었고 F-117이 폭탄 투하를 위해 내부 무장창을 열자(외형에 변화로 인해 RCS 증가) 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이 사건은 스텔스에 대해서 두 가지 중요한 대목을 알려준다. 하나는 레이더의 개조나 변경을 통해 스텔스기에 대한 탐지 능력을 증대할 수 있다는 점이다. 둘째, 스텔스기도 미사일 발사를 위해서는 내부 무장창을 열어야 하고, 이는 항공기 형태에 변화를 가져와 일시적이나마 레이더 반사면적이 증가한다는 것이다.
물론 F-117은 스텔스 기술의 초기 단계에서 개발된 항공기이다. F-117 이후 개발된 B-2 폭격기는 F-117의 RCS의 반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앞서 소개한 F-22와 F-35는 그보다 더 작다. 하지만 스텔스 기술이 발전하고 있는 만큼 이에 대응하는 탐지 기술 역시 개발되고 있다.
새로운 레이더의 개발
모든 군사 기술은 일종의 우위 경쟁이다. 스텔스 전투기는 군사 기술 진보의 끝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이미 여러 국가들이 스텔스 기술을 견제하기 위한 새로운 대응책을 모색하고 있다.
JY-26. 중국은 스텔스기를 더 효과적으로 추적하는 레이더 개발에 힘쓰고 있다.
중국은 얼마 전 ‘주하이 에어쇼’에서 이동형 레이더인 JY-26을 공개했다. 행사에서 이 레이더가 주목을 받은 이유는 스텔스기 식별 기능이 강화되었다는 주장 때문이다. JY-26은 초고주파(UHF)를 사용하기 때문에 일반 레이더보다 스텔스 물체 식별이 두 배 정도 향상되었다고 한다. 일각에서는 이번 레이더가 록히드 마틴의 장거리 레이더인 3DELRR과 비슷한 형태를 지니고 있어 중국이 해킹을 통해 미국의 기술을 빼온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또한 중국의 『글로벌타임즈』는 산둥 지역에 배치된 JY-26이 한국 상공에서 비행하고 있는 F-22를 식별했다고 주장했다. 둘 다 정확한 사실인지는 확인할 수 없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중국이 스텔스기 식별을 위한 레이더 개발에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는 점이다. 러시아 역시도 비슷한 형태의 UHF 레이더를 개발 중인 것으로 알렸다.
체코에서 개발된 수동 레이더도 스텔스를 잡을 수 있는 후보 반열에 올라와 있다. 기존 레이더는 직접 전자파를 발생시키는데 반해 수동 레이더는 전자파를 수신만 한다. 기존의 라디오 또는 텔레비전, 휴대폰 통신망의 전자파들을 분석해서 상공에 떠 있는 물체의 위치를 파악한다. 이 기술은 유럽의 EADS사에서도 개발 중에 있다. 특히 전자파를 발생시키지 않기 때문에 레이더의 위치가 적에게 노출 될 위험도 상당히 적다
스텔스면 무조건 승리?
또한 레이더만이 항공기를 식별하고 공격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아니다. 언론 매체들은 대부분 F-22와 같은 항공기가 ‘투명인간’인 것처럼 묘사한다. 물론 F-22은 뛰어난 항공기이며 자타공인 최고의 스텔스 기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약점이 하나도 없는 완벽한 항공기는 물론 아니다. 2012년 6월에 실시된 ‘레드 플래그(Red Flag)’ 훈련에서 F-22 전투기들이 가상 전투 상황에서 유로파이터 전투기들과 맞붙었다. 이 훈련의 결과에 대해서 수많은 매체들과 언론에서 논쟁이 있었다. 독일 소속의 유로파이터가 F-22를 상대로 가상 격추를 여러 번 성공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근접 전투 즉 시계(視界) 내에서 유로파이터가 F-22 랩터에 충분히 대응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근접 전투 상황이 줄어든 현대 공중전에서는 F-22가 압도적인 우위에 있다. 장거리에서 적기를 먼저 식별하고 장거리 공대공 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레드 플래그 훈련에선 여러 시나리오를 통해 조종사들이 훈련을 하기에 실제 전투 상황과는 괴리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상황에서 스텔스만 갖추면 우위를 지닌다는 것은 착각이란 점은 기억해야 한다.
스텔스의 미래는?
한국도 차세대 전투기 선정에서 기존의 결정을 번복까지 하며 스텔스기인 F-35 도입을 결정했다. 스텔스의 중요성은 항공 기술에서 이미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우수한 기술이라도 대응책이 마련되기 나름이다. 스텔스에 대응하기 위해 레이더 개발은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실증적인 결과를 아직 내놓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스텔스기를 잡기 위한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또 스텔스 기술 역시 현재의 단계에서 멈추지 않을 것이다. 보이지 않는 것을 찾고, 또 다시 숨기 위한 경쟁은 이미 시작되었다.
김성현 디펜스 21+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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